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천국보다 낯선 공간 아시아
① 천국보다 낯선 공간 아시아
  • 이원상(도시계획·부동산·06 졸) 동문
  • 승인 2008.09.23 20:37
  • 호수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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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푸낙의 점원 소녀에게 아시아 도시공간은 ‘첸나이’와 ‘뉴델리’였다

당신에게 런던 피카딜리 서커스의 Virgin Megastore(Record shop)는 낯익을지라도 ‘왓 프라케오’는 낯설 것이다. 아시아의 공간과 그 좌표는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다. 그것은 공간을 체험하는 방식이 공간을 인지하도록 결정짓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우리는 직접 가보지 않았더라도 태평양 건너에 있는 뉴욕을 친근하게 여길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스크린을 통해서 연인과의 데이트를 우디 앨런의 ‘맨하탄’에서 경험하였고,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과 함께 신나는 거미줄 타기 그 마천루에서 경험했다. 어디 그뿐인가. 고뇌와 시련의 공간 역시 뉴욕 아니던가. 네빌 박사와 그의 충견 ‘샘’과 함께 텅빈 킹시티의 한복판에 생존자로 서 있었으며, ‘트래비스’와 함께 할렘의 길목에 불어오는 스산한 바람을 등지며 지나치곤 했다.

태평양 건너의 뉴욕은 우리에겐 친숙한 공간-장소이다. 우리들에게 뉴욕은 베트남의 하이노, 라오스의 비엔티안, 중국의 청두, 미얀마의 양곤 보다 훨씬 친숙하다. 결국 같은 말이지만 아시아의 친구들이 살고 있는 ‘아시아-공간’은 우리들에게는 매우 낯설다. 공간을 체험하는 방식의 문제는 우리의 공간 인지를 왜곡되게 만들었으며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서 지정학적 위치 짓기에 실패하게 만들었다. 이 실패에는 일종의 반발심이 숨어 있다. 이를테면 내가 아시안이라고 불리울 때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낯선 타자로 만들기 일쑤이다. 우리는 한국인인 것을 자랑스러워 하지만 아시안이라는 것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는 것 같다. 아시아란 호명이 있을 때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동남아의 친구들과, 중국 서부의 유목 친구들과, 서남아시아의 친구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반발심이 있기 때문은 아닌가. 공간을 인지하는 것은 어쩌면 결국 나와 나의 견해를 설명하는 하나의 척도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아시아를 폭넓게 인지하는 것은 아시아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아시아와의 소통을 뜻하며 동시에 일종의 연대에 대한 가능성을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친구가 될 준비가 되어 있느냐의 문제이다. 나는 수년 전 파리의 푸낙‘FNAC’에 진열되어 있는 음악 앨범들을 살펴보다가 점원에게 아시아 뮤직 코너를 알려달라고 요청하였다. 동경 시부야의 타워레코드에서 한국뮤지션의 앨범을 만나는 반가움같은 것을 내심 기대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사실은 아시아 팝 뮤직이 어떻게 산업적으로 유럽시장에 침투하고 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며 그 선봉에서 첨병 노릇을 하는 싱어가 누구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Loudness정도면 될까? 혹시 화어권인가? 점원 아가씨가 내게 아시안 팝 코너라며 안내해 준 곳은 dalermehndi같은 인도가수들이 포진한 그들의 ‘아시아’ 팝뮤직 코너였다. 그러니까 나에게 아시아 도시공간은 Far East 즉 한국의 서울과 부산이며, 일본의 동경과 나고야이며, 중국의 상해와 베이징이다. 하지만 파리 ‘푸낙’의 그 앞치마를 두른 점원 소녀에게 아시아 도시공간이란 아마다바드와 칸푸르이며, 첸나이와 뉴델리인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 지면을 통해 지난 청춘의 시간에 만난 아시아의 친구들과 그들의 공간을 변명처럼 소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Mikio Naruse의 세계에서의 비극적인 그(녀)의 뒷골목, 이마무라 쇼헤이의 그 지독한 인본주의적 공간, 기타노 다케시의 죽음의 냄새 풍기는 열도 오끼나와의 공간, ‘미시마유키오’와 목에 핏발을 세우는 전공투의 토론공간, 또 다른 변명을 늘어놓자면 이단아 최양일의 억척스러운 이민자의 공간, 홍콩 반환 직전의 불안한 기운과 감성 그리고 그 찰나의 시공간, 혹은 허샤오시엔의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는 해맑은 ‘비키’의 타이페이와 눈 덮인 유바리. 이 때 누군가 내 옆구리를 찌르면서 변을 더 늘어놓으라고 부추긴다면 정말 미친 척하고 구라파의 오리엔탈리즘이 분출하는 데이비드 린의 그 활극무대로서의 중동 사막과 그 비열한 풍광까지 이야기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 짓겠지. 진정성을 가지고 정말 진지하게 눈을 부릅뜨고 아시아 공간을 사유한다면서 Mohsen Makhmalbaf의 칸다하르 즉 서구적 삶을 체득한 이방인-아프가니스탄 여성의 그 낯선 풍광을 발끝을 쳐다보며 수줍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이런) 

이원상(도시계획·부동산·06 졸)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 

■ 이원상 동문은
우리대학 도시계획·부동산 학부를 2006년에 졸업하고 이듬해 동 대학원을 마친 후,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 연구원에서 도시재생 분야 연구를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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