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꿈에 대한 분석②
어젯밤 꿈에 대한 분석②
  • 김난주
  • 승인 2008.03.17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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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바다 위로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가 보통 정신이라 할 때는 의식만을 가리킨다.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도 의식의 건조물이기에, 학생들은 합리성과 이성을 도구로 하여 수학(修學)에 힘쓰게 된다. 대학뿐만 아니라 여타 사회영역에 있어서도 관찰되고 입증될 수 있는 것들만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일체의 비합리적인 영역은 관심의 대상에서 밀려나 있다. 비합리적인 영역에 관심을 가지면 뭔가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이러한 경향은 서양의 경우 계몽주의에 의해 절정을 이루게 되며, 다윈주의(Darwinism)나 유물론은 이러한 시대적 정신을 대표하고 있다.

그런데 20세기에 프로이트가 등장하면서 정신에는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도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프로이트에 의한 무의식의 발견은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것만큼이나 심리학의 역사에서 획기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프로이트에 의해 무의식이 연구되면서 융(Jung)과 아들러(Adler)가 나타나 뒤를 잇게 된다.

그들은 인간의 정신을 이해함에 있어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까지도 대상으로 삼았기에, 그들의 심리학은 심층심리학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기실 프로이트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은 꿈 즉, 무의식의 현상을 알고 있었고, 경험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발견자로 언급되는 것은 그에 의해 비로소 무의식이 학문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 이전에는 합리적 이성이 중요시되는 학문의 대상에 무의식이 포함될 수 없었다.

이들 심층심리학자들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이루어지는 정신의 구조를 건축물에 비유한다. 밖으로 드러난 건물 부분을 의식이라고 한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지하실은 무의식에 해당된다. 그런데 융은 이러한 무의식의 층을 세분하였다. 프로이트는 개인무의식만을 인정했는데, 융은 무의식에는 개인무의식 외에도 집단무의식이란 층이 존재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프로이트의 제자였던 융이 스승과 결별하는 원인이 된다. 개인무의식은 한 개인이 살아오는 과정에서 경험했던 부분 중에, 의식이 받아들일 수 없어서 억압되거나 관심을 끌기에는 대상이 가진 에너지가 너무 적어서, 의식의 영역에 남아 있지 않고 무의식에 들어간 내용들로써 이루어진다. 이 때문에 개인무의식은 극히 개인적이다. 삶의 경험이 각자가 다르기에 사람마다 개인무의식의 내용도 다르다.

그런데 집단무의식은 개인이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이는 인류가 출현한 이래 축적되어 온 것이기에, 인류 공동의 자산이라고 한다. 가령 나의 집단무의식과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원주민의 집단무의식의 내용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처음에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그러나 융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유전자가 인종에 상관없이 동물과 구별되는 공통의 유전자를 지녔듯이, 정신적인 면에서도 인류 공통의 정신구조가 유전된다고 한다.

실제로 무의식을 경험해나가다 보면 처음에는 주로 개인무의식을 만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집단무의식을 경험하는 때가 도래한다. 필자의 경우 내가 꾼 꿈을 이해하지 못해서 궁금하던 차에, 우연히 심리학책을 읽었는데, 꿈 내용이 이집트 벽화에도 나오는 내용임을 알고 몹시 놀랐던 적이 있다. 그러면서 ‘집단무의식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이제 정신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꿈을 하나 들어보기로 하자.

남자 대학생이랑 서해안으로 여행 갔다. 바다에는 드문드문 작은 섬들이 떠 있었다. 하룻밤 묵어갈 민박집을 찾던 중 허름한 단층집을 잡았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니 단층집이 아니라 20층짜리 대리석 빌딩이었다. 주인이 3층(2층?)에 방을 정해주었다. 방 안에서 유리창 밖을 보니 바다가 보였다. 나는 19층으로 옮기겠다고 말했다. 밤 사이에 만조가 되면 방이 물에 잠길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과연 물이 불어나 바로 밑층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런데 동시에 나는 해저를 볼 수 있는 방에 있었다. 유리창 밖에는 바다 위에서는 볼 수 없는 바위섬들의 밑둥이 보였다. 바다는 어두스름하고 요철이 심했다. 그런데 밤 사이에 도둑이 들어와 동행했던 남학생의 지갑(돈?)을 훔쳐갔다. 그런데도 그는 주인한테 따지지 못했다. 그의 소심한 행동을 보면서 ‘나도 대학생 때는 저랬지’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주인한테 책임을 추궁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을 보니, 아는 사람의 얼굴이 아닌가!



