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어지도’ 완성
‘한국언어지도’ 완성
  • 김은희 기자
  • 승인 2008.04.07 19:52
  • 호수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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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현(국문) 명예교수

<사진=하경민 기자>
전광현 교수는 1937년 7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전 교수는 1978년 3월에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취임했으며 1992년 1월부터 9월까지 연구담당 부총장직을, 같은 해 3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학사담당 부총장직을 수행했으며 이후 총장직무대행직도 역임했다. 또 국어사연구회 회장과 국어 관련 학회 가운데 국내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국어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전 교수는 지난 2002년 8월 퇴직, 현재는 우리대학 명예교수로 있으며 지난 2월 28일 이익섭, 이병근 서울대 명예교수, 이광호 한국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최명옥 서울대 교수와 『한국언어지도』(태학사)를 펴냈다. 지난 3일 오후 6시 한남동에서 만난 전 교수에게 『한국언어지도』와 언어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물어보고, 국어조사 중 있었던 일화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 국내 최초로 방언을 구획별로 구분한 『한국언어지도』를 완성하셨습니다. 전국적으로 방언을 조사한 결과물인 만큼 연구기간도 상당했을텐데요.

1978년 8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전국방언조사연구’ 10개년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저를 비롯한 5명의 국어학자가 연구위원으로 선발됐고 조사원 공채가 실시됐습니다. 1980년 7월 2300여 개의 항목을 대상으로 ‘한국방언조사질문지’가 작성됐습니다.

이를 토대로 예비조사(기존의 문헌 및 사례연구 등을 자세히 검토하고 재구성함으로써 연구하고자 하는 문제를 구체화하거나 이론적 추론을 통해 가설을 설정하는 작업)와 현지조사(실제로 조사하고자 하는 현장에서 실시되는 조사)가 이뤄졌습니다. 1985년 군 단위 조사가 완료됐고, 이후 확인조사(현지조사를 통해 수집된 자료를 확인 및 검토하는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를 토대로 한 『한국방언자료집』이 1987년 5월 충청북도 편을 첫 권으로 출판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도’별로 총 9권, 1995년 7월 제주도 편을 끝으로 모두 출판됐습니다.

1997년 저를 비롯한 5명의 국어학자들은 ‘전국방언조사연구’ 10개년 계획의 최종 목표인 지도 작성을 앞두고 각 지방의 언어변천을 잘 드러내는 135개의 어휘를 선정했습니다. 예산 부족으로 인하여 몇 차례 작업이 중단됐다가 지난 2월 『한국언어지도』가 출판됐지요. 많은 언론에서 언어지도를 그리기 위해 30년이 걸렸다고 표현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본격적으로 『한국언어지도』를 만들기 위해 연구위원이 투입된 것은 1997년이지요.

▲ 한국방언조사질문지, 한국방언자료집, 한국언어지도의 모습

▲ 『한국언어지도』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의미가 깊은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설명과 이 책의 특성, 『한국언어지도』의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앞으로 이를 바탕으로 후임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할 지 말씀해주십시오.

지도는 크게 ‘진열지도’와 ‘해석지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진열지도’란 지도에 특정 기호만을 표시해놓은 지도를 의미하고, ‘해석지도’란 불필요한 것들을 한데 합쳐 하나로 묶어 색 등으로 특별히 구분한 지도를 뜻합니다. 『한국언어지도』는 우리나라 전지도 상에 각 군마다 방언별로 기호를 표시했을 뿐만 아니라 방언이 비슷한 지역을 같은 색으로 한데 묶어 표시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진열지도와 해석지도를 혼합한 국내 최초의 방언지도인 것입니다. 또한 다른 나라들의 언어지도가 흑백인 반면 『한국언어지도』는 세계 최초의 해석지도와 진열지도를 혼합한 컬러 언어지도라는 점에서 전 세계에 내놓아도 무방할 만큼 자랑스럽지요. 더불어 이 책은 ‘방언적 차이’를 충분히 반영하는 책입니다.

‘방언적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언어적 차이’와 ‘방언적 차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하죠. ‘언어적 차이’란 한국어와 영어, 일본어와 프랑스어간의 차이, 즉 나라간의 언어차이를 의미합니다. ‘방언적 차이’는 경상도 방언과 전라도 방언이 다르듯 한 나라 안에서 한 언어 속에 있는 차이를 의미하고요.

이 책의 저자로서 북한지역의 방언을 다루지 못했다는 점을 매우 아쉽게 생각합니다. 북한의 경우 방언이 남한보다 더 빨리 없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북한어를 살펴보면 옛 우리 선조들의 이동모습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훗날에는 북한의 방언까지 추가됐으면 좋겠군요. 방언분화는 강, 산과 같은 지형, 생활방식, 사고방식, 역사 등 언어외적인 요소들에 의해 일어납니다.

