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생활 속 과학 21
유레카! 생활 속 과학 21
  • 신동희 교수
  • 승인 2007.05.15 00:20
  • 호수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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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레카! 생활 속 과학 ?
과학자의 스승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이런 저런 이유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스승의 날이지만, 누구나 일생 동안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스승을 만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스승의 날은 존속의 의의가 있다. 과학의 역사를 빛낸 천재 과학자들에게도 다 스승은 있다. 천재 과학자들의 스승은 제자의 천재성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 제자를 라이벌로 생각해 질투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자의 관심 분야를 존중하기보다 스승 자신의 관심 분야를 계속 연구하기를 바라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에게는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다. 7학년 때 담임은 아인슈타인의 부실한 숙제를 근거로 “장래에 결코 쓸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대학생이 된 후에도 아인슈타인의 능력을 알아본 스승은 없었다. 하고 싶은 공부만 열중한 아인슈타인은 하기 싫은 과목은 강의조차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니, 지도 교수의 평가가 좋을 리 없었다. 아인슈타인은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 구닥다리 학교 수업보다 최신의 이론을 독학하는 것을 선택했다. 당시 교수들이 무시했던 맥스웰 방정식을 아인슈타인은 혼자 터득했고, 이 과정에서 상대성 이론에 필요한 영감을 얻게 되었다. ‘천재’ 아인슈타인을 직접 가르친 ‘범재’ 스승은 여럿이었지만, 진정한 스승은 ‘천재’ 맥스웰이었던 것 같다.
행성의 운동 양식을 발견한 케플러는 아인슈타인과는 달리 학창 시절 장학생이었다. 덕분에 가난하고 무식한 부모를 두었음에도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다. 케플러는 중학교 수학 선생을 하면서 천문학에 대한 개인 연구도 계속해 나갔고, 우주의 모양을 완성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숫자들과 씨름했다. 그 소문은 당시 덴마크 황실 천문학자이자 유럽에서 손꼽히는 학자인 티코브라헤의 귀까지 이르렀다. 티코브라헤의 관측 자료는 양적, 질적인 면에서 천문학사에서 최고의 것으로 평가받는다. 천체 관측의 천재 티코는 천체 운동 원리의 천재 케플러에게 함께 연구할 것을 제의했고, 이 둘의 만남은 스승과 제자 관계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티코는 자신이 ‘직접 키운’ 제자가 아닌 ‘스스로 잘나서 커진’ 제자를 경계했기에, 죽을 때까지 자신의 방대한 천체 관측 자료를 케플러에게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티코브라헤가 죽은 후에 비로소 케플러는 티코의 관측 자료를 분석할 수 있었고, “케플러 법칙”을 완성하게 되었다. 티코와 케플러의 협력이 진작 이루어졌다면, 오늘날 케플러의 법칙은 최소한 “티코-케플러의 법칙” 쯤 되지 않았을까?
20세기 초, 대륙이동설을 주장해 지질학계를 놀라게 한 ‘기상학자’ 알프레드 베게너가 있다. 당시, 지질학 전문가도 아닌 기상학자 입에서 나온 대륙이동설을 귀담아 듣는 지질학자들이 있을 리 만무했다. 베게너의 스승이자 훗날 장인이 된 사람은 바로 기후 구분으로 유명한 퀘펜이다. 퀘펜은 베게너의 천재성을 알아본 스승이었다. 베게너의 천재성이 기상학 발전에 집중되기를 바랐던 퀘펜은 베게너가 대륙이동설로 눈을 놀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베게너가 스승의 뜻에 따라 기상학에만 매진했다면, “퀘펜의 기후 구분” 이상의 의미를 갖는 “대륙이동설”의 등장은 상당 기간 미뤄졌을 것이다.
우연하게도 아인슈타인, 케플러, 베게너, 셋 다 독일 태생이다. 독일과 달리 대한민국의 스승들은 언제나 청출어람(靑出於藍)을 기대할 것이라 믿는다.

신동희(사범대학·과학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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