밖에서 볼 때 민박집은 분명히 허름한 단층집이었다. 그런데 내부에 들어가서야 고층 건물임을 알게 되었다. 여기서 정신의 구조가 건물로 나타남을 알 수 있는데, 밖에서 본 민박집의 외관이 의식에 해당된다면,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 알 수 있었던 20층 건물은 무의식을 포함한 정신 전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정신의 층이 의식만이 아니라 무의식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세계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의식층보다 훨씬 깊은(여기서는 20층 높이) 것임을 보여준다. 더구나 건물 내부에서 보이는 바다는 무의식의 영역이 엄청나게 광대함을 나타낸다.

꿈에서 필자는 서해안으로 여행하는 중이었는데, 이는 앞으로 필자가 하게 될 무의식의 경험을 나타낸다. 익숙한 생활환경을 떠나 낯선 곳을 답사하는 여행은, 미지의 세계인 무의식을 경험하는 것과 유사하다. 일상생활이 이성이나 합리성, 의지 등이 중요시되는 의식의 세계라면, 정서나 감성의 충족이 중요한 여행은 비합리적인 무의식의 세계에 대응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여행지가 서해안이다. 바다는 흔히 무의식의 상징으로 대표적인 것으로, 육지가 의식의 세계라면 끝없이 넓고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와 같은 물은 무의식을 상징한다. 서쪽 또한 무의식을 상징하는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해가 뜨는 동쪽이 이승, 의식의 세계라면, 해가 지는 서쪽은 저승, 무의식의 영역에 해당된다. 이는 의식이 자신을 빛으로 인식하고, 무의식을 어둠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선사시대에 만들어진 고분에서 죽은 이의 머리는 동쪽을 향해 있는데, 이는 망자의 부활을 바라는 믿음을 나타낸다.

이제 유리창에 대해서 알아보자. 꿈에서 의식이란 건물에 유리창이 없었다면 바다를 구경할 수가 없다. 이처럼 우리의 정신에는 무의식과 관계 맺을 수 있는 - 꿈에서는 건물 밖에 있는 바다를 구경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음- 기능이 존재한다. 무의식은 말 그대로 의식이 없는 즉, 의식의 작용이 못 미치는 영역이다. 그렇기에 의식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 불가능하다. 그런데 묘하게도 정신에는 초월적 기능이 있어서 의식은 무의식과 관계를 맺고 깊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유리는 차가운 특성 때문에 흔히 냉철한 지성에 비유되기도 한다. 꿈에서 나와 바다 사이에는 엄연히 유리창이 존재한다. 만약 유리창이 없었더라면 나는 바닷물에 휩싸여 익사했을 것이다. 무의식을 경험할 때 중요한 것이 이 유리창이다. 유리창으로 상징되는 지력과 자아(의식)의 힘이 공고하지 못하면 무의식이 가진 엄청난 힘에 압도될 수 있다.

그럴 경우 매우 위험한 상황, 극단적일 경우 정신이상(psychosis)이 될 수도 있다. 자는 사이에 부풀어진 바닷물은 무의식의 활동이 활발해진 것을 나타내는데, 이 때 강인한 자아(의식)가 없다면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융은 의식이란 삶의 발판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책에 보면 분석가가 분석을 할 때에도 자아(의식)의 힘이 미약하면 일단 자아를 공고히 하는 데 먼저 치중하게 된다.

언젠가 세미나에서 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어느 대학생이 꾸었던 꿈을 들었던 적이 있다. 꿈에서 그는 밤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귀신이 커다란 입을 벌려 자신을 삼키려 했다. 분석가는 자아(의식)가 약해서 당분간 분석 작업을 중단하는 게 좋다는 말을 했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 이 꿈을 다시 읽으니 새삼스럽게 놀라게 된다. 꿈에서 해저를 구경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무의식의 깊은 곳, 집단무의식의 세계를 경험할 것임을 이미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이 꿈에는 그 외에도 말할 부분이 많다. 여행 중에 지갑(돈)을 잃어버리는 모티프도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이에 관해서는 기회가 닿으면 언급하도록 하겠다.

김난주
김난주

 houseonwate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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