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가 김용규-철학을 말한다(下)
자유기고가 김용규-철학을 말한다(下)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8.09.23 21:03
  • 호수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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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라는 본질과 ‘있음’이라는 존재가 세상 만물의 이치
“하지만 인간만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무엇-됨’만을 부단히 염려하는 존재”

“작은 정원이지만 의외로 손 갈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정원사를 불러 일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원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가에 따라 정원의 모습이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딱 시키는 일만 끝내 놓고 일을 마무리 짓는 사람이 있는 반면, 정원 모서리의 떨어져나간 벽돌까지 손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듯 시키는 일만, 또는 자신이 아는 일만 하려는 사람을 ‘하나만 아는 바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대학은 이런 ‘하나만 아는 바보’를 길러내고 있지 않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적어도 대학생이라면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알고, 끝임 없는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관계 맺기’에 대한 질문입니다. 『철학카페에서 문학 읽기』의 ‘어린왕자’ 편에서 “외로운 건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만남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가를 생각할 수 있었던 대목이었는데요, 하지만 저도 관계 맺기가 유난히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일’로 엮이는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가 유난히 힘들었거든요. ‘일의 성과’라는 잣대로 사람을 평가하다 보니 트러블도 많이 생기고 일이 끝난 후 관계가 유지되기도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어린왕자』의 여우가 어린왕자에게 “네 장미를 그렇게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네가 장미를 위해 정성들여 쏟은 시간이야”라는 예를 들어 주시며 관계에 있어서 ‘정성’을 강조 하셨습니다. 작가님은 (일로 만나는) 사람들과 관계 맺기를 할 때 어떤 마음으로 만나시는지, 혹시 대학 때의 관계 맺기 일화가 있으신지 들려주셨으면 합니다.

=관계 맺기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이지만 동시에 내가 매우 잘 못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오래 전부터 극히 한정된 인간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내 개인적인 이야기는 도움이 안 됩니다. 그냥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죠.

인간은 하나의 존재물이지요. 그런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물들은 단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으로 존재’합니다. 여기에 놓인 ‘컵은 컵으로 존재’하고, ‘탁자는 탁자로 존재’하며, 김용규는 김용규로 존재하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세상의 모든 존재물들은 언제나 ‘무엇’이라는 본질과 ‘있음’이라는 존재, 이 두 가지의 존재론적 구성요소를 갖는다는 거지요.

그런데 모든 존재물 중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그 ‘무엇-됨’에 관심을 갖지요. 인간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자신의 ‘무엇-됨’을 부단히 염려하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든, 재산이든, 명예든, 아무튼 인간은 자기 자신을 말해주는 그 ‘무엇-됨’을 통해서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기도 하고 과시하기도 하지요. 그 좋은 예가 명함입니다.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명함을 주고받습니다. “난 부장이야”, “난 사장이야” 이런 식이지요.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 보지요. 상대의 그 ‘무엇-됨’과 맺는 관계는 올바른 인간관계라 할 수 없습니다. 올바른 인간관계는 그 사람의 존재와 맺는 관계여야 하지요. 상대의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관계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 가장 좋은 표본이 가족 관계지요. 가족이란 상대의 그 ‘무엇-됨’과 무관하게 오직 그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고 기뻐하는 관계지요. 따라서 가족 중 그 누가 설령 못생겼다고 해도, 또는 성격이 사교적이지 못하다고 해도, 특별한 재능이나 재산이 없다고 해도 그의 ‘있음’ 그 자체를 사랑하고 기뻐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는 아빠나 엄마의 ‘있음’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의 ‘무엇-됨’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므로 아이는 아빠가 외출하려고 할 때 울음을 터뜨려 그의 ‘있지-않음(不在)’을 막으려 할 뿐, 아빠의 사회적 지위나 수입 따위의 ‘무엇-됨’을 묻지 않지요. 마찬가지로 아빠도 아이에게 명함을 건네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장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관계맺음입니다. 만약 아이가 자라면서 아빠의 직업(명함)에 대해 부끄러워하게 된다면 그건 잘못된 관계라고 볼 수 있겠죠.

가브리엘 마르셀이라는 프랑스 철학자도 그런 의미에서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가족적’이어야 한다”라고 했지요. 나는 인간관계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쉽지는 않지요. 그래서 나는 사회생활을 잘 못합니다만, 스피노자가 그랬지요?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물고 어렵다”고. 여러분들은 이 고귀하지만 어려운 일을 잘해내길 바랍니다. 


