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수난시대
공무원 수난시대
  • 장현철 동우
  • 승인 2008.03.25 23:49
  • 호수 1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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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 시즌이다. 그간의 많은 가치와 제도가 부정 받고 새로운 질서가 휘몰아쳐 온다. 사람이 바뀌고, 규칙과 기준이 달라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경제와 문화가 사회적 주도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최종 승자는 역시 정치이다.

정치가 다른 분야를 압도하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관료사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의 집행자이자 법의 입안자인 관료들은 세파에 민감하다. 관료조직은 철저히 법을 먹고 산다고 하지만 한꺼풀 들어다보면 관료조직처럼 약한 곳도 없다. 인사권을 장악한 정치권력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없다. 더구나 관료사회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뿌리 깊은 상황에서 대다수 정치권력은 ‘관료사회 변화’를 개혁의 상징으로 포장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순치된 관료사회를 정치권력의 튼튼한 기반으로 활용한다.

그러나 결코 넘어서는 안될 금도가 있다. 최근 벌어진 한 사건이 그렇다. 참여정부에서 기자실 개편을 주도했던 한 공무원이 자의반 타의반 퇴직했다. 그는 새로운 부처에서 한 계급 강등하면서 보직을 받았지만 일부 언론의 정치공세가 계속되자 결국 공직사회를 떠났다. 그 공무원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노동부 등 여러 곳에서 능력을 인정 받았던 사람이다. 언론에선 자기들이 관련된 문제인 탓인지 별 의미를 두지 않고 넘어갔지만, 그렇게 가볍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공직자의 잘못은 단순하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 죄라면 죄다. 물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사감이나 가치관이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는 모를 일이다. 다만 짐작하건데 자신의 생각과 기자실 개편 방향이 꼭 일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기자실 개편과 미디어홍보를 책임지는 공무원이 대통령의 언론관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현 정부가 ‘프레스 프랜드리’를 표방한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정권이든 언론에 대해서는 일정한 기준과 원칙이 있다.

언론정책은 어떤 공무원이든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계륵’이다. 잘못하면 언론의 몰매를 맞지만 잘하면 본전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일이다. 지금도 새로운 사람들이 새 정부의 언론정책을 견실히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들도 가까이해서는 안 될 ‘뜨거운! 감자’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셈이다. 그들에게 미디어정책의 책임을 지고 공직사회를 비참하게 마무리하는 동료 공무원은 반면교사의 대상이다.

관료는 애증이나 일체의 개인적 계산이나 감정을 사무처리에서 배제하도록 교육받는다. 명령과 지시에 충실하고 오로지 법을 중시해야 한다. 그런 의식이 그간의 사회적, 정치적 요구였다. 숱한 관료들이 정치권을 넘나들며 곡예를 펼쳤지만 적어도 외형적으로 정책에 대한 책임이 사적으로 귀결되지는 않았다.

외환위기 때도 이 원칙은 지켜졌다. 정치권력이 자신의 생각과 다른 공무원을 지켜주지 않으면 관료의 선택은 명확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특정 정치권력과 운명을 같이하는 것, 두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모두 기회주의적 처신이다. 한 공무원의 사퇴를 보면서 한국적 관료제의 어두운 현실을 생각한다.

장현철 동우
장현철 동우

 myjh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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