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와 용서의 줄다리기
복수와 용서의 줄다리기
  • 김유진 수습기자
  • 승인 2008.06.23 09: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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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복수는 반의어는 아니지만 여러 의미에서 상반되는 말입니다. 용서가 삶을 유연하게 만든다면 복수와 관련된 삶은 인생을 긴장되게 만들죠. 복수는 자신이 당한 피해를 상대방에게 보복하여 자신의 피해를 위로하려는 자기애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사실 인간이 만들어내는 복수는 본인이 상상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을 때가 많습니다.

미우라 아야코의 소설 ‘빙점’은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을 다룬 이야기로 츠지구치 집안을 중심으로 사건이 전개됩니다. 츠지구치 가(家)의 막내 딸 루리코가 유괴를 당하고 며칠 뒤 시체로 발견됩니다. 집의 가장인 게이조 츠지구치는 루리코가 사라질 당시 부인 나쓰에가 자신의 직장 동료인 무라이와 바람을 폈다는 것을 알고 분개하죠. 그리고 나쓰에가 루리코 대신 키울 딸이 가지고 싶다고 하자 게이조는 자신을 배신한 부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나쓰에에겐 알리지 않고 딸을 죽인 범인의 자식을 입양합니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한 것이라 입양하고 몇 년이 지난 후 나쓰에는 게이조의 일기장을 보고 입양한 딸 요코가 범인의 자식이란 걸 알게 됩니다. 그 후 나쓰에는 자신이 남편에게 속아왔다는 것에 배신감을 느끼고 역으로 요코를 미워합니다. 하지만 결국 나중엔 입양을 주선했던 다카기의 고백에 의해 의해 요코는 범인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나쓰에를 남몰래 사모했던 다카기가 범인의 자식을 사랑하며 키울 나쓰에를 가엽게 여겨 게이조를 속여서 다른 아이를 입양 보낸 것이었죠.

여러 인물간의 관계가 복잡하게 연결된 이 소설은 복수와 용서를 중심으로 인간의 욕망을 덧붙여 이야기를 진행해갑니다. 만약 처음부터 게이조가 나쓰에를 용서하고 복수심에 의한 입양을 하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계속될수록 얽혀가는 갈등들을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복수를 생각해낸 게이조 조차도 자신의 집안을 구렁 속으로 넣어버린 짐을 계속 지고 살아가니까요.

복수는 그 과정에서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파멸의 길로 인도하곤 합니다. 영화 ‘스위니 토드’에서 이발사 토드는 자신의 가정을 파탄 낸 판사에게 복수 하는 중에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가장 사랑하는 부인을 죽이고 맙니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도 등장인물 간의 꼬리를 무는 복수극은 모두들 불행하게 만들며 끝이 맺습니다.

이처럼 이런 모든 사건들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복수함으로써 최악의 상황을 만들곤 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복수극을 보면서 그 누군가도 질책하지 못하는 것은 누군가를 복수하지 않고 용서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에선 이성보다는 감성이 이기는 경우가 많고 복수의 마음은 누구라도 쉽게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지만 용서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복수는 나의 것’ 이라는 영화는 있지만 ‘용서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가 없는 것이나 ‘용서받지 못한 자’는 있어도 ‘복수 받지 못한 자’는 없는 것도 그런 이유로 설명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유진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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