▲대학생들이 가졌으면 하는 마음가짐(가치)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두 가지를 당부하고 싶습니다. 먼저 ‘행복’의 판단 기준에 대해 이야기 하지요.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쓴 스티븐 코비라는 사람을 알고 계시겠죠? 이 분은 수십 년간 ‘성공을 위해 시간을 철저히 관리하라’는 내용의 강연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을 GM의 사장이라고 소개한 한 사람이 강연이 끝난 뒤 코비를 찾아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20년 전 강연을 듣고 감명을 받아 당신이 시킨 대로 점심 식사까지 일과 관계된 사람들과 먹으며 시간을 절약해 지금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의 성공이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내 자녀들은 마약에 빠졌고, 아내는 내게 이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난, 20년 간 단 한 번도 가족들과 점심을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이죠.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코비는 그 다음부터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시간을 절약해라”라는 말 대신 “소중한 것부터 해라”라는 말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성공하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힘겹게 올라가 봤더니, 다다른 곳은 자신이 생각했던 ‘행복의 목표’가 아니었다는 말을 듣고 나서 생각이 변한 거죠.

그렇다면 어떻게 ‘방향’을 정해야 할까요? 나는 하이데거가 말 한 ‘본질적으로 살기’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할 때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과연 ‘본래적인 나’인가?”라고 자문을 해보는 것입니다. 좀 더 “극단적으로 3개월 후에 죽는다 해도 과연 나는 이 일을 할 것인가”라는 가정을 하는 겁니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죽음 앞으로 달려가기’라고 불렀습니다. ‘비 본래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하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역사와 사회가 원하는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며 죽음 앞으로 달려 나간다면 행복한 삶을 위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두 번째로 ‘설령 ~하더라도, 마치 ~인 것처럼’ 행동하는 마음가짐을 가져달라는 겁니다. 1류와 3류의 차이는 이런 마음가짐에서 생깁니다. 가끔씩 작가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글쓰기 강의를 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이때 이 말을 꼭 합니다. ‘설령 등단 작가가 아니더라도, 마치 실제 작가인 것처럼 글을 써라. 그래야 진짜 작가가 될 수 있다’고 말이죠. 스스로 ‘나는 아직 작가가 아니니까...’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절대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마치 당장 내일까지 원고를 마감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글을 써야, 그러한 과정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작가가 되는 겁니다.

아직 사회에 나가지 않은 대학생 여러분들은 대학 생활을 ‘실전’이라는 기분으로 치열하게 살아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사회에 나갔을 때 자신의 모든 기량, 또는 그 이상의 기량이 발휘될 수 있는 겁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가님의 앞으로의 집필 계획 또는 강연 계획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남들 앞에 서는 것을 부담스러워 해서 강연이나 인터뷰 또는 방송 같은 것은 여간해서 잘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틈나는 대로 철학과 신학에 관한 대중서적은 계속 쓸 겁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사람들이 오래 두고 볼만한 학문적 저서도 몇 권 쓰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용규 자유기고가의 책들

『영화관 옆 철학 카페』
책을 쓸 생각이 없었다는 김용규 자유기고가(그래서 ‘작가’라는 호칭도 부담스럽다고 한다)의 강의록이 모여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 만들어진 책. ‘희망, 행복, 시간, 사랑, 죽음, 성’이라는 여섯 개의 주제를 각각 세 편의 영화로 풀어냈다. “늦은 나이에 낳은 딸에게, 혹시라도 내가 죽은 뒤 남겨 줄 말이 뭘까 생각하며 만든 책입니다.” 김 자유기고가가 인용한 하이데거의 ‘죽음 앞으로 달려가기’를 실천한 책이다.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
『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관 옆 철학 카페』등의 책을 내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연봉 3백’이라는 소리를 들은 후 펴낸 책이라고 한다. 그만큼 ‘대중적’이기 위해 노력한 책으로, 『영화관 옆 철학 카페』를 읽기 전에 철학에 대해 좀 더 쉽게 접근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적당한 책이다.

 

 

『설득 논리학』
소크라테스에서 베이컨, 비트겐슈타인에 쇼펜하우어까지 다양한 철학가들의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을 ‘논리학’으로 풀어냈다. 연역법, 귀납법, 가추법 등 딱딱해 보이는 논리학적 지식을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광고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접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에서 베이컨, 비트겐슈타인에 쇼펜하우어까지 다양한 철학가들의 ‘진리를 찾기 위한 방법’을 ‘논리학’으로 풀어냈다. 연역법, 귀납법, 가추법 등 딱딱해 보이는 논리학적 지식을 실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광고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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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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