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상실의 시대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8.06.15 0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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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독후감이란
'작가의 생각이 끝나는 곳에서 새롭게 시작되는 독자의 생각' 이라고 하네요. 작가가 책을 통해 전하려는 의미는 독자 개개인의 경험에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랍니다.
여름방학을 맞이해서 '독서광'으로 소문난 단대신문사 기자들의 독후감을 소개해 드립니다. 기자들의 눈으로 본 '그 책'은 어땠을지, 나와는 어떻게 다른 느낌으로 책을 접했을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작가의 뜻대로
<상실의 시대>를 '연애소설'의 관점으로 읽었다. 시대 배경이나 역사적 지식과 같은 거창한 이야기들은 좀 미뤄두고, 그냥 사랑 이야기로 읽었다. 어차피 사랑은 시대나 역사를 초월하는거니까, 잠시 그런것들과는 거리를 두고싶다(솔직히 거리를 좁힐만한 지식도 없다).
작가가 밝혔듯 소설이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쓰여졌다고 말한 것처럼, 이 글 역시 내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다. 세상이 말하는 '아름다운 사랑' 말고, 내가 경험한 '현실적 사랑' 말이다.
그래야
'작가의 뜻대로' <상실의 시대>에 접근할 수 있을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 에 다가가보자.

1. 접촉기
소설 속 주인공 와타나베는 고등학교 친구(유일한...)기즈키의 소개로 나오코를 만난다. 소꿉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기즈키와 나오코는 늘 그들만의 틀에 갖혀있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려 하지 않는다. 세상으로부터 상처입는 것이 두려운 이들 연인은 유일한 친구인 와타나베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하지만 이런 비정상적인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열일곱살의 어느 봄날 찾아온 기츠키의 자살은 나오코를 '세상'으로 내몬다. "나는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 속에서 나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정할수가 없었다"는 와타나베의 대사처럼 기즈키의 죽음은 나오코와 와타나베를 도쿄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살도록 만든다. 그들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하철 어느 플랫폼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그들. 그들은 이제 주말마다 만나 '무작정 걷는'데이트를 즐기게 된다. 어떤 계획도 목적도 없이 걷기만 하는 그들은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머리핀을 만지작 거리고, 손수건으로 입술을 닦기도 하고, 와타나베의 눈을 물끄러미 의미도 없이 바라보는 나오코는... '말찾기 병'에 걸려 있었다.


98년 여름, 짝사랑했던 한학년 선배로부터 <상실의 시대>를 선물 받았다. "중국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내 남자친구한테 받은거야"라는 말과 함께. 대학교 1학년, 사랑에 대한 맹목적 믿음으로 접한 <상실의 시대>는 납득할 수 없는 책이었다. 적어도 그때의 감정은 그랬다. 세상에 아름다운 사랑이 얼마나 많은데, 어떻게 이런 책에 감동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더듬던 유지태의 대사와 눈빛이 그때(어릴때)의 내 감정이었다.

짝사랑하던 선배(편하게 K라 부르겠다)의 남자친구가 중국에서 돌아오던날, K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K의 아버지는 사업을 했고, 몇번인가 부도가 났고, 그래서 이혼을 했고... 그래서 그때 내가 찾은 빈소는 무척이나 썰렁했다.

빈소에서 만난 K의 남자친구는 오만했다(적어도 내 눈엔 그랬다). 나보다 두살 많은 그 사람에게 '사랑'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그 사람보다 K를 위해줄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힘들어하는 사람에게 쉴 수 있는 곳을 제공해 주는 사람. 내가 만들어 놓은 세상안에 있으면 지금까지 겪어왔던 불행은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K를 뺏었다.

9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때만큼 비열한 나 자신은 없었던 것 같다. 가장 힘들고 약한 시기의 사람에게 '환상'을 미끼로 사기를 쳤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자신의 불완전함에 대해선 생각조차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K의 남자친구보다 더 심한 오만으로 가득했는지 모른다.

2. 관여기
나오코가 사라진다. 열아홉번째 생일 이후 연락을 끊은 나오코는 '아미료 요양원'이라는 일종의 정신병원에 들어감으로써 또다시 세상과 자신을 격리시킨다. 이번에도 나오코의 유일한 '통로'는 와타나베. 그녀는 와타나베와의 편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바깥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비뚤어짐을 의식하지 않고 살고 있거든" 언젠가 나오코가 편지에 쓴 이 말은, 요양원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의식하지 않고 확신에 찬 모습으로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 오히려 나오코는 상처받는다.

나오코와 직접 대면하진 않지만 와타나베의 기숙사 선배로 등장하는 나가사와는 소설이 그리는 전형적인 '세상사람'이다. 그에게 있어 인생은 게임이다. 여자를 꼬시는 것도, 외무성 시험을 치르는 것도 단순한 놀이에 불과하다.

나오코가 사라진 후 와타나베는 나가사와와의 만남이 늘어나면서 점점 허무주의에 빠진다. 술을 마시고, 여자 사냥을 다니고, 아무 여자와 자고 그렇게 허탈한 일상을 반복하면 할수록 그는 삶의 의미를 찾고싶어한다. 그에게 의미있는 행동은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고, 그녀의 편지를 읽는 일밖엔 없다.

