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자연재해 vs. 공천
38) 자연재해 vs. 공천
  • 신동희 교수
  • 승인 2008.03.24 23:35
  • 호수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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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대통령은 20년 전 5공 청문회 때 ‘혜성’과 같이 나타나 대중적 직설 화법을 구사하며 대통령까지 올랐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활화산’ 같이 타오르던 노무현 전대통령의 인기는 임기 중반도 채 되지 않아 수그러들었다. 지지도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품격을 잃은 화법도 화법이었지만 문제는 경제였다.

경제 문제는 얼마 전까지도 정치권의 주요 이슈였던 이념 논쟁을 ‘화석화’시켰다. 지난 대선의 승패를 판가름한 것은 이념도, 도덕성도 아닌 경제였다. 공천 접수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한나라당에는 접수자 ‘홍수’ 현상이, 민주당에는 접수자 ‘가뭄’ 현상이 있었다.

그러나, 불과 몇 주 만에 여당의 과반수 의석 확보 계획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이번 총선에는 정치 생명을 건 ‘거성(巨星)’ 정치인들이 유달리 많다. ‘쓰나미’급 공천은 겉으로는 분위기 쇄신, 인물 쇄신을 내세웠지만 속으로는 치열한 권력 다툼을 보여줬다. 지역구 민심을 전하며 대통령 친형의 불출마를 내세운 한 여당 의원의 바람은 ‘태풍’이 될지, ‘미풍’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게 총선인지, 대선인지 헷갈리는 서울의 한 지역구는 이번 총선의 ‘태풍의 눈’으로 떠오르고 있다. 탈당한 친박 계열 의원들이 대거 출마하는 영남 지역의 민심은 한나라당 의석수의 ‘풍향계’가 되고 있다. 대를 이은 정치를 꿈꿨던 전직 대통령 둘은 아들은 물론이고 최측근 모두 공천조차 받지 못하는 ‘역풍’을 받았다. 여당과 야당의 공천심사위원회는 모두 각 당의 현재 실세와는 ‘온난전선’을, 과거 실세와는 ‘한랭전선’을 사이에 두고 있다.

승자 독식’이라는 ‘정글의 법칙’은 정치권에서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이번 공천의 ‘여진’은 총선이 끝나야 멈출 것이다. 2주일 뒤 우리 정치권에 어떤 ‘지각 변동’이 생길 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도 기막힌 여야 ‘황금 분할’을 만들어낸 우리 국민들은 이번에도 현명하게 판단할 것이라 기대한다.”

이상은 가상 정치 논평이다. 윗글에서 밑줄 친 단어들은 과학, 특히 기상, 지질, 천문 용어 등 자연 현상과 관련된다. 이들 단어가 현재의 정치 상황 설명에 잘 들어맞는 것으로 보아, 자연 현상과 사회 현상이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자연 현상 중에서도 쓰나미, 태풍, 지각 변동, 지진, 활화산, 홍수 등 재해를 일으키는 대규모 변화가 우리 정치권의 실상을 표현하는 데 더없이 잘 들어맞는다는 것이 씁쓸하다. 자연의 변화는 대규모든 소규모든 모두 자연의 평형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과정이다.

재해만 일으키는 것 같아 보이는 대규모 자연 변화에도 순기능이 있다. 태풍으로 심해(深海)의 영양수가 천해(淺海)로 올라와 이곳에 사는 동식물들에게 더 많은 영양분이 공급된다. 태풍 덕에 적조 현상도 해소되고 바닷물의 산소량도 많아진다. 화산 활동으로 퇴적된 화산재는 토양에 많은 영양 염류를 공급한다.

홍수 범람 지역에는 비옥한 퇴적물이 생겨 농경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는 자연 재해에도 혜택을 보는 누군가가 있듯이, 이번 공천에도 피해자와 수혜자가 있다. 누가 공천을 받던지 별 상관없다. 궁극적으로 우리 국민에게 피해가 아닌 더 많은 혜택이 돌아온다면 이번 공천은 재해가 아닌 변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신동희(사범대학·과학교육과) 교수

신동희 교수
신동희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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