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진심] ④ 『망하거나 죽지않고 살 수 있겠니』
[진실과 진심] ④ 『망하거나 죽지않고 살 수 있겠니』
  • 취재1팀
  • 승인 2008.09.24 17:24
  • 호수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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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그리고 현재에도 계속되는 문제의식의 발현
‘지금 여기’의 문제를 발랄하게 되짚어 본 작품


문학동네 제5회 신인작가상 수상작인 이지형씨의 『망하거나 죽지않고 살 수 있겠니』는 오는 10월 2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모던보이’라는 영화의 원작소설이기도 하다.
『망하거나 죽지않고 살 수 있겠니』는 평론가들에게 “1930년대 경성을 무대로 한 독특한 연애소설로서 ‘근대’라고 불리는 모든 기제들을 비웃으며 ‘지금 여기’ 문제의식을 발랄하게 되짚어 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 책 속의 배경은 1930년대지만 그 속에서 당시 살아 있어야 할 애국심과 진짜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 불타는 사랑과 거짓된 혁명이 담겨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국가의 중대사일 수 있는 선거 투표율이 40%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금 여기’의 문제가 1930년대 경성이라고 없었을까? 단지 그냥 독특한 연애 소설이 되기 위해서였다면 소설의 배경을 굳이 1930년대로 잡지 않아도 소설의 전개가 가능하다. 이것은 『망하거나 죽지않고 살 수 있겠니』 이후 4년 뒤 작자가 필명을 ‘이지형’에서 ‘이지민’으로 바꾸고 출간한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장편소설 『좌절금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지형 씨는 그 당시 1930년대에도 있었을 ‘지금 여기’의 문제를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또, 1930년대라는 배경을 선택한 것은 『망하거나 죽지않고 살 수 있겠니』를 집필하고 출간할 때까지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있던 것도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통해 영화 속 평범한 드라마, 멜로, 애정, 로맨스, 미스터리, 액션적 요소들이 더 극적으로 다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영화 속 불타는 사랑을 할 박해일(이해명), 세상 모든 남자들 모두를 유혹할 김혜수(조난실)의 모습이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품 속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빛’과 ‘모자’이다. 작품 속 경성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모자를 썼던 것은 조국의 운명 앞에 기대어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함이다. 또한 여주인공 난실이 거짓과 위선적 행동을 할 때 마다 나타나는 ‘빛’(마지막 남자주인공 해명이 거짓된 행동을 할 땐 해명에게 넘어간다)은 그 당시 거짓과 위선을 통한 친일적 행동들이 득세하는 역설적 상황을 풍자하기 위한 장치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1930년대도 그렇고 현재에도 계속 되고 있는 문제의식을 멋지게 풀어낸 이지형(현재 필명 이지민) 씨는 2004년 장편 소설 『좌절금지』, 2008년 단편 소설집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를 내면서 작가로서의 이름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심지환 기자 sjhspecial@dankook.ac.kr

페르소나적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의 외로움
‘모자’를 벗고 에고를 간직한 채 살 수 있겠니?


각자의 모자를 눌러쓰고 오늘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투명 모자 속에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춘 채 그렇게. 조난실은 한 순간도 모자를 벗지 않는다. 그에 반해 이해명은 소설 속에서 딱 한 번 모자를 쓸 뿐 모자와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산다.

페르소나(Persona). ‘인격’, ‘위격(位格)’ 등의 뜻으로 쓰이는 라틴어. 본디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이제는 ‘인생’이라는 연극의 배우인 인간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 더 많이 쓰이고 있다. 책 속 등장인물 대부분이 쓰는 크고 화려한 모자들은 인간의 가장 외적인 인격으로, 사회적 가면을 의미하는 페르소나를 떠올리게 한다. 반면 페르소나 바로 뒤에 숨어있는 ‘맨얼굴’, 자신의 내부 모습을 의미하는 에고는 변명 속에 본인을 감추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정작 독자에게는 그 정체가 전부 드러나는 이해명을 통해 발견된다.

대부분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뜨겁게 부풀어 올랐던 영웅들의 대의(大義)를 이루고자하는 훌륭한 정신과 암울한 시대상 속에서의 희망, 의지 등이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 달랐다. 조난실의 외로운 대의를 위한 거짓과 위선으로 일관된 삶의 모습에서 에고를 숨긴 채 페르소나적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허풍과 자기합리화를 통해 본인을 설득하며 ‘모자’ 없이 살아가는 이해명과 그를 사랑하는 조난실. 그녀의 사랑은 순수하고 맑은, 그리고 자신을 꾸미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속에서 삶을 살아가길 바라는 페르소나적 존재인 인간들의 소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누구나 ‘테러박’(조난실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로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완벽한 인물) 같은 영웅을 원한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진짜’ 영웅을 찾기란 어렵다. 등 떠밀려 가식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말 그대로 멋지게 짜잔 하고 등장하는 영웅은 흔치않다. 『망하거나 죽지않고 살 수 있겠니』는 그러한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적당히 페르소나적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들, 진정한 영웅은 없다. 분장 없이 살아가는 삶을 꿈꾸는 것.

작가는 제목을 통해 묻고 있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라고. 망하거나, 자신의 페르소나를 버리고 또는 모자를 벗고(사람들은 없어보이는 것, 가식적이지 않은 것을 망했다라고 생각한다), 죽지않고, 자신의 본 모습인 에고를 죽이지 않고, 살 수 있겠니라고. 외롭지 않게, 당당하게, 우리의 철면피 주인공 이해명처럼 떳떳하게 말이다.

김은희 기자 mamorikam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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