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칼국수 아시나요?
팥칼국수 아시나요?
  • 공문성 수습기자
  • 승인 2008.05.0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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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사랑 그녀의 주홍빛 입술을 닮은 '주홍칼국수'

팥칼국수 아시나요?

첫 사랑 그녀의 주홍빛 입술을 닮은
‘주홍칼국수’



누군가는 지나간 향수의 맛이라며 특정 음식을 기억하며 입맛을 다신다.
지금의 아버지 세대들은 6,70년대에 할머니가 해주셨던 음식들과 보릿고개 때 먹은 감자나 고구마, 그때 약간의 부족한 맛의 음식이 정말 맛있었다며 지금은 그런 맛이 안 난다고 섭섭해 한다.

우리세대(80년~90년대 태어난 세대)의 ‘맛의 향수’란 무엇일까?
학교 앞 포장마차에서 팔던 백원에 여덟개 주던 밀가루 떡볶이?
아폴로, 쫀득이, 콜라 맛이 나던 젤리 등 불량식품? 초등학교 때 시험을 잘 봤다며 사준 레스토랑의 돈까스. 여자친구 앞에서 있는 척하려고 2주간 돈 모아(고등학생 신분으로는 제법 거금인 10만원) 갔던 TGI. 음식에 담긴 소소한 일상과 결합된 추억을 제외하곤, 특정음식이 그리운 감정은 별로 없는데 그 이유는 그들(아버지 세대)에 비해 살아온 기간이 짧아서 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니 필자가 살았던 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 그 음식은 '그이 요리'인데 '그이'는 충청도에서 민물 게의 사투리이다.
'그이 요리'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이 조림'이다.
민물 새끼 게를 살짝 튀겨서 간장에 조리면 바삭바삭하며 구수한 맛의 껍질과 살들이 입안에서 부서지며 뒤섞여 달콤 짭짤한 맛을 낸다. 새끼 게를 쓰기 때문에 양념이 속안까지 깊숙이 배여 들어가 ‘새끼 게 조림’이지만 꽉 찬 맛을 내주었다. 특히 씹을 때 혀에서 느껴지는 작은 집게발들의 딱딱하면서도 날카로운 촉감이 묘하게 어우러지고 끝 맛은 담백, 고소하다.

누구든지 고향의 음식. 혹은 시골 할머니 음식이 마음 속 한가운데 조용히 추억처럼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팥칼국수는 그런 요리이다. 어른들이 추억하는 할머니가 시골에서 만들어 주셨다는 바로 그 고향의 맛이다. 팥칼국수는 특정지역에서만 먹는다. 그리고 지역에 따라 소금으로 간을 해 먹기도 하고 설탕으로 간을 해 먹기도 한다.

팥칼국수! 이름만 들어도 새롭다. 필자는 스물한살때 팥칼국수를 처음 접했다.
팥죽, 호박죽 등의 음식은 즐기는 편이고 팥으로 만든 음식은 팥밥과 팥죽밖에 모른다. 특히 단팥죽에 단밤이 들어간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정말 먹고 싶을 땐 가끔 편의점에서 사서 전자렌지에 "떙" 해서 먹기도 한다.
스물한살 때 함께 일하던 '어머님이 전라도 분이신 동료누나'가 아침대신 먹자며 팥칼국수를 싸왔다. 냉장고에 넣어놨다며 살짝 언 팥칼국수와 신김치도 아닌 묵은지에 설탕도 따로 챙겨왔다. 젓가락도 안 가져오고 숟가락만 몇 개 가져와 우리는 살짝 언 팥칼국수를 숟가락으로 자르고, 묵은지는 손으로 찢어먹었다.

