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현답] ③‘반항’으로서의 자살
[우문현답] ③‘반항’으로서의 자살
  •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 승인 2008.09.23 22:11
  • 호수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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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 마지막 장면이 가장 인상 깊은 영화 세 편을 꼽으라면 아마 ‘델마와 루이스’라는 영화는 꼭 포함될 것 같습니다. 낭떠러지로 자동차를 달려 자살을 선택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변하지 않는(또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반항을 상징해 강한 인상을 남겼는데요, 하지만 요즘 들어 ‘과연 그것이 최선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에 대한 반항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은 차치하더라도, 그런 자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언론에 회의가 들 때도 있습니다. 한 때 김지하 시인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사설을 쓰기도 했었는데요…. 삶의 포기가 아닌 반항으로써의 자살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현답] 구한말 단발령이 내렸을 때 우리 선배들은 부모가 주신 머리카락 하나라도 훼손할 수 없다며 차두가단차발불가단此頭可斷此髮不可斷이라고 맞섰다. 요즘에야 신체에 대한 절대적 자기통치권sovereignty을 당연시 하는 세상이니 객쩍은 소리로만 들리리라. 하기사 몇 해 전 프랑스에서 마약복용으로 체포된 한 여성이 “나는 내 몸을 황폐화시킬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격세지감이 더하다. 자기 신체에 대한 통치권한만 얘기하자면 어디 머리자르는 것에 그치겠는가. 자기 몸 안에 있는 태아를 낙태시키는 것은 어떻고, 더 나아가 자기 생명을 종식시키는 자살은 또 무슨 문제리요.

법이란 성문이건 불문이건 종내 실정법일 수밖에 없다. 시대상황을 대변하고 또한 시대정신을 대신해 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자유개인주의 만능의 시대에 나름의 이유로 자살하겠다는 것을 불법이라고만 몰아세우는 것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자살이 정당한 것이냐의 문제는 결국은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윤리성과 관련한 문제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18세기 영국 에딘버러 출신의 철학자로 흄Hume이 있는데 그는 “사람에게는 자살할 도덕적 권리가 있다”고 말하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미움을 사 그는 사회에서 철저히 배척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시대를 앞서간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도, 언제라도 힘겹다. 저 고대 소크라테스의 독배毒杯부터 시작해서 사상의 선두에서 선구자들이 치른 형극이 어디 하나 둘이던가.

그러나 자살의 윤리적 정당성을 논하는 경우라면 또 개인의 자유와 권리의 가치가 지존인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논의는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자살이 개인의 행위라 하여도, 개개인이 사회라는 틀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한, 사회가 자살에 부여하는 의미를 모조리 방관하거나 무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19세기 말의 역사는 외세침탈에 의한 불운의 애사哀史다. 을사조약이나 한일합방을 맞아 자결의 길을 간 지사들이 숱하다. 그 들에 대해서는 자살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불경스러워 순국이라 부른다. 부당한 일제침략에 맞서 죽음으로써 항거한 살신성인의 행동에 대한 사회가 주는 일종의 절대적 의미부여다. 그만큼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그 의의에 동참해서 그렇다. 그래서 그들의 자결은 이미 많은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우리 사회는 소위 산업화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겨난 비민주적 비인권적 비환경적 문제와 첨예하게 부딪치는 소용돌이를 겪어야 했다. 불과 몇 개만 열거해도, 전태일 분신사건이나 YH무역 여공사건이나 천성산 도룡농 사건 등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사회부조리에 대한 목숨 건 항변에 대해서는 시비가 갈린다. 그것은 민주냐 산업이냐, 인권이냐 복지냐, 환경이냐 개발이냐의 다툼의 와중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그들의 자살은, 애석하게도, 이 시대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절대 다수의 동의를 얻지는 못한다. 그들의 자살행위는 사회적으로 부분적 정당성만을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요사이 연예인들을 비롯하여 자살이 빈번하여 화제다. 돈때문이요 사랑때문이며 명예 때문이다. 또한 한참 논쟁중인 안락사도, 소극적이거나 적극적이거나, 의사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만 다를 뿐 엄연한 자살행위다. 지극히 개인적이라는 탓으로 이들의 죽음의 정당성은 훨씬 더 논란적이다. 물론 사회적 동의를 얻는다는 것은 더욱 힘들고 무관심이 지배적이다.

모든 자살은 기본적으로 반항이자 거부 그 자체다. 이 시대로서는 개인개인의 자살은, 그것이 배신에 대한 항변이거나 부정의에 대한 강한 반대거나 혹 이유 없는 반항이라 할지라도, 순전히 개인의 결정이고 개인의 선택이고 개인의 책임일 수 밖에 없다. 싸르트르Sartre는 평화주의자가 전쟁터에 강제징집 당하는 것도 자기자신의 책임이라고 했다. 죽음을 택함으로써 거부할 수 있는 길을 택하지 않는 책임이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자유주의시대를 사는 우리 개인은 자유의지의 도덕적 행동 moral agents이라는 월계관이자 멍에를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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