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 ‘뜨거움’ 부족한 듯
대학생들 ‘뜨거움’ 부족한 듯
  • 김진성 기자
  • 승인 2008.03.15 19: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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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9번째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펴낸 안도현 시인


이 시대, 시는 무엇인가?
대중이 사랑하는 시인,
안도현 우석대 교수에게 듣는다 (上)

 

“내가 시를 썼기에 세상 흐름에 휩쓸리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좋든 나쁘든 말을 걸 수 있었죠”


전주에 거주하는 시인이 가끔 서울에 올라올 때가 있다고 한다. ‘시인은 고독해야 한다’는 그의 지론에 맞게 그는 고독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아쉽게도 그를 찾는 손길이 많다. 한 백일장 대회 심사를 위해 동국대 서울캠퍼스를 방문한 그를 지난 1일 만났다. ‘스타시인’이라는 수식어가 늘 그를 따라 다니지만, 약간 구김 잡힌 정장 차림에 그 흔한 휴대폰도 없이 ‘살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역시 시인답다’는 생각이 든다.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그는 다른 세계의 사람 같지 않았고 일상 속에서 함께 숨 쉬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편했다. 시인 안도현의 삶에 녹아있는 시 철학과 한국 시문학의 오늘과 내일에 대한 단상을 2회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주>

▲ 얼마 전 발간된 교수님의 9번째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 제목부터가 흥미롭습니다. 신간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 ‘간절하게 참 철없이’라는 것은 시 속의 한 구절이지만, 시인으로서 제 문학의 모토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사람을 만날 때나 풍경을 만날 때 ‘간절하게 참 철없이’라는 요소가 개입된다면 저는 뭐든지 다 이뤄진다고 생각을 해요.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꿈도 그냥 이뤄지는 게 아니고 간절해야 이뤄지는 거죠.
‘철없이’라는 것. 우리 같은 기성세대들은 너무 철이 들었어요. 철이 들었다는 것은 세상의 먼지가 몸과 마음에 많이 묻었다는 거죠. 이 세상이 완벽하게 철없게는 안 되더라도 때로는 철없는 사람이 있어야 세상이 정상적으로 흘러간다고 생각을 하죠. 그런 생각대로 (시집을) 썼습니다.

▲ 시에 처음 매력을 느끼신 때는 언제였습니까.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를 쓰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 아까 동국대에서 본(인터뷰 장소 이동 중에 본) 가파른 계단 위 건물이 제가 고등학교 때 백일장 하러 왔던 건물이더라고요. 고등학교 때 문예반에 들어가면서 시를 하게 됐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에 뭐든지 좋아하게 되면 마약 먹듯 빠져들게 되잖아요. 저도 그랬습니다. 어릴 때부터 시인이 되고 싶어 했고 그것 말고는 아무 생각도 안 해봤어요. 한 달에 수익이 얼마나 될 지랄지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무조건 시인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죠. 지금도 시인으로 살고 있는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내가 시를 썼기 때문에 이 세상의 흐름에 휩쓸려가지 않게 됐고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사람들한테 말을 걸 수 있게 됐으니까요.

▲ 시인께서 시를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시인의 시 철학을 듣고 싶습니다.
- 보통 시라고 하면 사람들은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감성을 쓰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시가 시인의 감성에서 나오는 것이긴 하지만, 제가 보기엔 한 편의 시를 쓸 때 시인에게는 일종의 장인정신이 필요해요. 생각하고, 언어를 갈고 닦고, 매만지고 혼을 불어넣는 그러한 과정들이 시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사람의 시를 읽을 때도 그 시를 위해서 시인이 얼마만큼 장인적인 열정과 시간을 투자했는지를 유심히 살펴봅니다.

▲ ▲ 한 편의 시를 쓸 때 시인에게는 일종의 장인정신이 필요해요. 생각하고, 언어를 갈고 닦고, 매만지고 혼을 불어넣는 그러한 과정들이 시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최정빈 기자>


▲ 이제는 대중에게 사랑받는 ‘스타 시인’의 반열에 오르셨는데, 대중성과 예술성의 상충으로부터 오는 논란도 어느 정도 감수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러한 평가에 대한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 시인으로서는 때로는 기분 좋은 말이면서 한편으로는 곤혹스러운 평가이기도 해요. 아직까지 시인이라 하면 고매한 정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라는 관념이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에 시집이 팔린다랄지 대중한테 눈을 돌린다랄지 이러면 시 자체에 대한 평가 점수가 오히려 낮게 나오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똑같은 문화영역이고 예술영역이지만 영화는 관객 수가 많아야 좋은 영화라고 하고 성공한 영화라고 하고, 또 연말에 상 줄 때도 히트한 영화한테 줍니다. 가수도 마찬가지죠. 가수도 음반이 많이 팔리고 그래야만 톱가수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렇다고 문학을 똑같이 적용시키긴 좀 무리가 있긴 하죠. 문학이라는 것은 대중문화와 달리 엄숙성 같은 걸 가지고 있으니까요.
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얻게 됐다는 것은 행운이고 글을 쓰면서 복이 많은 사람 중에 하나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 인터넷의 발달은 시를 접하기에 더욱 편리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도 분명 일장일단이 있을 텐데, 시인으로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십니까.
- 지금까지 인터넷에 시와 관련된 여러 사이트들은 기존의 오프라인 매체에 익숙한 시인들한테는 아직까지는 낯선 게 사실이에요. 오프라인 매체에 익숙한 시인들이 관여하기 보다는 설익은 아마추어리즘이 인터넷 문학 사이트를 지배하고 있는 형국인데, 나는 앞으로는 시인들이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인터넷 매체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시는 죽었다’ ‘시를 읽지 않는다’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인터넷이 세계에서 속도를 자랑하는 나라도 없고 우리나라처럼 인터넷 속에 수만, 수십만 편의 시가 올려져있는 나라가 지구상에 한 군데도 없어요. 그렇게 본다면 시인들이 인터넷에 좀 더 마음을 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활용하는 게 우리 시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저도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원래 제가 썼던 시의 형태가 완전히 변형이 된 형태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경우도 있고, 제가 쓰지도 않은 시인데 제 이름을 달고 돌아다니는 시도 있고, 뭐 여러 가지 경우가 많아요. 또 제가 쓴 산문이 행을 바꿔서 시 형태를 하며 돌아다니는 것도 있고요. 시인들은 시를 쓸 때 어휘 하나, 행 한번 바꾸는 데도 무지 신경을 쓰는데 인터넷에서는 자꾸 퍼 나르는 과정 속에서 텍스트 속에 있는 시가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기죠. 책에서 오자가 하나 나오면 굉장히 화를 내거든요. 그런데 인터넷 매체 속에는 쉽게 넘어가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앞으로 시인들이 적극적으로 인터넷에 개입할 때 변화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갖습니다. 세상은 인터넷이라는 게 없이 굴러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시인들이 케케묵은 골방에서의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는 거죠.

