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술이 몇단?
당신은 술이 몇단?
  • 심지환 수습기자
  • 승인 2008.04.01 17: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옛말에 ‘술 마시는데 주량의 제한은 없었으나 주정하는 법도 없었다’(惟酒無量 不及亂)란 말이 있다. 이는 아무리 술을 마셔도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고 품위 있게 술을 마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지훈 선생의 수필 ‘주도유단’(酒道有段)을 빌려 보면 이정도의 경지는 아마 주선(酒仙)쯤에 이를게다.

요즘 대학가에 신입생 환영회다 MT다 뭐다 해서 술판이 한창이다. 선·후배간 통성명을 하고 흥을 돋우고 친밀감을 높이는데 술만한 도구가 아직은 없기에 술판 자체를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도를 지나친 술자리, 그로인해 싸움과 욕설과 토설과 눈물이 얼룩지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목격하며 ‘주도유단’을 생각게 되었다.

'주도유단'에 보면 “술을 마시면 누구나 다 기고만장하여 영웅호걸이 되고 위인 현사(賢士)도 안중에 없는 법이다. 그래서, 주정만 하면 다 주정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주정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과 직업은 물론 그 사람의 주력(酒歷)과 주력(酒力)을 당장 알아낼 수 있다. 주정도 교양이다. 많이 안다고 해서 다 교양이 높은 것이 아니듯이 많이 마시고 많이 떠드는 것만으로 주격(酒格)은 높아지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주도(酒道)에도 바둑과 같이 9급에서1급, 다시 1단에서 9단까지 단수를 두었다.

나의 경우 술을 먹고 크게 실수 한 적이 있어 7급에 해당하는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인 민주(憫酒)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요즘 술을 잔뜩 먹고 자기 자신도 챙길 수 없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이는 하급에도 들지 못하는 반(反)주당들이다.

물론 술에 깊은 조예가 있는 조지훈 선생이 나눈 단(段)에 꼭 들어가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학사회나 우리사회는 아직도 술로 통하는 사회이다 보니 술자리가 잦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부터 술 문화를 바로 잡아가려는 노력들이 선행되어야 우리 사회의 술 문화도 바뀌지 않을까?

술을 강권하기 보다는 자신에 맞게, 자리의 흥취를 돋우는 만큼의 적당량으로 절제하는 술자리, 그런 자리가 신입생인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필요한 때인 듯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