방언은 전이지대에서 방언끼리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하고, 이동하기도 하지요. 언어끼리 얼마나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파악하고 비언어적 요소가 무슨 작용을 했는지 보는 것은 한국어변천사를 파악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작용을 합니다. 이 지도는 방언분화가 왜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찾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 방언연구를 오랫동안 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7~19C의 근대국어를 전공하신 교수님께서 방언연구를 하시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요. 또 오래 전부터 국어학자로 많은 조사와 연구를 하셨을 것 같은데 연구 중 특별한 일화가 있나요?

한국어변천사를 알려면 방언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역사적 문헌자료와 방언을 연결시켜보면 변화된 흔적이 방언 속에 녹아 있어 역사적으로 국어가 어떻게 변화됐는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방언이 가진 많은 특징들과 근대국어가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아 방언공부를 하기 시작했지요.

방언연구의 특성상 현지조사를 여러 번 했었는데요. 60년대 후반쯤에는 등산복을 입고 방언조사질문지, 노트, 카메라, 녹음기, 국제음성기호책, 라면, 쌀, 칼, 손전등 등이 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매고 조사를 다니다가 종종 간첩으로 오해받기도 했었습니다. 국민학교 아이들이 저를 보고 신고한 까닭에 놀라서 달려온 경찰들에게 교수신분증을 내놓으면 그들은 다시 한 번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 주민등록증까지 요구했지요. 그러면 저는 “무슨 간첩이 신분증이 없겠냐고” 되물었고, 이에 대해 경찰들은 아무 말도 대꾸하지 못했었지요.

“우렁쉥이 들어보았지요,  멍게의 표준어 입니다. 물론 지금은 둘다 표준어 이지요”

▲ 방언은 곧 사투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요? 또 방언과 사투리, 표준어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방언은 특정지역의 언어체계를 의미합니다. 방언에서 인위적으로 골라낸 것이 표준어이지요. 표준어는 인위적이고 지시적이며, 교육적이고 명령적입니다. 한 국가, 한 민족을 이끌어나가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러한 특성을 지니는 것입니다. 정치, 사회, 문화 등 특정 영역 언급할 것 없이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공통적인 언어가 필요합니다. 표준어는 그러한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우렁쉥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는 누구나 아는 어떤 것에 대한 표준어표현입니다. 다른 말로는 ‘멍게’라고도 하지요. 이처럼 방언 가운데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어휘를 표준어로 인위적으로 추출해 사람들 간에 오해나 소통장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결국 멍게는 우렁쉥이와 함께 몇 년 전 표준어로 인정받았지요.

“공기 다음으로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말입니다”

▲ 언어(言語)란 무엇입니까.

인간은 ‘사고’에 의해 ‘표현’하고, 표현의 수단으로 ‘언어’를 사용합니다. 따라서 ‘언어’란 표현의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어는 표현의 수단이면서도 사고방식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요. 넓은 의미의 언어는 말소리 뿐 아니라 보디랭귀지(body language)까지 포함합니다. 사람들에게 공기(air)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말’이라고 합니다. 말을 기록한 것이 ‘문자’이지요. 문자와 말이 결합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문자가 없는 것은 괜찮으나 말이 없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인간에게 언어가 없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 행동들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게 되지요. 한국인은 ‘책’이라는 말을 들으면 ‘ㅊ, ㅐ, ㄱ’ 등 3개의 음운을 머릿속에서 순서대로 결합합니다. 이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지에 따라 인지하는 대상이 달라지고요.

한편 미국인은 ‘책’이라는 음성 자체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book'이라고 말해주어야 하지요. 우리나라 사람 머리 속에는 b, d, g와 같은 음운이 없기 때문에 이를 음성으로 표현하고자 할 때는 자연스럽게 본래의 b, d, g 소리가 아닌 된소리나 무성음을 냅니다. ‘book’을 [북]이라고 발음하지 않고 [뿍]으로 발음하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b에 대한 음성은 있으되 음운은 없는 것이지요. 이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음운체계 사이에 차이가 있음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예입니다. 궁극적으로 말하자면 언어의 차이는 사고의 차이, 생활방식의 차이까지 가져올 수 있습니다.

 

▲ 교수님 인생을 바로잡는 교수님의 단어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공자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이지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뭐든지 지나치면 결과가 좋지 않음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과유불급을 깊이 새기고 담배도 술도 모두 끊었지요.(웃음)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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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morikam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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