단대신문 모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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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관모 학우
  • 승인 2007.05.01 00:20
  • 호수 119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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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대신문 모니터

지난 1197호를 읽고

변화를 올바로 지켜볼 줄 아는 신문으로

중간고사 기간이 지나가고 있다. 얼마나 정신없이 지나간 4월이었는지 지난 2주를 돌아보면 알 수 있다. 책상 어딘가에 묻혀 있던 프린트를 찾기 위해 자신의 방을 헤집어 보았을 것이고, 평소 눈 감고도 고를 수 있던 도서관 자리도 2, 30분씩 줄을 서서 기다렸을 것이며, 꼭 필요한 책이 이미 ‘대출중’이어서 국립도서관 등을 분주히 뛰어다닌 적도 있을 것이다.
이제 거의 다 끝났다. 모두 수고했다. 그럼 이제 자신의 주변이 보이는가? 어쩐지 학교 안이 허전하다 싶었는가? 요즘 왠지 모르지만 세상 사회가 시끄럽지 않았던가? 그렇다. 모두 정신을 잃고 있던 사이에도 세상은 돌고 있었다. 학교에 있어야 할 것들이 없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한미 FTA라는 피바람주의보가 떨어졌다. 당장 아무 것도 느끼는 것이 없을 지도 모른다. 솔직히 수입 쇠고기와 농산물이 들어오는 일이나 다음 학기에 이전하게 된다는 일보다 내 눈앞에 닥친 리포트와 시험이 더 현실적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 삶의 화두는 이미 ‘변화’가 된지 오래다. 왜, 무엇 때문에 변하는 걸까. 우리는 이런 변화에 한 번도 동의한 적이 없는데 세상은 제멋대로 흘러간다.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도 아무것도 모르면 이야기할 수 없다. 우리는 무언가를 알아야 한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찾아내며 지켜봐야 한다.
신문을 본다는 것도 변화를 직시하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문의 목소리는 매우 중요하다. 대체적으로 단대신문의 현재 일어나는 변화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전이나 FTA의 문제에 있어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실은 이것이 기회가 될 수 있음을 은근히 비춘다. 사회면의 ‘한·미FTA 타결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만 봐도 그렇다. 변화는 분명 기회여야 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피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좀 더 많은 것들을 보여주어야 한다. 무엇이 기회이고 무엇이 피해인지를. 학생들 개인이 해야 할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긍정적이고 선도적이어야 하지만 FTA자체의 문제를 바라볼 때는 냉정해야 한다. 결코 헷갈리면 안 되는 것이다.
시대가 그러하니 우리도 그래야 한다는 식은 너무 소극적이며 회피적인 태도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정작 보여주어야 할 작은 부분들은 외면하게 되며 그것은 ‘올바로 지켜본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음 학기부터 우리 대학은 죽전으로 옮기게 된다. 이것은 또한 어떻게 지켜볼 것인가. ‘이미 일어난 변화이니 이에 맞추어 열심히 하자’가 아닐 것이다. 변화는 누가 만들어준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변화에 대해 단대신문의 목소리는 어떤 식으로 울릴 것인가. 그리고 신문의 눈은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아주 사소한 문제라도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며 좋지 않아 보인다고 묻어버려서도 안 될 것이다.
학생들이 올바로 볼 수 있는 눈을 지니게 하는 것은 바로 그 학교 신문의 권리이자 의무인 셈이다.
김관모(영문·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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