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詩)의 미래, 어둡지 않다
우리 시(詩)의 미래, 어둡지 않다
  • 김진성 기자
  • 승인 2008.03.17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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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처럼 서점에 시집 많이 꽂힌 나라 없어


"글 쓰는 사람은 세상에 대한 연애감정 늘 있어야 쉽게 시들지 않는다"

<지난 호에 이어> 

▲ 어른을 위한 동화, 때묻은 어른들의 때 벗기자는 의도죠. <사진=최정빈 기자>

▲ 『연어』, 『관계』 등 시인의 작품인생을 장식하는 또 다른 영역인 어른을 위한 동화도 꾸준히 집필해 오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 시인께서 지향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 (지향하는 바는) 여러 가지 있는데 어른을 위한 동화니까 일단 어른들의 때밀이, 어른들한테 때를 벗기자는 의도도 있고요. 우리나라는 성장소설이 좀 약하죠. 우리나라 청소년들, 청년들의 독서습관이 동화에서 곧바로 소설로 넘어오는데, 성장하는 사람들한테 메시지를 주고 싶다는 욕심도 있습니다.

▲ 영어 공교육 논란 등 교육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이를 보면서 교육 열풍은 뜨거운 반면 교육 정책은 그만큼 따라와 주지 못하는 걸 느낍니다. 그 중 하나로 문학 교육도 언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능을 위해 닥치는 대로 시를 읽고 분석하고 참고서에 나온 대로 중요한 시의 분위기, 주제를 외우는 것이 과연 진정한 문학 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국어 교사로 재직하셨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에 더 관심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 우스갯소리로 한때 시를 수능에서 빼는 게 어떻겠느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왜냐면 시를 공부할수록 시와 친해지는 게 아니라 자꾸 멀어지기 때문이죠. 들여다볼수록 어려운 거예요, 시가. 그런데 그것은 시가 수능에 들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고, 시나 소설을 시험을 보기 위한 지문으로 접근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인 것 같아요.

뭐 시험을 볼 수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감상하기, 느끼기가 부족한 거죠. 이해하려고 했지 느끼려고 하지 않는 겁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이성 간에도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는데 느낌이 없다면 그 두 사람의 관계가 정상적일까요. 내가 여자친구를 좋아하는데 “이해해, 충분히 네 말 알겠어, 맞아” 이러지만 느낌이 없다면 사랑이 이뤄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렇다고 문학교육 자체만 탓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시나 소설 안 읽는 사람들한테 읽으라고 억지로 갖다 댈 필요는 없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문학에 접근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게 의식주라면 시가 의식주를 해결해주진 못하지만 시라는 것은 읽는 순간에 행복한 느낌을 갖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나는 그렇게 봐요. 비록 순간적이지만요. 인생을 즐기고 싶다면 저는 시를 읽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 지난해 전주에서 열린 ‘2007 아시아·아프리카 문학 페스티발’에서 한국 측 운영위원으로 참가하셨습니다. 이와 관련 주도적으로 활약하셨는데 페스티발은 어떤 의미가 있었습니까.

-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도 마찬가지지만 문화도 지금은 미국과 유럽 중심이고 제국주의식이죠. 국내서점에 가도 세계문학전집이라고 하는 것은 주로 유럽문학에다가 일부 3세계 문학을 합친 것입니다. 우리가 세계문학전집이라고 하는 것은 유럽문학전집이나 거의 마찬가지죠.

아시아랄지, 아프리카랄지, 라틴아메리카랄지, 머릿수로는 이쪽이 훨씬 많거든요. 중국하고 인도만 합쳐도 그렇죠. 어떻게 보면 문화의 주변부였던 아시아와 아프리카 작가들이 만나서 이 지역 작가들이 내장하고 있는 가능성들을 이제는 주변부가 아니라 세계 문학의 하나의 가능성으로 새로운 어떤 동력으로 만들어야 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라는 생각 속에서 이렇게 하게 된 것입니다.

45개국 80명에 가까운 작가들이 국내를 찾았고, 규모로는 해방 이후 제일 많은 숫자입니다. 다른 나라가 아니고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유치하게 됐다는 것도 상당히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하면 우리문화도 세계문화 전체에서는 주변문화였는데 이제 그 중심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한국의 문학인들이 주도적으로 앞에서 끌어가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는 거죠.

