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나의 도시
달콤한 나의 도시
  • 심지환 수습기자
  • 승인 2008.07.0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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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래왔다. 선택이 자유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항상, 뭔가를 골라야 하는 상황 앞에서 나는 어쩔 줄 몰라 진땀을 흘려대곤 했다.”
주인공 은수가 지하철을 타는 도중에 생각하는 말이다. 아직 20살 밖에 되지 못한 내가 이 문장을 읽으며 몸에 전기가 흐른 것은 ‘선택=책임’이라는 사실을 알아서 인지 아니면 그 사실을 이제 와서야 알았다는 것에 대한 떨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누가 됐든지 간에 선택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이다. 사는 것은 선택의 연속이다. 책임져야할 선택이라면 진땀을 흘려도 좋다.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올바른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세상의 숨겨진 이치들을 이미 다 꿰뚫어버린 것 같지만, 실상 곰곰이 따져보면 내가 몸으로 직접 겪어낸 것은 별로 없다. 아는 것과 겪는 것 사이에는 분명 엄청난 간격이 가로놓여 있다.”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해 어른스럽다’ 부끄럽지만 마음속에 항상 내재 된 마음이다. 다른 사람보다 책을 많이 읽었고 배려하는 마음이 많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느낀 거지만 그 생각은 정말 밑도 끝도 없는 자만심이었다. 고등학교 때에 비해 선배들과 진지한 이야기도 하게 되었고, 어른들과 대화 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났다.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들이 겪은 세상의 숨겨진 이치는 그 깊이를 알 수도 느끼기도 힘들만큼 대단했다.

“우리는 왜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판단하고 냉정하게 충고하면서, 자기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만 하는 걸까. 객관적 거리 조정이 불가능한 건 스스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차마 두렵기 때문인가.”
친구가 나에게 고민 상담을 한다. 진심으로 그 친구에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충고와 조언을 하며 그 녀석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뿌듯함에 사로잡히곤 한다. 하지만 난 친구가 했던 똑같은 고민을 하며 상담을 요청한다. 친구를 위해 진지하게 생각해주었던 충고와 조언은 잘못된 것이었을까? 이렇듯 고민의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 자신에게 객관적 거리 조정이 불가능 한 것은 너무 사랑해서 또는 차마 두려운 ‘사랑or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차마 두려운 ‘사랑and두려움’일 것이다.

“농담이에요. 물론, 진심을 가득 담은.”
은수와 헤어지고 시간이 흐른 뒤 태오가 은수의 집에 와서 자고 가겠다는 말을 한 후 던지는 말이다. 나의 진심을 말하고 싶을 때 돌려서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사람이 싫어하거나 혹은 잘 이해하지 못해서 직접적으로 말해야 할 상황이 오면 대부분 농담이라며 지나치곤 한다. 그럴 때 마음속에 떠오르는 여러 가지 느낌들을 이렇게 한 문장으로 간단명료하게 표현해 내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다만 가장 먼저 도착하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타지는 않을 것이다. 두 손을 공중으로 내밀어본다. 손바닥에 고인 투명한 빗물을 입술에 가져다 댄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서울의 맛이다."

작품의 끝에 있는 문장들이다. 이 문장에서 버스는 오은수의 꿈임에 틀림없다. 작품을 읽어보면 오은수는 작품이 끝날 때까지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살지는 않을 것이다. 분명히 언제가 그녀는 원하는 것을 찾고 그녀의 뜻대로 그 길을 가는 버스를 탈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녀에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도시, 서울의 맛이 달콤해 질수 있을까?

내가 읽었을 때 좋았다고 생각하는 책은 이렇게 책 중간 중간에 나를 떨리게 하는 문장들이 있는 책이었다. 물론 소설이라는 것이 부분적으로 좋은 것보단 소설을 다 읽었을 때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감동이 짠하게 흘러드는 것이 더욱 좋을 수도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었을 때 느껴진 감동은 희망 같이 날아오를 듯한 부푼 느낌 보다는 인생의 쓴맛 속에서도 그것을 견뎌내며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지며 살아가는 꿋꿋함이었다.

‘스무살 대학생’ 어느 누가 보나 행복 속에 사는 부러움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나의 미래를 꿈꾸고, 즐겁고 밝은 것에 설레며 환호한다. 분명히 오은수도 대학생 땐 우리와 마찬 가지 였을 것 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모든 일에 무덤덤하게 대처하게 된 오은수가 서른두살이 되어서야 배운, 그럼에도 살아가는 꿋꿋함을 우리 ‘스무살 대학생’이 더 일찍 배워 앞으로 나아간다면 서른두살이된 우리는 인생의 비릿한 맛이 아닌 달콤한 맛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제 진심가득 담은 농담으로 가득한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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