다른 연인들이 만남을 통해 서로를 알아갈 때, 이들은 '세상'과 '요양원'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에서 편지를 통해 서로에 대한 호감을 키워간다. 그리고 마침내 나오코는 와타나베를 요양원으로 초대한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을 의미한다. 오만으로 가득 찬 세상속의 섬같은 존재인 와타나베가 요양원의 나오코를 만나는 것처럼, 나는 K의 눈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K의 세상은 비열했다. 그녀의 아버지가 사업을 하며 만들었던 연구 업적을 가로채가려는 사람들, 살 곳이 없어서 친구집과 친척집을 전전해야 하는 상황, 처지를 뻔히 알면서 그것을 역이용 하던 사장(K가 일하던...) 등, K의 세상은 그때까지 내가 알아온 세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넌 벽난로 앞 고양이야. 바깥에는 눈보라가 치는데, 넌 벽난로 앞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고양이야. 평생 그렇게 살 수도 있었는데 괜히 날 만나서 '밖'으로 나오게 된거라구. 나중에 후회할 수도 있어."
K가 했던 말
...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전혀 새로운 세상에 관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말하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세상까지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의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가?

내가 만들어 놓은 세상안에 있으면 지금까지 겪어왔던 불행은 더 이상 겪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약속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말 그대로 벽난로 앞 고양이의 어린 꿈이었다.

3. 친숙기
와타나베가 요양원에서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나오코와 같은 방을 쓰는 레이코씨다. 7년이나 요양원에 있었다는 레이코는, 이제는 환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무서워서' 나가지 못하는 경우이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건, 우리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점이지"

... 결국 레이코 역시 나오코와 같은 '세상의 부적응자'였다.

나오코를 만나기 전 요양원의 몇가지 규칙을 알려주는 레이코.

"첫째로 상대방을 돕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것. 그리고 자기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것. 둘째는 정직할 것. 거짓말을 하거나 꾸며대거나, 형편이 좋지 않다고 얼버무리거나 하지 말 것." 나가사와 선배가 '세상사람'을 상징한다면 레이코는 '나오코의 세상'을 상징한다. 와타나베는, 레이코를 통해 나오코의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마음속에 비틀려 있는 것을 모두 정연하게 계통을 세워 이론화 시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와타나베에게, 누굴 설득할 일도 없고 남의 주목을 끌 필요도 없는 나오코의 세상은 편안하기만 하다.

"어째서 좀 더 정상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못하는거야?"

"그건, 내겐 그렇게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야. 내가 생각하는 어딘가 비뚤어진 사람들은 다들 힘차게 바깥 세상을 활보하고 있어"

요양원 인근 숲을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와타나베는 나오코의 세상에 빠져든다.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자신의 세상을 버리려 하는 와타나베를 걱정하는 나오코는 "나와 관계하는 것만으로도 너는 이미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는 거야"라는 말로 와타나베를 설득한다. 비록 자신도 와타나베가 필요하지만, 사람은 누군가를 영원히 지켜줄 수 없다며 '우물'이야기를 들려준다. 단지 자신을 기억해주기만 하면 된다는 부탁과 함께.

18년이 지난 독일의 어느 공항에서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음악과 함께 와타나베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나는 나오코의 추억은 '서글픔'이다. 숲의 풍경, 주변 배경 등 '나오코의 세상'은 또렷이 기억나면서도 정작 '나오코의 얼굴'은 점점 기억하기 어려워지는 서글픔. 가장 행복했던 나오코와의 친숙기에서, 나오코는 이미 자신의 존재가 잊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K를 만나는 기간중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군대 가기 전 20일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K를 위해, 나는 어머니께 K와의 동거를 부탁했다. 내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나 대신 K가 자식 노릇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어머니를 설득했고 결국 승낙을 얻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냥 내버려 둘 걸 그랬다. 그 사람에겐 그 사람만의 세상이 있는데, 나는 그 세상을 부정했다. 오만과 독선인지도 모른다. '불완전한 네 세상을 버리고 내 안으로 들어와라. 네게 약속한 행복을 지켜주겠다'는 비뚤어진 확신은 점점 나 자신을 힘들게 했다. K에게 난 완벽해야 했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수 없었고 계속 거짓말을 해야 했다. 왜곡된 내 세상은, 점점 K에대한 집착으로 변해갔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내 세상에 가둬두고 둘만의 세상을 만드는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성장의 고통같은 과정을 치러야 할 때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바람에 그 고지서가 이제야 돌아온 거야. 그래서 기즈키는 자살을 했고, 나는 이렇게 여기에 있는거야"라는 나오코의 말처럼, 세상을 등진 둘만의 사랑이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일까.

K와의 친숙기를 추억하는건 내겐 부끄러운 일이다. '너를 위해'라는 핑계로 K를 미안하게 만들고 그사람을 내 안에 가둬 둔 기억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4. 쇠퇴기/분열기
(스포일러)
요양원을 나온 와타나베에게 세상은 낯설기만 하다. 단지 3일간의 시간이었지만 나오코와의 만남은 그의 삶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그는 이제 더이상 나가사와 선배와 여자사냥을 다니지 않으며, 매주 나오코에게 편지를 쓴다. 나오코를 위해 '인생의 태엽'을 감는 와타나베는 기숙사를 나와 학교 근처에 자취방을 구하고 나오코와의 동거를 준비한다.

하지만 나오코는 와타나베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그로부터 받았던 - 그렇게 소중히 여기던 - 편지들을 모두 태우고, 그에게 유언하나 남기지 않고 자살을 택한다. 이런 그녀의 자살은, 와타나베를 '정상적 세상'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배려였다. 기즈키가 자살하기 직전 나오코를 찾지 않았듯, 나오코 역시 와타나베를 찾지 않았다.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해'한다는 것. <상실의 시대>를 이해할 수 없었던 나이에 마주친 '헤어짐'은 이해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니?"라는 말밖엔 할 수 없었던 가시돋친 헤어짐.
시간이 지나고 기억이 희미해져야 깊게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늘 한 발작씩 늦는다. 이제는 이해 했는데, 그때 헤어지자고 말해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싶은데 이미 한 발작 늦어버렸다.
헤어진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헤어진 것을 후회한다.
헤어진 것도 고마울만큼 사랑한 사람에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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