▲ 이명박 새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새로운 이념이 대두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시인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이명박 정부가 구체적인 정책들을 어떻게 실행해나갈지 아직은 모르는 상태지만 인수 당시의 영어몰입교육이랄지 한반도운하 논란이랄지 내각구성에서 불거진 그런 것들을 보면 좀 심란해요. 실용이라는 말 자체는 좋아요. 실용, 실사구시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그렇지만 경제, 경제하면서 모든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원시키려는 태도에 난 동의할 수 없어요.

그리고 특히 우려되는 것은 남북관계가 겨울에서 봄을 지나왔는데 이게 여름으로 가지 못하고 혹시나 다시 겨울로 돌아가는 게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죠. 아직도 정부 속에서 논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통일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해 나간다면, 앞으로 걱정되는 상황이 도래할지도 모른다고 보죠.

아, 시인의 역할을 물었죠? 저는 한국에서 시인들이 어떤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작품을 발표하는 시기가 끝난 줄 알았어요, 십년 전에. 앞으로 두고 봐야겠지만 아마 소설도 그렇고 이제 상황이 또 심각한 상황이 온다면 시인들이 다시 광장의 시라고 할까요. 그런 대사회적인 목소리를 내야 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고 보는 거죠.

▲ 한국 시문학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거창한데요?(웃음) 다른 나라 어디를 가 봐도 시에 대한 자부심이 뚜렷한 나라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나라나 민족이 생길 때 우리 시인들은 자기 몸을 던져서 시와 함께 자기 몸을 불살랐던 역사도 있죠.
세계 어떤 서점을 가도 우리나라처럼 시집이 많이 꽂힌 서점이 없어요. 시집 코너가 따로 있는 데가 없죠.
(우리나라처럼) 시집 베스트셀러 내는 나라도 없어요.

그렇게 보면 오히려 (우리 민족이) 시를 사랑하는 민족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그런 전통적인 시를 사랑하는 성향에다가 인터넷의 이점이 결합되기만 하면 앞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한테 ‘아 저 사람들 정말 시를 즐기고 사는 사람들이구나, 정말 문화민족이구나’ 이런 말을 할 때가 올지도 몰라요.

그리고 노벨문학상, 그것이 최고는 아니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우리 시를 한글이라는 단일한 언어로 쓰다보니까 한글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에 번역의 어려움이 토로되는 경우가 많아요. 미묘한 의성어, 의태어랄지 이런 걸 어떻게 번역하느냐, 이거죠. 물론 어려운 게 사실이었지만 그런 어려움이 인터넷 강국에서는 오히려 더 쉽게 해결되지 않을까 싶어요.

만약 서정주 시인의 시집 한 권을 누군가 번역해서 프랑스에서 책을 낸다고 봐요.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겠죠. 그렇지만 인터넷이 있기 때문에 인터넷을 활용한다면 그걸 번역해 놓고 수많은 토론들을 거치는 과정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는 거죠. 내가 보기엔 우리 시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 밝다고 보는 거죠.

▲ 시인께서는 일상적인 소재를 부드럽고 세련된 언어로 표현하며 많은 시 매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시어들을 나올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 나는 감수성도 훈련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어휘구사도 훈련에 의해서 만들어진다고 봐요. 그 훈련방법 중에 가장 좋은 것은 당연히 독서겠죠.

우리가 어떤 말에 대해서 예민해진다는 것은 (그것이 문학적인 표현이 아니더라도) 사람에 대해서 예민해진다는 것과 똑같은 것이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의 말 한마디, 눈길 한 번만 봐도 다 알잖아요. 나는 가능하면 글 쓰는 사람으로서 세상에 대한 연애감정을 늘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연애감정이 있어야 생각도 시들지 않고 사용하는 말도 시들지 않죠. 뭐 그런 것이 바탕이 되겠죠.

▲ 우리대학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 평소에 김수복(문예창작) 교수님의 시를 굉장히 좋아하고 그분과 친분 관계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김 교수님께서 “공부 좀 더 하라”며 대학원에 다닐 것을 권유하셨고, 교수님과의 인연으로 대학원을 다니게 된 거죠. 아직 논문을 안 써서 졸업을 못하고 있긴 하지만요. (웃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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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도현 시인은

1961년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대구매일신문 ‘낙동강’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 『그대에게 가고 싶다』,『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등이 있으며, 최근 9번째 시집 『간절하게 참 철없이』를 출간했다. 『연어』, 『짜장면』, 『관계』 등 어른을 위한 동화로도 대중적인 사랑을 얻고 있다. 시와시학상 젊은 시인상, 소월시문학상 대상, 노작문학상, 이수문학상, 윤동주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우리대학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과정에 있으며,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에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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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insung607@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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