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춧돌’ 뽑을까 걱정
‘주춧돌’ 뽑을까 걱정
  • 유인식
  • 승인 2008.03.18 07:51
  • 호수 1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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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에서 ‘전봇대’를 뽑아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전봇대는 전신주가 아니라 ‘규제’를 의미한다. 전남 영암군의 대불산업단지는 규제의 전봇대로 유명해졌다. 지난 1월 18일 인수위 간사단회의에서 불거진 ‘전봇대 발언’은 이후 모든 행정부서와 지자체의 ‘묻지마’식 새 정부 따라하기로 이어졌다.

즉,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실제로 전봇대를 뽑거나 대운하추진팀 꾸리기, 토요일 일하기, 회의 일찍하기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는 새 정부의 친기업 정책에 발맞춰 최근 조직개편을 하면서 기업지원과를 기업 사랑과로 바꾸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경북도는 지난 6일 점심시간에 도청 구내식당에서 쌀국수(쌀 컵라면) 시식회를 열었다고 한다.

그런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인지 서울시의회 교육문화위원회가 ‘학원 24시간 교습 허용’ 조례를 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18일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이 문제로 서울시의회 게시판에 비난의 글이 뜨겁다. 조례안이 통과되기 전인 지난 12일까지 하루에 한 건의 글도 오르지 않던 게시판이 16일 오후 10시 현재 1509건의 글이 올랐다. ‘(24시간 학원을 허용하려면) 학교에 침대를 제공하라’, ‘차라리 지방의회를 폐쇄하자’, ‘학원 교습 허용 시의원을 탄핵하자’ 등의 제안을 하기도 했다.

대통령도 교과부장관도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른바 ‘새벽별 학원’이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교육문화위원장이 모학원 이사장 출신이고 위원 15명 전원이 한나라당 소속이라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서울시의회에서 이런 조례 개정안을 내놓은 이유가 바로 ‘전봇대 논리’와 관계있다. 정 위원장이 모 신문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공교육이 무너진 상태에서 사교육을 규제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평준화 교육은 실패했다. 비평준화를 해서 학교간 격차가 있고, 학교에서 상·하반이 있어서 수준에 맞게 했으면 공교육이 이렇게 안 됐다.”고 말하고 있다.

즉, ‘학원 심야교습 제한’이라는 ‘전봇대’를 뽑아야 공교육이 살아난다는 억설이다. 위의 서울시의회 교육상임위 사이트에 실린 정위원장의 인사말에도 보면 ‘자립형사립고와 특수목적고를 확대하여 평준화체제 하에서의 획일적 교육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하는 데 중점을 두겠다.’고 한다. ‘행정 전봇대’는 뽑아야 한다. 그러나 ‘전봇대’를 뽑는다고 하면서 ‘주춧돌’을 뽑을까 걱정이다.

이땅에 평준화 정책이 자리잡은 지 30년이 넘었다. 정책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는다. 문제가 있으면 보완하면서 발전적으로 논의해야 하는데 무조건 ‘규제’라는 멍에를 씌워 제거하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다. 변변한 공청회 한번 거치지도 않고 공교육 개선을 위한답시고 학원에서 24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다. 근본적인 가치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유인식(교사) 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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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sik6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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