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을 생각한다
현충일을 생각한다
  • 권용우 명예교수
  • 승인 2008.05.20 12:34
  • 호수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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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6월 6일은 현충일(顯忠日)이다. 이 날은 국권회복을 위하여 헌신·희생하신 순국선열과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신 전몰호국용사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기리고 명복을 기원하기 위하여 1956년에 제정되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언제부터인지 그저 이 날을 하루 쉬는 날로 잘못 인식하고 있는 듯 하여 참으로 안타깝기 이를 데 없다. 1910년 한일병합이 되자 만주로, 미국으로 망명하여 풍찬노숙의 생활역정을 이겨내면서 오로지 조국의 광복(光復)만을 위하여 대일투쟁에 신명(身命)을 바친 독립투사들이 없었다면 어찌 잃어버린 조국을 되찾을 수 있었겠는가. 6·25 전쟁의 그 절박한 상황에서 나라와 겨레를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초개(草芥)처럼 내던진 전몰용사가 아니었다면 어찌 괴뢰집단을 물리칠 수 있었겠는가.

그 뿐이 아니다. 2002년 6·29 서해교전(제2연평해전)의 악몽은 아직도 우리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그 날은 한·일 월드컵 경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던 때이어서 모든 국민들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북한은 축제를 즐기고 있는 때를 틈타 등산곶 684호를 내려보내어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 85mm 함포로 선제공격을 가해왔다. 이에 우리 해군 참수리 357호가 응전하면서 귀한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윤영하 대위, 한상국 중사, 조천형·황도현·서후원 하사, 박동혁 상병이 전사하고, 18명의 장병이 부상을 입는 인명피해가 있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 용감한 장병들이 없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아찔하기만 하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동안 전사한 이들 유가족에게 보훈다운 보훈을 하지 못했다. 오죽했으면 ‘서해교전으로 목숨을 잃은 남편과 장병들을 국가가 홀대한다’고 원망하면서 조국을 등진 미망인이 있었겠는가 말이다. “나라를 지키려고 목숨을 바친 영웅을 홀대하는 나라…. 더 이상 얘기 안하겠습니다.” 이 말은 서해교전에서 전사한 한상국 중사의 부인 김종선씨가 2005년 4월 24일 미국으로 떠나면서 인천국제공항에서 남긴 말이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이야기의 100분의 1도 다 못했다. 마음에 담아두겠다”며 쓸쓸이 조국을 떠났다.

그로부터 3년의 세월이 흘렀다. ‘미국생활 3년, 눈물의 일기’가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1년에 여덟 번이나 거처를 옮겨야 했던 고통스러운 삶, 절대로 쓰러지지 말고 정신 바짝 차려 꼭 살아남자”는 그녀의 피맺힌 다짐…. 일기의 구절 구절이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전사한 남편을 가슴에 묻고 살아 가야 할 그녀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저 주어야 한다.

묘소 아래 움막에서 살고 있는 며느리

한 월간지에 게재된 ‘건국 부통령 이시영(李始榮) 직계가족들 움막집에 살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지난 4월 17일은 성제(省齊) 이시영 선생이 서거한지 55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이 날 남산에 위치한 선생의 동상 앞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손자인 종문씨가 했던 말이 듣는 이로 하여금 한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였다. “비로 할아버님 산소가 무너져내릴 때마다 가족들의 마음도 함께 무너져내린다.”

성제 이시영! 그는 1910년 한일병합이 되자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을 쏟았으며, 1919년 4월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법무총장·재무총장의 직을 맡아 오로지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1945년 8·15 광복을 맞아 귀국한 후에는 대한독립촉성회 위원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부통령에 취임하여 건국초기의 어지러운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아가는 데 진력하였다.

그러나,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비민주적 통치에 반대하여, 1951년 5월 “「시위소찬」(尸位素餐 : 직책을 다하지 못하면서 자리만 차지하고, 국가의 녹만 받아먹음)에 머물 수 없다”는 유명한 고별사를 남기고 부통령직을 사직하였다. 선생은 이처럼 일생을 국권회복과 민주발전에 바친 분이다. 그런데,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선생의 묘소가 비로 무너져내리는 것을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제 국가와 국민이 모두 나서야 할 때가 왔다. 더 늦기 전에 서둘자.

권용우 명예교수
권용우 명예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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