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잘 해야 국가경쟁력 제고된다?
영어 잘 해야 국가경쟁력 제고된다?
  • 신봉석 기자
  • 승인 2008.03.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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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과 수단의 전도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는 새 정부도 어느덧 모양새를 갖추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5년마다 늘 있어왔던 대로 이번에도 새 정부의 갖가지 정책들이 의욕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어떤 정책은 환영 받고 또 어떤 정책은 논란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놓여있다.

논란에 휩싸이는 정책이란 대개는 민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과 관련된 것들이다. 국가 정책인데 그렇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그 중에서도 교육정책은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민감하게 다뤄지는 사항이다. 지난 정부의 교육정책의 화두가 수능 등급제였다면,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화두는 ‘영어 공교육 강화’이다.

한국 사람들이 영어 교육에 쏟는 정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말하기가 새삼스러울 정도다. 대통령조차 ‘영어는 국가경쟁력’이라며 영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서는 판이다. 그리고 그 중요한 교육을 더 이상 학교가 아닌 사교육에 맡겨둘 수는 없다며 내놓은 것이 이번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교육비의 부담으로부터 학부모들을 해방시키고, 위기에 선 공교육도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으로 내놓았던 ‘영어 몰입교육’은 사회 전반에 큰 논란을 불러왔다. 2010년부터 모든 고등학교 교과목을 영어로 수업하는 것을 골자로 한 영어 몰입교육 시행 계획은 영어실력 향상은커녕 수업내용의 이해를 방해해 학습 성취도를 떨어트리고 그로 인해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하게 될 것이라며 실효성을 의심받았다.

정서적으로도 영어 몰입교육은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이 아니었기에 정책을 내놓았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곧장 계획을 철회하고 오로지 영어 과목에 한해서만 영어로 수업을 하는 지금의 강화 정책을 내놓았다. 그렇다고 새 정책도 국민의 시선에서는 그다지 탐탁스러운 눈치는 아니다.

당장 영어로 수업을 할 수 있는 영어교사의 수가 전체의 절반에도 못 미쳐 정책을 제대로 시행할 수 있을지조차 걱정스러운 형국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계약직 영어 전문 교사를 내년부터 매년 6,000여 명씩 총 2만 명 이상 고용하고, 현직 영어교사들에게는 6개월 이상 연수 기회도 준다고는 하지만 생각대로 인원 보충이 잘 이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현직 교사들을 재교육하기에도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어째서인지 정부는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을 너무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 급할수록 돌아서 가라 했듯이 지금은 정책의 시행보다 정책의 목적과 타당성을 한 번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은 누구나 고등학교만 마치면 생활영어회화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사실 영어로 말할 수 있는 것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영어회화 능력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다. ‘영어는 국가경쟁력’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영어는 경쟁이 벌어지는 국제무대에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몰랐던 사실을 배우며, 국제 정세를 고찰하기 위해 쓰일 때야말로 국가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단순히 영어로 말할 수 있다고 해서 경쟁력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필리핀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한다고 해서 잘 살고 있지는 않은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영어 공교육 강화 정책의 방향은 단순히 영어회화 능력의 배양이 아니라 그것의 의미 있는 활용에 초점이 옮겨져야 할 것이다.

틀림없이 영어는 국제화시대의 공용어이며, 국가경쟁력을 이루는 한 축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어로 잘 말하는 것을 전부로 여기고 거기에 집착해 진정한 목표를 보지 못해서는 안 된다. 영어 교육은 국제화시대의 경쟁력을 갖춘 인재를 기르기 위함이지, 단지 영어로 말할 줄 아는 앵무새를 기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신봉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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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adenian@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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