처음 접한 팥칼국수는 필자에겐 황당한 음식이었다.
주로 팥죽에 동그랗게 반죽한 새알을 넣어먹는 게 원칙인데 팥죽에 칼국수가 있고 설탕을 넣어먹는다니 약간은 생소한 콤비네이션 이었다. 게다가 ‘묵은지’까지, 팥죽은 죽만 후루룩 먹는 데 김치와 먹는다는 생각은 해 본 적도 없었다.
예상외로 '살짝 언 팥칼국수와 묵은지와의 조합'은 환상적 이었다.
처음엔 먹어보란 소리에 "안먹어!"라고 소리쳤던 필자다. 짜장면도 아닌 것이 거무튀튀한 국물에 하얀 국수가 빼꼼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형상인데 솔직히 모양새만 봐서는 영 구미에 당기지 않았던 터였다.
'쩝쩝' 대며 연신 '한번만 먹어보라'고 통사정하기에 한번 먹어 본다고 맛 보았는데 그 다음부터 팥칼국수는 필자의 인생에 별미음식으로 자리잡았다.


우연히 갔던 미금역에서 그렇게 다시 팥칼국수를 만났다.
팥칼국수는 파는 곳이 많지 않다. 특정지역 출신 요리사가 아닌 이상 만드는 법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전문점도 많지 않은 터라 설령 팥칼국수를 한다고 해도 맛이 보장되지 않는다. 그저 건강식 정도로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미금역에서 팥칼국수를 하는 곳은 "옹심이네"다. 옹심이네 "옹심이 팥칼국수".
"옹심이 팥칼국수"는 5년째 영업 중이라 한다. 처음에 1년은 가게를 시작한 것이 너무 기뻐서 매일 날짜를 세고, 손님들에게 "오늘이 우리 가게 연지 몇 일 째예요"라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다.
스물여덟명이면 꽉 들어 찰 가게에 들어서, 팥칼국수를 시키면 밑반찬은 설탕, 소금, 배추김치, 무김치, 묵은지가 나온다. 그러니깐 반찬은 김치뿐인 것이다.
설탕과 소금이 둘 다 있어 약간 망설였다. 필자는 팥칼국수를 처음 먹을 때 왜 팥죽에 설탕을 넣어먹냐며 소금을 넣는게 맞는거라고 큰 소리를 쳤었다. 음식에 설탕을 넣어먹는 사람이 어딨냐며, 그럼 콩국수에 소금 넣어먹지 설탕 넣어먹냐고 묻자, 전라도에서는 콩국수에도 설탕을 넣어먹는다고 했다. 설탕이냐 소금이냐를 가지고 한참 설전을 벌였고, 결국 끝나지 않은 사건이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당당하게 주인에게 물었다.

"설탕과 소금 중에 무엇을 넣어야 합니까?"

사람마다 다르다며, 고향이 어디냐에 따라 설탕을 넣어먹기도 하고 소금을 넣어먹기도 해서 둘다 갖다 놨다고 한다.
전라도에서는 설탕을 넣어 먹는다고도 했다.

팥칼국수는 솔직히 우리세대가 먹기에 맛있는 음식은 아닐지 모른다.
맛이라는 것에도 트렌드가 있는데 현재의 트렌드와는 너무 멀리 동떨어진 맛이다.
뭐랄까, 우연히 찾은 '아버지의 어린시절모습을 담은 흑백사진'이랄까. 그런 맛이 난다.
일단 담백하다. 설탕을 넣었으니 당연히 맛은 달달하지만 담백하며 부드럽고 은은하다.
국수는 쫄깃하다는 느낌보다 입안에서 굵게 뚝뚝 끊어진다고 해야 맞겠다.
팥칼국수만 먹다보면 물린다는 느낌이 든다. 그럴 때 묵은지를 한개 올려서 시큼함과 특유의 '묵은내'를 같이 먹어주면 된다.
그러니까 삼합중에 홍어회 같은 거다. 홍어회가 맛이 있어서 먹는 다기보다는 특유의 톡쏘는 맛을 즐기려 먹는 것 처럼….
먹다보면 어느새 팥칼국수의 국물만 계속 떠먹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팥칼국수는 계속 생각 없이 숟가락을 뜨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참 아날로그 적인 맛이다.
연양갱을 좋아하는 사람은 팥칼국수의 매니아가 될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연양갱을 무척 좋아한다.

