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군에게
J군에게
  • 양종곤 교수
  • 승인 2008.05.27 00:45
  • 호수 1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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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좋은 날씨를 즐기라는 의미인지 5월에는 유난히 공휴일이 많네. 학교의 큰 행사 중의 하나인 축제도 포함되어 있지. 생동감과 젊음이 느껴지는 오월에 새삼 자네가 갑자기 그리워지는 것은 나도 내가 여기까지 오는 데 나에게 항상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셨던 스승님이 생각나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네. 자네는 나의 대학원 첫 제자이여서인지 다른 사람보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라는 특별한 감정때문도 큰 이유겠지.

첫 직장, 첫 등교, 첫 수업, 첫 사랑등은 모든 사람들에게도 색다른 감흥을 가져다 주지. 최근에 난 내가 옻을 잘타는 체질인지도 모르고 같이 산행한 사람이 권하기에 옻순을 맛있게 먹었네.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무작정 옻순의 새큼한 맛에 산행 뒤의 즐거움이라고 동동주와 함께 그 맛을 즐겼지.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시작되는 옻독의 내몸 습격은 가히 전쟁터를 방불케 했지. 전초지는 내 몸에서 임파선이 많이 존재하는 겨드랑, 사타구니, 얼굴에서부터 피부의 반란이 시작되더군.

내 얼굴이지만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은 정말 처참한 지경이었지. 평소의 준비성없는 내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단면이었지. 그날 이후로 계속되는 가려움으로 인한 불면의 고통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지. 가려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그 무거움(?)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지. 꼬박 뜬 눈으로 밤을 새운 뒤 내가 새벽에 내뱉은 말은 무엇인지 아는가? 옻순을 내게 먹인 그 사람에 대한 분노였지. 왜 내게 이런 몹쓸 것을 먹게해서 이런 고생을 시키게 하는지 말이야. 그렇게 3일정도를 견뎌내니 글쎄 그동안 내 몸속 깊이 존재하던 노폐물이 빠져나감을 느낄수가 있더군. 그런 맘이 드니 이제는 새삼 가려움이 즐거운거야. 왜냐? 이런 고통을 겪은 후에 정말로 내 몸이 가벼워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말야.

그래서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옻의 효능의 대해서 알아보니, 새삼 옻이 방부제와 살충제 역할을 한다고 되어있더군. 이제는 새삼 내게 옻을 소개해 주었던 그 친구가 고마워지더군.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리도 간사한 지. 10일간의 이 단순한 사건에서 난 다시 인생의 교훈을 느끼네. 미리 조금이라도 준비했더라면 몸과 마음이 옻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그리고 고통뒤에 오는 달콤함을 미리 예견할 수 있다면 고통을 충분히 즐기면서 감내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야. 그래서 희망과 비전은 우리 삶의 만병통치약인 듯 하네. 잠못 든 3일의 기간을 용케 잘 견뎌내니 이제 칼 루이스와 100m 달리기 경주를 해도 괜찮을 정도의 가뿐한 몸 상태를 가지니 그렇네. 거짓말 같다고 사실 지금 내 마음 상태가 그렇다네.

항상 주위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면서 살아야하는데 찰나의 고통을 준다고 그 사람을 원망하니 내 자신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네. 학교에도 전공필수가 없어지면서 점점 학생들이 쉽게 공부해서 졸업할려는 경향이 대세임을 보면 안타까움이 앞서네. 물론 자네야 어려운 과목도 어려운 만큼 배우는 것이 많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수강한 학생이니 이에 해당되지는 않겠지만. 나도 그렇지만 지옥훈련을 통해 수강한 과목은 평생을 가도 잊혀지지 않더군. 물론 당시는 더할 수 없는 학습의 고통을 이겨내야 하지만.

 난 주기적으로 옻순을 먹을지도 모르네. 옻의 효능이 검증된 의학적 사실이라면 몇일간의 가려움으로 인한 고통은 감내하면 그 이후에는 상응하는 보상을 내게 제공해 주기 때문이지. 지옥훈련과 같은 과목수강이 그 사람의 지식축적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야. J군, 옻독사건은 내 일생에 있어서 일과성의 사건이지만 이를 통해 난 귀중한 경험을 터득했네. 미리 대비하면 닥치는 위험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 지금 내게 듣기싫은 충언을 해 주는 사람이 진정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 절대 조급하면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는 사실.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이지만 다시한번 뼈저리게 내 스스로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네. 교정은 지금 젊음의 열기로 가득찬 축제가 한창이네. 옻독의 휴유증으로 올해 축제는 제자들과 젊음을 함께 할 수가 없네.

하지만 내년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하겠지. 새삼 오늘 따라 자네가 그립고, 학회에서 함께 고민했던 모습도 생각나는 걸 보니 다음 주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존경하는 내 스승님을 찾아뵐려 하네. 건강하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를 비네.

양종곤 교수
양종곤 교수

 dkdds@d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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