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공화국'을 위하여
'축제공화국'을 위하여
  • 장두식 교수
  • 승인 2008.06.03 16:50
  • 호수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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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는 놀이의 공간인 동시에 벽사와 축원의 공간이다

축제는 놀이의 공간이자 재현의 공간이다. 인간 삶을 구조화시키는 것은 일과 놀이라는 시스템이다. 인간은 종족유지와 개체유지를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 모두가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일을 하다가 쉬기도 한다. 또한 인간은 쉬는 시간을 위한 문화를 만들었다. 놀이를 만든 것이다.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인간)로 변신을 한 후 인간은 동물이라는 종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런데 역사는 놀이보다는 일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은 현재보다 나은 미래를 추구한다. 일은 발전이라는 동력을 본질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발전의 논리는 변증법적인 지양을 추구하고 끊임없는 갈등을 야기한다. 이러다 보니 역사책 속에는 골육상쟁과 전쟁 등 목불인견의 사건이 흘러넘치고 있다. 놀이는 일에 종속된 것이 아니라 일과 더불어 인간사회를 발전시키는 대등한 범주이다. 놀이에서 오히려 인간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을 찾을 수가 있다.

신라향가인 「처용가」는 밤늦도록 놀러 다니기를 좋아하는 처용이 역신과 통정하고 있는 자신의 아내를 발견하고도 용서를 했고, 처용에 감동한 역신이 처용형상만 보아도 도망가게 되어 신라 사람들은 집집마다 처용형상을 걸어놓고 역병을 예방했다는 배경설화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배우자를 빼앗기고도 이를 용서하고 있는 처용은 놀이하는 인간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처용가」의 배경설화와 같은 장면은 일의 공간에서는 일어날 수가 없다. 자신의 것은 지켜야 하고 남의 것을 빼앗아야 하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 일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이의 공간에서는 물질적 이익이나 권력담론에서 벗어난 화해와 조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이러한 비경제적이고 무목적적인 화합이 바로 놀이의 본질이며 인간 공동체를 유지시켜주는 구심력이 된다. 일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것처럼 놀이도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일의 문화가 있다면 놀이에도 문화가 있다. 놀이문화가 응축된 것이 축제다. 축제는 일의 공간과 다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일의 공간의 삼차원의 공간이라면 놀이 공간은 사차원의 공간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차원의 공간이라는 것은 축제가 원래 하늘과 인간세상의 만남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축제의 기원인 원시종합예술은 성스러운 시간의 재현이자 창조신화의 재현을 의례화한 것이다. 오늘날 축제에도 이러한 의례가 계승되고 있는데 이러한 전통의 계승을 통하여 축제를 참가하는 사람들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고 공동체의식을 고양하게 된다.

오늘날 축제는 제의적인 신성성은 약화되고 점점 놀이성이 강해지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놀이성의 강화는 축제를 행하는 공동체의 정체성 약화를 불러오는 것 같지만, 축제를 수직적인 질서체계에서 수평적인 화합체계로 변화시킴으로써 오히려 참가자들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 그동안 지역축제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시키면서 ‘대한민국은 축제공화국’이라는 냉소적인 말처럼 많은 사람들의 비아냥감이 되기도 하였다.

지방자치제가 시행된 직후에는 지역축제가 전시행정의 홍보장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지자체에 의해 기획된 신흥축제만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계승된 축제들도 지역민이 참여하는 화합의 장이 아니라 축제를 주관하는 지자체나 단체들의 홍보나 예산소비의 장으로 변질되기 일쑤였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지역축제가 지역성과 역사성이 약화된 몰주체적 축제가 되거나, 특성 없는 전국노래자랑식 축제나 백화점식 축제로 지역민들을 소외시키는 축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신명나는 축제에 참여하고 있는데 축제의 주인공이 아닌 것 같고, 축제가 끝나고 나면 남는 게 없는 허무한 축제가 지역축제였던 것이다. 김승환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당시의 축제는 성격도 모호하고 운영도 미숙하며 의의도 없는 실험적 축제들이었다. 그 결과 ‘축제 정신의 혼미, 축제양식의 혼란, 축제의 향락화와 무질서, 축제 운영자들의 전통성 상실과 비전문성, 축제비용 마련의 어려움, 정책의 빈곤, 언론기관의 비협조’ 등의 문제점이 점점 누적되었다.

이러한 시행착오를 직시한 지자체와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그동안 도출된 지역축제의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하는 노력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공동체의식의 고양과 지역사회의 경제적인 발전을 위하여 축제가 정상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역 축제는 관광수익과 함께 지역 특산물 판매수익을 통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 일본의 하기 마쯔리를 예로 들면 하기에서 생산되는 도자기의 대부분은 마쯔리 기간에 판매되어 지역 경제를 튼튼하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박환영 교수의 논의처럼 지역축제는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그 이면에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장성의 홍길동 생가 복원이나 곡성의 심청이 마을과 같은 노력들도 조금은 희화적이지만 지역의 역사성과 전통을 찾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부산 국제영화제나 부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춘천 마임축제와 같은 창의적이며 기획력이 뛰어난 신흥축제들은 한국을 벗어나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목격하면서 대부분의 지자체들은 지역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적극 활용하는 축제를 기획하거나 참신한 신흥축제를 기획하기 시작했고 지역민 또한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행사의 주체로서 축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카니발적인 의식이 고양되고 있다.

