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살인 파도
43) 살인 파도
  • 신동희
  • 승인 2008.05.14 07:10
  • 호수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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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지표면의 70%나 된다. 그러나, 인간에게 바다는 여전히 미스테리다. 토끼의 간이 필요했던 용왕님 얘기로부터 미래의 해저 도시로까지 바다에 대한 궁금증은 이어지고 있다. “바다는 자원의 보고”란 말에서처럼 바다가 인간에게 주는 것은 무궁무진하다. 먹거리나 화석 연료 등 물질적인 것은 물론이고 바다는 우리에게 안식처를 제공한다. 대부분의 휴양지는 바다를 끼고 발달했다. 바다는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이고, 어린이들에게는 최고의 놀이터다.

바다를 보고 있으면 누구라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아마도 지구상 최초의 생명체가 바다에서 시작되었기에 인간 역시 바다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이런 바다가 가끔씩 우리를 놀라게 한다. 지난 5월 4일 낮 충남 보령에서 발생한 바닷물 범람 사고로 인해 9명이 사망했고, 14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13명이 가까스로 구조되었다. 기상청에 의하면, 사고 당시 기상 상황은 미풍이 불고 파도도 잔잔했기에 사전 예보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러나, 2m가 넘는 파도가 해변을 삼킨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그 거대한 파도의 원인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기상청 보도 자료에도 “원인을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규명하기 위해서는 해양 기상학적, 해양 공학적 연구가 필요함”이라고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보령 사고의 원인을 몇 가지 ‘추정’해 볼 수는 있다. 사고 직후, “서해안 해일 사고”라고 보도되었지만, 해일이 아님은 분명해졌다. 해일(surge)은 바닷물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져 육지로 넘쳐 들어오는 현상으로 폭풍해일과 지진해일, 즉 쓰나미가 있다.

사고 당일 폭풍해일이나 지진해일을 일으킬 만한 어떠한 기상 상황도 보고되지 않았다. 사고 다음 날 기상청은 원인을 방파제 등의 인공 구조물과 서해안의 강한 조류(潮流), 수심이 얕고 움푹 패인 만(灣)이라는 지형적 특수성 등이 함께 작용하면서 발생한 이상 현상으로 보았다. 바다에서 생긴 불규칙한 파동이 인공 구조물에 의해 한 곳으로 집중되고, 이 파동의 위상과 진동수가 정확히 일치함에 따라 진폭이 2배로 커지는 합성파가 만들어져 보강간섭 현상이 나타난 것으로 보는 전문가도 있었다.

그러나, 서해안에는 이와 유사한 지형이 여럿이고, 사고 지점에서 이러한 현상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다른 원인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먼 바다에서 발생한 주기가 긴 너울(swell)을 원인으로 보는 의견도 있다. 너울은 바람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풍랑(wind wave)이 발생 위치를 떠나 해안 쪽으로 가면서 쇠퇴해가는 ‘남은’ 파도다. 너울은 수심이 얕은 해안으로 오면서 해저 지형과의 마찰로 인해 부서지는 연안쇄파(surf)로 변한다. 너울이 연안쇄파로 될 때, 파고와 속도, 바닷물 양이 갑자기 증가해 범람을 일으키는데, 보령 사고는 정상적인 연안쇄파가 아니었기에 피해가 컸다. 너울은 세기가 약하지만, 파도의 폭과 주기가 길어 너울이 있는 바다는 잔잔하게 보이므로 그 피해를 대비하기 어렵다.

그러나, 너울에 의한 피해는 이번처럼 국지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사고 원인을 너울로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 보령 사고는 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미얀마의 싸이클론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별 것 아닌 사고의 원인조차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과학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먼 것 같다.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신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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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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