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과학 수사
37) 과학 수사
  • 신동희 교수
  • 승인 2008.03.18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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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미드’가 인기라지만 별반 관심이 없는 내가 주말 늦은 밤, 잠을 설쳐가며 보는 미국드라마가 있다. 바로 "CSI 과학수사대”다. 다소 과장된 면도 없지는 않지만, CSI 과학수사대가 최첨단 장비를 이용해 과학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장면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드라마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사건 해결에 동원되는 과학 장비들의 현란함에 놀랄 것이다. 이 드라마를 5회 이상 본 사람이라면, 첨단 장비 외에 수사진이 보여주는 범행 동기와 정황 추리의 과학성과 용의자 심리 파악의 과학성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우리 나라의 과학 수사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특히 유전자 감식 분야는 단연 돋보인다고 한다.

이 배경에는 세계 최고라는 우리의 생명공학 분야가 있다. 우리의 과학 수사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사례는 많지만, 지난 2006년 서래마을 영아 유기 사건의 경우, 용의자가 외국인이었기에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 우리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도움으로 현장의 머리카락과 생활용품을 정밀 분석했고, 프랑스로 도주한 용의자가 발뺌할 수 없는 증거를 확보했다.

이 덕분에 프랑스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 한다. 유전자 감식 외에 우리의 디지털 증거물 복원 기술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치밀하게 삭제된 컴퓨터 파일 복원은 이제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었고, 삭제된 휴대전화 사진이나 동영상 복원도 성공하고 있다. CCTV 영상만으로 용의자의 키와 몸무게까지 추측할 수 있다. 현장에 남아있는 단서를 기초로 교통 사고 순간을 3차원 동영상으로 재현할 수도 있다.

이 배경에는 생명 공학과 더불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우리의 정보 기술력이 있다. 21세기 중반 이후부터 과학이 사회에 가져다주는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많이 부각되는 분위기다. 대규모 살상 무기 개발의 출발이 되는 과학, 환경 문제를 야기하여 지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주범으로서의 과학, 우리 사회를 지나치게 자동화시켜 인간 관계를 너무 비인간적으로 만들어 버린 과학, 이런 것들은 모두 과학과 과학자들을 몸 둘 바 모르게 만드는 시각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범죄를 꿈꾸며 증거를 철저하게 인멸하는 살인범을 잡아들이는 것은 과학 기술력의 발전 없이는 꿈도 못 꾼다. 범인을 꼭 잡겠다는 사명감을 가진 경찰도 있어야 하고, 죽은 자의 인권도 보호해야 한다는 인권 운동가들도 있어야 하지만, 과학자들이 없다면 영원히 미제로 남겨질 살인 사건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이 정도면 과학도 사회 정의 구현에 큰 역할을 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의 수준급 과학 수사력 덕분에 네 모녀 피살 사건과 혜진이와 예슬이의 실종 사건이 뒤늦게나마 해결되었다. 이 두 사건 모두 CCTV, 혈흔 등 ‘물증이 확보된 이후’ 일사천리로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물증 확보 전의 초기 수사에서 네 모녀가 왜 3주 이상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지에 대한 수사관들의 정황 파악이 너무 허술했고, 1차 수사에서 두 여자 어린이를 죽인 용의자의 심리 상태를 꿰뚫어보기에는 수사관들이 너무 비전문적이었던 것 같다. 진정한 과학 수사는 수사 장비의 과학화를 넘어서서 수사관들의 추리력도 과학화되어야 함을 일깨워주는 안타까운 사건들이다.

신동희(사범대학·과학교육과) 교수

신동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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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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