이러한 지역축제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새로운 기획들은 지난 5월 23일에서 25일 동안 진행된 용인시의 포은문화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포은문화제는 같은 경기도 여주군의 세종대왕숭모제와 고양시의 행주대첩제, 남양주시의 다산문화제와 같이 역사적인 유래를 가지고 개최되는 축제다. 포은문화제는 신흥축제의 한계로 계속 지적되어 온 역사성과 전통계승 문제 때문에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다. 즉 포은선생의 충절정신은 우리시대에 계승해야 할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에 추모행사를 개최하는 것만으로 하나의 전통문화축제가 될 수 있었다.

▲ 포은문화제 현장. 축제를 즐기고 있는 지역주민들
그런데 용인시는 포은선생의 추모의례를 심화 확대하여 전국적인 규모의 축제로 거듭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배경에는 용인시의 이미지를 제고하려는 의도가 깔려있다. 용인시는 ‘살아서는 진천이요 죽어서는 용인’이라는 속설이나, 매스컴에서 한동안 집중적으로 용인의 난개발을 보도하여 안락한 삶의 터전과는 거리가 먼 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유포되어 있다. 이미지가 실체를 잡아먹는 우리시대에 용인시의 부정적인 이미지는 지역민들의 삶과 문화 속에도 저절로 삼투되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긍심이 없다면 그 사람도, 그 사람이 사는 지역의 발전도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포은문화제는 용인시민들의 자긍심과 연대감을 고양시키고 용인시의 이미지를 제고시키기 위한 중요한 기획일 수밖에 없다. 이미지는 문화에서 나오고, 문화는 문화 향유자들 속에서 생산되는 것이다. 이번이 6회째인 포은문화제는 추모의례와 공연, 체험프로그램과 지역특산물판매 등 다양한 세부 행사로 진행되었는데, 이를 살펴보면 추모제례를 통한 전통의 계승과 공연과 체험을 통한 공동체의식의 확립이라는 두 개의 범주로 나눌 수가 있다.

전자가 포은선생의 정신을 계승하여 지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후자는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통하여 지역민들의 화합을 목적으로 두고 있다. 종묘제례 기능보유자인 이형렬선생과 용인문화원에서 복원한 추모제례와 제례악은 조선조 제례가 아니라 고려조의 제례라는데 역사나 민속학 측면에서 의미가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추모제례의 배경에는 포은선생과 태종 이방원과의 악연과 해원의 기연이 담겨있다. 포은 선생을 선죽교에서 철퇴로 내리치게 만든 장본인인 태종이 역적으로 낙인찍혔던 포은선생을 복권시켜 주었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배경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추모제례를 통하여 용인시민들은 충절의 고장에서 살고 있다는 자긍심을 느끼게 된다. 단국대 국악과 연주동아리 <선율(善律)>의 흥겨운 창과 연주, 명지대 택껸 동아리의 시범 등으로 막이 오른 공연은 객석을 가득 채운 지역민들에게 화합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무대공연이 다른 지역축제와 크게 변별되지는 않지만 국악공연대회, 마당놀이, 백암농악, 전통무용 등 다양하게 전통연희를 즐길 수 있는 레파토리로 짜여있어 포은문화제가 전통문화축제라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나무활 만들기, 단심가 탑본뜨기, 솟대 만들기, 국악경연대회, 백일장, 생태체험 등과 같은 체험 프로그램들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직접 참여하여 즐기는 행사였다. 이렇듯 공연을 보고 직접 체험을 함으로써 참가자들은 용인이라는 지역 속에서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저절로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용인시의 포은문화제는 전통의 계승과 지역민의 참여 부분에서 상당히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지방자치제 이후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지역축제들의 전통단절과 특성없는 전국 노래자랑식 축제의 문제점들이 많이 극복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농특산물 판매와 같이 지역경제 활성화 부분에서는 크게 미흡하였다. 백옥꿀이나 친환경 유기농제품과 같은 지역특산물 판매는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앞에서 살핀 바와 같이 지역축제가 발전하려면 일본의 마쯔리와 같이 지역경제와 밀접한 관련을 맺어야 한다. 포은문화제에서 발견할 수 있듯이 이제 몇몇 지역축제는 지역특성을 토대로 지역민과 외지인이 함께 줄기는 축제로 발전하고 있다. 이러한 축제는 그 지역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들며,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를 하게 된다.

축제는 놀이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벽사와 축원의 공간이기도 하다.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탈일상성과 초월적인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삶의 질을 고양시키는 동력이 된다. 지역축제의 질적 발전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축제공화국인 대한민국’이 비아냥이 아니라 칭찬이 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장두식 교수
장두식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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