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현답] ②거친 세태
[우문현답] ②거친 세태
  •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 승인 2008.09.09 18:10
  • 호수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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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
지난달에 『영화관 옆 철학카페』라는 책을 쓴 김용규 작가를 인터뷰 한 적이 있습니다. 작가의 집에서 만나 세 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며 시종일관 든 생각은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였습니다. 휴대폰과 자가용과 직업이 없다는 그 작가는, 오히려 세상과 한 발짝 떨어져 있어 여유롭고 행복해 보였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오며 눈과 귀를 닫고 싶은 심정이 들었습니다.

별 것 아닌 듯 흘려 넘기던 라디오와 TV, 그리고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우리가 참 많이 거칠어져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작가의 집에서 듣던, 고장난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던 클래식이 그리운 요즘입니다. 다시 쉽게 주변 사람들에게 ‘욕’을 하게 되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욕을 받아 넘기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게 슬픈 요즘입니다.

[현답]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그런 생각 중에 마음에 무겁게 와 닿는 것은 인심이 한층 거칠어지고 있다는 판단이다. 사실 판단이라기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이게 우리가 나아갈 인간문명의 지향이란 말인가…” 세상인심이 거칠어진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동물과 달리 사람은 서로 나누어가지는 것이 가능한데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그것은 거칠어지고 있는 것이다. 일상 쓰는 말이 좀 더 부드럽고 친절한 표현으로 날로 개선되지 못하는 것도 마음이 거칠어진 현상이다. 또 보다 본질적인 것에 애써 매달리지 못하고 쉽고 부차적인 재미난(?) 것에 빠져서 도덕감의 칼날을 상호 무디게 조장하고 방치하는 것도 우리 심사가 사뭇 거칠어진다는 증거라면 증거다.

우리 선배들은 “인심이 露積이다”고 했다. “나눠 갖는 것이 사랑하는 것이다”라는 서양말과 통한다고 보겠는데 남을 배려하고 또 이웃과 나누어 갖는다는 공유정신의 표현이다. 그런데 이제는 부모를 무참하게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고 또, 무엇보다도, 그것에 우리가 놀라지 않는다. 이웃이 우리의 관심 밖에서 모르는 채로 죽어가도 그저 그런가 한다. 공공장소에서 노인들에게 자리를 좀 배려하자는 의견이 나오면 왠지 성난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비좁은 버스 안에서도 상대의 가방을 들어주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우리들의 인심이 어쩌다 이렇게 매마르게 되었을까.

미국 NBC에서 방영하는 “어프렌티스”라는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이 있는데 주연이자 연출자인 도널드 트럼프의 거만하고 거친 표현이 화제다. 어프렌티스가 되려는 지원자를 하나씩 탈락시키는 과정에서 You’re FIRED! 라고 소리치는 것으로 악명 높다. 만일 그가 부드럽게 보통 어조로 우리는 더 이상 당신을 지켜 줄 수 없습니다라고 했더라면 이 쇼는 사람들의 큰 관심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거칠어진 심사를 자극해주기에 안성맞춤이었던 셈이다.

미국 FOX에서 방영하는 “아메리칸아이돌”이라는 역시 오락 프로가 있는데 가수 지망생들의 가창력을 평가하는 심사위원 중 사이먼 코웰의 거친 입담이 화제거리다. 참가하는 사람들을 평가하면서 심한 모욕감을 주는 것이 다반사다. 열심히 했지만 당신의 퍼포먼스는 우리의 기대에 못미친다가 아니다. 그게 연기라고 했느냐, 내가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 최악이다 노래라기 보다는 그냥 소리에 불과하다, 도대체 여기는 뭐하러 왔느냐 등이다. 그래서 코웰은 인기고 그 프로는 성행한다는 것이다.

참 해괴하다. 상대를 주어 패는 복싱이 스포츠냐고 항변하던 때도 있었다. 복싱에 죽어간 사람도 있었고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는 복싱보다 훨씬 더 폭력적인 격투기가 유행하고 있다. 실제로 관중의 재미를 위해서 죽도록 싸우는 경기다. 정말 머지않아 죽어나가는 사람이 속출할 것이다. 이러다가는 로마시대처럼 사자와 생사를 걸고 한판 승부하는 글래디에이터 시대가 복원되지는 않을까 두렵다.

거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요즘 특히 방송이나 영화를 보면 상스럽고 저속한 표현이 숱하다. 별나게 진한 성적 농담도 여과없이 등장한다. 폭력물은 지나치게 범람한다. 이런 것이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거나 권위적이지 않고 인간적이라거나 딱딱하지 않고 친근감이 더 든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문명 지향의 대행진을 거스르는 단지 어리석은 본말의 전도다.

자기통제하는 우리의 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 그냥 세상의 무관심에 우리를 익숙하게 해서는 안된다. 거친 표현이 단지 호사스러운 것으로 이해되서도 안된다. 또 너무 저속하고 폭력적인 것에 자신을 쉽게 물들게 내맡겨서도 안된다. 우리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하자. 자연으로 돌아가라던 J. J. Rousseau와 老子의 외침이 이제야 실감난다. 바야흐로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때다.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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