"팥칼국수에 대해 자랑 좀 해주세요"라고 하자, 팥칼국수는 전라도에서 동짓날에 새알 동짓팥죽 대신에 먹기도 하고, 비 오면 평상에 모깃불 피워놓고 먹던 음식이라 한다.
주인 아주머니가 말하기를 전라도 사람들은 어릴 적에 여름과 겨울에 팥죽을 즐겨먹었다고 했다.
팥죽은 "랑해"라고도 하는데 절 용어인 '랑화'를 사투리로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랑화(浪浪)'는 물결랑(浪)에 꽃화(浪)자를 써서 '아름다운 맛이다'는 뜻이라는 데, 그래서 팥죽이 사찰음식이냐는 물음에는 잘 모르겠다며 웃는다.
팥죽은 식어야 제맛이라며 팥죽 맛있게 먹는 작은 요령도 알려주었다.


그러던 찰나, 아침부터 배를 쫄쫄 굶고 왔다는 4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여성회사원이 들어왔다. ‘옹심이 팥죽 반, 팥칼국수 반’ 해달라고 주문한다.
"손님들이 달라는 대로 줘요."하며 또 웃는다.
옹심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옹심이는 새알의 사투리에요. 새알을 넣기도 하고 조랭이 떡을 넣기도 하지요."
팥칼국수는 젊은 사람들은 잘 안먹으러 와서 필자를 기억한다는 주인 아주머니는 "우리 손님들은 열명중 아홉은 단골이예요. 손님들이 너무 착해서 바쁘면 계산도 알아서하고, 자리가 없으면 합석도 하고 음식을 갖다먹기도 해서 고맙죠"라며 수줍게 손님자랑과 칭찬을 늘어놓았다. 장사와 팥죽 만들기는 주인아주머니가 혼자 한다.
칼국수는 손칼국수인데 집에서 ‘손 반죽’을 해놓았다가 하루정도를 숙성시킨다.
그래서 칼국수가 삐뚤삐뚤한데 그게 손맛이라며 "기계로 뽑으면 그 맛이 안난다"고 했다.

예전, 특히 여름철에는 팥저장이 어렵고, 벌레가 많이 생겨 강낭콩으로 팥칼국수처럼 해 먹었다고 했다.
팥칼국수는 하는 곳이 많지 않은데 어떻게 팥죽과 팥칼국수 위주로 장사할 생각을 했냐는 질문에 "그냥 할줄 알아서 한거지. 어릴 적에 매일 먹던 음식이니께"라며 인심좋은 웃음을 보여준다.
"위치가 이래서 손님들이 입소문으로 와. 광고한번 한적 없지. 저번에도 KBS에서 취재하러 왔는데 칼국수 반죽하는 것을 찍는다고 하드라고. 반죽은 집에서 숙성해서 가져오는 건데 카메라로 찍는다고 반죽을 하라지 모야. 그래서 방송 촬영 안 한다고 했지. 손님이 방송보고 반죽 하는 갑다 해서 왔는데 반죽안하고 있으면 거짓말 하는 거잖아. 장사는 그렇게 하면 안돼."하며 양심선언(?)도 했다.
묵은지는 얼마나 된거냐고 묻자 작년에 담았는데 전라북도 부안이 고향이라 젓갈을 많이 넣어서 특유의 맛이 나는 거라고 말했다.

팥은 친정어머니가 부안에서 직접 보내온다. 작게 농사를 짓는데 곡식(쌀, 보리등)과 팥을 보내온다고 한다.
그렇게 필자는 팥칼국수 아주머니와 2시간여 정도를 이야기했다.
사람좋은 아주머니는 내내 고마워했다.
필자의 별미 팥칼국수,  비오면 팥칼국수와 묵은지와의 상큼한 조합이 떠오른다.


위치: 미금역 3번 출구 분당프라자 건물 2층(밝은 세상 안과 있음)
전화번호: 718-8857
가격: 팥칼국수 6천원
옹심이 팥죽 5천원
특이사항: 매주 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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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buboo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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