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정부를 위한 조건
존경받는 정부를 위한 조건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8.05.05 11:34
  • 호수 1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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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능력을 사회에 헌신하려는 자세 필요해

오드리 햅번을 연기파 배우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실제로 <로마의 휴일>에서의 오드리 햅번은 50년이 더 지난 지금 봐도 설렐 만큼 아름답지만, 그렇다고 연기를 잘 했던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오드리 햅번은 존경받는 배우로 기억된다. 1987년 유니세프의 특별 대사로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그때까지 배우로써 받아온 사랑의 빚을 에티오피아와 수단, 방글라데시, 소말리아 등의 빈곤국 어린이들에게 갚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드리 햅번을 가난한 아이들의 천사로 기억하고 존경한다.

배우로써 뛰어난 연기를 보인 것도 아니고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그녀가 대중들의 존경을 받는 것은, 이처럼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존경'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는 자신의 분야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실력보다도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정치판에 '정치 9단'은 있어도 존경받는 정치인이 없는 이유는 비슷한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얼마 전까지 신문을 통해 '부자내각'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곱지 못한 시선을 받은 현 정부만 봐도 그렇다. 그 분야에서의 실력이 최고라는 사람들을 모아 내각을 구성해도 '강부자', '고소영' 등의 비판을 받는 것은 사회가 그들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이유는 국회와 청와대에 '연기파 배우'는 많아도 사회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겸손한 의지를 가진 정치인이 없어서일 것이다. 얼마전 회의를 주관하던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를 하겠다고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희생할 각오들이 전혀 없어 보인다"며 측근들을 강하게 비판한 것도, 실력만으로는 존경받는 정부가 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질책으로 보인다.

이렇게 존경할만한 정치인이 없는 건, 즉 유능하지만 사회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이 부족한 사람들이 소위 '지도층 인사'가 되는 건 그들을 평가하는 우리 사회의 인식에도 일부 원인이 있다. 성적 장학금, 우열반 차별 급식 등 평가의 잣대가 오로지 '성적(실력)'에만 맞춰져 있는 사회에서 교육받다보니 남들을 평가할 때도 성적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게 된다. 결국 우리 사회는 성적이 우수한 사람을 '훌륭한 사람'으로 인식해, 늘'연기파 배우들'을 지도층 인사로 앉히고, 실망하고, 허탈해한다.

강부자 내각으로 시작해 박미석 사회정책 수석비서관의 자진 사퇴에 이르기까지, 신문의 정치면을 읽는 대학생들의 감정은 부끄럽고 안타깝다. ‘일만 잘 하면 훌륭한 사람’이라고 평가해 연기파 배우들을 사회 지도층에 앉혀준 것이 부끄럽고, 교육이 변하지 않는 이상 이런 기사들을 계속 접해야 한다는 것이 안타깝다.
 

▲ 박상엽 동문
“성적이 좋다고 유능한 인재라 할 수 없어요. 성적순으로 사람을 서열화하는 것도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폐습입니다. 부모님의 은혜를 아는 젊은이가 많아져야 사회가 더 맑고, 평화롭게 되는 법입니다. 그런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어 인재로 길러내야죠.”

지난 달 23일 우리대학에 자신의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10억원의 거액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박상엽(88세˙충남천안시 오룡동)동문이 한 얘기다. 학교측 역시 기탁자의 뜻을 살려 ‘성적 위주의 장학금이 아닌 효행을 장려하는 장학금’으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효행을 평가할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이 있는가?’, ‘장학금을 타기 위한 효행이 진정한 효행인가?’라는 논란도 예상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학생)을 평가하는 기준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대학 현실에 안심하게 된다. 이런 평가 문화가 안정적으로 정착되고 확산되면 20년쯤 뒤에는 ‘존경받는’ 정부를 가려낼 수 있는 사회적 안목이 생기지 않을까? 자신의 전 재산을 모교에 기탁한 박상엽 동문의 희생정신과 실력이 아닌 ‘마음’을 평가하겠다는 학교측의 약속을 접하며, 현 정부에 대한 당장의 실망을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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