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꼭 여성인가?
왜, 꼭 여성인가?
  • 권용우 명예교수
  • 승인 2008.03.25 13:02
  • 호수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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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은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1908년 미국 뉴욕에서 근로조건 향상과 선거권을 요구하며 1만5000명의 여성노동자들이 대규모 행진을 벌인 사건을 기념해서 제정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날을 기념해 올해 여성운동의 캐치프레이즈를 ‘여성, 새로운 공동체 세상을 열자’로 정했다고 한다. 캐치프레이즈가 가지는 의미가 크게 느껴진다. 그 동안 우리 나라 여성운동의 행태가 어딘지 모르게 ‘남과 여의 이분법적 선상(線上)’에 두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61개 여성단체가 ‘범여성가족법개정촉진회’를 만들어 가족법 개정이 추진되었는데, 그 때의 양상은 마치 가족법 개정이 여성만을 위한 것처럼 비춰졌고, 따라서 남 ․ 여의 대립을 보는 것 같았다. 가족법의 어떤 조문이 불합리하다거나 시대에 뒤떨어진다면 그것을 개정해야 할 것이고, 그것이 남(男)이나 여(女)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남 · 여)의 문제일 것이다. ‘누가 가족법 개정을 추진하느냐 하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남이건 여이건, 쓸데없는 껍데기를 벗는 일인데….’ 그 때 나는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나의 편견인지는 모르지만, 남과 여는 ‘차별’이 아니라 ‘역할의 분담’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만물의 영장(靈長)인 우리 인간이 남과 여로 창조되었는데, 어찌 불평등한 신분을 부여받았겠는가? 남자는 남자로서, 그리고 여자는 여자로서 역할을 다함으로써 사회의 질서를 유지해가고, 성숙한 남녀가 결혼을 통해서 ‘한 가정(家庭)’을 꾸미게 되면 서로는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아니한 것을 상대방으로부터 얻음으로써 행복한 가정을 이룩하게 된다. 그리고, 자녀가 태어나게 되고, 그 자녀들은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다. 이들이 모여 하나의 사회가 형성되고, 더 나아가 하나의 국가가 형성된다. 이것이 행복의 출발이요, 평화의 시작이다.

남과 여는 가정에서도, 사회에서도, 국가에 있어서도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존재이다. 너의 몫, 나의 몫이 따로 없다. 모두 우리의 것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새 정부가 장관(長官)을 임명하면서 무슨무슨 부는 ‘여성 몫’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남이든 여이든 장관직에 오를 능력을 가졌다면 그것을 굳이 따질 필요가 있겠는가 싶다. 또, 능력 있는 여성에게 맡길 부가 굳이 무슨무슨 부만이 있겠는가.

이번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도 ‘왜, 정작 장·차관 중 여성은 2명뿐인가?’라는 내용이 어느 일간신문 한 면을 장식했다. 장·차관 중 여성의 비율이 너무 낮다는 실망 섞인 기사이다. 뿐만 아니라, 어느 신문에서는 “대통령 참모진의 마초(macho, 남성적) 분위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덧붙이기도 했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한 여성위원은 “정계, 기업을 구별할 것 없이 한국 보수 남성들의 여성관이 너무 편협하다”며, “남성들을 위협하지 않는 여성만 받아들인다”고 꼬집었다. 우리 사회에 이런 면이 있다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그러나, 바라건대 이제는 남·여의 구별을 ‘차별’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그리고, ‘할당제’(?)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번 이명박 정부의 첫 인선(人選)에서도 ‘무슨무슨 장관은 여성몫’이라는 틀 때문에 장관 후보자의 사퇴(辭退)를 빚게 된 원인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성부나 환경부가 사회적 약자를 돌보아야 할 자리라는 당위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의 마거릿 대처(M. H. Thatcher) 수상,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A. Merkel) 총리,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C. Rice) 국무장관. 얼마나 당당한가. 이제 우리나라에도 여성대통령이 나올 때가 되었다. 왜, ‘할당제’인가?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의 말이 떠오른다. “정치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여성이라는 편견없이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라고 했다. 이를 위해서 “여성 정치지망생들을 위한 ‘캠페인 스쿨’을 꾸준히 진행한다”고도 했다.

오늘의 고민을 풀어줄 역량있는 여성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한다. 박순천, 임영신, 이태영 여사의 뒤를 이어갈 ….

권용우 명예교수
권용우 명예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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