▲ 창작을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시인 안도현에게도 남모를 고독과 외로움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떠십니까.
- 기본적으로 고독해야죠. 고독해야 시가 나오는 거죠. 또 속도를 쫓아가지 않아야 되고, 높은 곳보단 좀 낮은 곳을 바라봐야 되고, 행복이나 영광보다는 절망이나 결핍 쪽에 몸을 둬야 되는 게 시인의 운명입니다.
그런데 20여 년 간 글을 쓰면서 금방 말한 그런 것들 속에서 일탈해 가고 있는 게 아닌가…. 계속 그렇게 있어야 되는데 말이죠. 제가 시만 쓰며 사는 건 아니어서 고독해질 틈이 없는 거죠. 이렇게 막 (인터뷰를 위해) 만나자는 사람도 있고요.(웃음) 5~6년 전부터 외로워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사치스러운 말 하고 있네, 그렇게 들릴지 모르지만요. 고독이라는 말, 나도 아주 사치스런 말이라고 생각해요. 배부른 소리지. 하지만 시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틈을 내서라도 고독해질 필요가 있어요. 주식이 오르는가 안 오르는가 그래프만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시인이 아니잖아요. 내가 시를 써야 시인이지 말만 계속 하고 다니면 시인이 아니잖아요. 고독하지 않아서 좀 슬픈... (시인이죠).

▲ 요즘 대학생들의 독서는 실용서적 중심, 문학 중에서는 대중적인 소재를 가진 소설 등에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시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의 열쇠를 쥐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성장하는 20대 청춘들이 시를 더욱 더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대학생들한테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뜨거움’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한 걱정, 취업에 대한 걱정 즉 실용적인 걱정은 뜨거운데 삶에 대한 성찰을 위한 노력, 그 노력으로서의 뜨거움은 좀 약한 것 같다 이거죠. 문학이나 예술 혹은 문화를 너무 그 실용의 문제, 산업의 문제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학생들에게 다급한 게 먹고사는 문제고 취업이긴 하지만 그러면 그전의 대학생들은 안 그랬는데 말이죠. 그렇게 취업 고민을 하지 않아도 굶어죽지 않고 다 살았고 나라를 다 이끌어가고 있어요. 요즘은 1학년 때부터 취업제일주의에 물들어 있더라고요. 지나치죠. 머리는 냉철하게 차가워지는 것 같은데 가슴의 뜨거움이 식어있는 세대가 된 것 같아요.
가슴의 뜨거움에 불을 지피기 위해서라도 흔히 말하는 고전이랄지 정통적인 문학작품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공이 무엇이든지 간에 문과나 국문학이나 문창과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제가 80학번인데 우리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우리도 그랬고 그 당시 사회인도 그랬고 찻집이나 술집에 가면 ‘최근에 어떤 소설이 유명하다는데 너 읽어 봤니?’ 식의 대화들이 오고갔어요. 그런데 요새 그런 얘기 안 하잖아요. ‘너 무슨 영화 봤니?’ 정도. 그만큼 정통적인 문학작품에 대한 경외심도 줄어들고 독서량도 줄어든 것이 아닌가….

▲ 시인께서도 40대 후반에 접어드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위치에서 문학인 안도현으로서 그리고 인간 안도현으로서 간절하게 원하는 꿈과 또 새로운 도전은 무엇입니까.
- 제 나이에 꿈과 도전을 이야기한다는 것도 참 철없는 짓인데.(웃음) 스무살부터 술을 마셨는데 가리지 않고 많이 마셨죠. 그랬더니 최근에 좀 소식이 안 좋아요, 몸에. 운동 같은 거 거의 안하고 살아왔고…. 제 꿈은 그냥 하루에 30분 이상 걷는 겁니다. 이게 제일 큰 꿈이에요.
또 최근 쓰고 있는 것 중에 『연어』의 속편이라고 할까요. 올해 안에 마무리해서 출간하려고 하는데요. 그것이 11년간 『연어』를 사랑해주신 분들께 제가 갚는 길인 것 같아 올해는 그것에 도전하고 싶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김진성 기자
김진성 기자

 jinsung607@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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