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맛대로 보라] ③연극 ‘그 자식 사랑했네’
[네 맛대로 보라] ③연극 ‘그 자식 사랑했네’
  • 공문성 기자
  • 승인 2008.09.09 17:25
  • 호수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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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함을 가장한 구구절절한 연애사

“연애하면서 바보같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 나보다 상대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을 위해서 이 연극을 썼다”고 작가는 말한다. 제목이 ‘그 자식 사랑했네’다. 그 사람을 ‘그 자식’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기억속의 반감과 억울함이 한데 묻어있는 까닭이다. 눈치 챘겠지만 역시나 ‘그 자식’은 바람을 피웠다. 아니, 남자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운 게 아니고, 여주인공(미영)이 바람의 상대라 할 수 있다.

내용은 이렇다. 같은 학원 강사인 그 자식(정태)은 10년을 사귄 결혼하기로 약속한 연하의 여자친구가 있었고, 여 주인공인 미영은 국어 강사다. 회식이 끝난 자리에서 미영과 정태는 눈이 맞았고, 10년 된 여자친구가 지겨웠던 ‘그 자식 정태’는 “여자친구와 연락 안한지 좀 됐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들어 미영도 만난다. 어쨌든 정태와 미영은 뜨겁게 사랑하지만, 역시나 둘의 사랑은 종말로 치닫게 된다. 미영은 우유부단한 남자의 태도에 지쳐가고 미영이 먼저 “나 너랑 이제 헤어졌다”라고 말하며 깔끔하게 헤어진다.

왠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친구가 남의 이야기를 술 자리에서 조근히 말해주고 있는 것 같은 이야기. 10년 된 여자친구가 있고, 지겹기 때문에 만난거라고 이야기하는 정태. 그럼 그 둘은 사랑했던 걸까? 그 여자만 ‘그 자식’을 사랑했던 걸까? ‘그 자식’도 ‘미영’을 사랑했던 것인가? 정태가 여자 친구가 있음을 안 뒤에도 둘의 만남은 계속되는 것을 보고 태양의 노래 “넌 나만 바라봐”의 화자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바람 펴도 너는 절대 피지마 Baby. 나는 너를 잊어도 넌 나를 잊지마 Lady. 가끔 내가 연락이 없고 술을 마셔도 혹시 내가 다른 어떤 여자와 잠시 눈을 맞춰도 넌 나만 바라봐.”

연극 속에서 ‘그 자식’의 마음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연극이 전부 여자의 시각으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근육이 살짝 잡히고, 핏줄이 살짝 튀어나온 그의 팔을 보면 참 섹시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안할 땐 언제나 침묵으로 대신하던 모습도…”. 연극 속의 미영은 솔직하면서도 섬세한 여성의 시각을 하나하나 풀어놓는다. 연극은 2명의 주인공만 존재한다. 하지만 다른 인물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인물들은 관객중의 한명이 여러 가지 역할을 하게 된다. 즉석에서 ‘관객의 무대참여’가 이루어지는데, 영문도 모르게 오늘의 출연진으로 지목된 관객은 의도치 않게 연극에 자주 끼어들게 되면서 다른 관객들에게 웃음을 주는 대상이 된다. 때문에 이상하리 만큼 가까운 관객과 무대와의 거리가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위한 또 다른 장치란 것을 알게 된다.

연극은 내용 뿐 아니라, 연극을 둘러싼 장치들도 눈에 띈다. 이 연극의 구성상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무대 장치가 칠판 뿐인데, 칠판이 모든 배경이 된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사각면체의 칠판은 여러 가지 장소를 대변한다. 칠판은 생맥주집이 되었다가, 학원이 되었다가 둘이 눈맞는 장소인 서울시립대가 되기도 한다. 이 연극의 또 다른 특징은 ‘19세 미만 관람불가’ 연극이 라는 것이다. 필자는 19세 관람불가 연극을 접한 것은 처음이었다. 연극에서는 키스까지는 실제로 연출한다. 연극이 19세 관람불가 인 이유는 대사로 인한 영향이 큰데, 성인남녀가 사귀면서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숨김없이 낱낱이 보여준다.

‘그 자식 사랑했네’는 툭 까놓고 이야기 하는 솔직함이 마음에 든다. 그렇게 두 주인공도 솔직하고 노골적이어서 그 둘의 관계는 ‘쿨’해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기만 할 뿐이었다. 이 연극은 쿨함을 가장한 구구절절한 연애이야기였다. 겉으로는 애써 아닌 척해도 속은 상처투성이 연애라는 것이 가끔 나오는 미영의 대사로 전달된다. 연극은 ‘지금까지 모든 것이 미영이 그 남자를 추억한 것’으로 끝난다. 마지막에 담담한 미영의 독백이 이어진다. “그 자식을 사랑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연애하는 연인들은 마치 중고, 고물차와 같다”고. 그에 대한 이유를 묻자 “털털대며 잔 고장이 많지만, 어쨌든 굴러가긴 가니까”라고 대답했다. 결국 그 사람을 기억하는 까닭은 사랑 때문이었을까, 추억 때문이었을까? 나는 미영에게 가서 묻고 싶다. “당신은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간다고 하면 정말 행복해 질 수 있습니까?”라고 말이다. 연극을 보고 난 뒤 산 팜플렛에 적혀있던 두 주인공의 인터뷰로 이 글을 끝맺음하겠다. 미영을 맡은 손은영: 나에게도 그 자식이 있었습니다. 나도 그 자식을 사랑했습니다. 정태를 맡은 김우경: 정태가 이해되고, 미영이 이해되고, 두 사람의 아픔이 너무 크게 다가왔다. 사랑해본 이는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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