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생활 속 과학] (49) 추분(秋分)
[유레카! 생활 속 과학] (49) 추분(秋分)
  •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 승인 2008.09.23 22:36
  • 호수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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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추분이다. 어제까지 득세했던 한여름 같은 더위가 오늘 한풀 꺾였다. ‘절기는 못 속인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이번에도 들어맞는다. 우리는 “24절기와 실제 날씨가 딱 맞으니 우리 조상의 지혜가 놀랍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 때 24절기를 음력 기준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과학적으로 살펴보면 24절기는 음력이 아닌 양력과 들어맞는다. 또 엄밀히 말하면 24절기는 기원 전 10세기부터 시작되어 기원전 256년까지 지속되었던 중국 주나라 때 화북 지방의 날씨를 근거로 유래했다고 하니 우리 조상의 지혜라고 보기도 어렵다.

물론 24절기가 시작되던 그 옛날 중국은 달의 위상 변화를 기준으로 한 음력을 사용했다. 음력은 날을 세는 데는 문제가 없었으나,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일어나는 기후의 변화를 반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천문학 지식을 동원하여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를 24등분했다. 원은 360°이고, 24등분하면 한 칸의 절기를 이동할 때의 각도인 15°가 나온다. 태양이 15° 만큼 움직일 때마다 날씨를 나타내는 용어를 하나씩 붙여 24개의 절기를 완성했다. 절기는 이처럼 음력을 쓰는 농경 사회에서 만들어졌지만,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양력의 날짜와 일치하게 된 것이다.

▲ 추분에 핀 코스모스
실제로 달력을 놓고 보면 24절기는 양력으로 매월 4∼8일 사이와 19∼23일 사이에 온다. 절기와 절기 사이는 보통 15일이며, 경우에 따라 14일, 16일이 되기도 한다. 이는 지구의 공전 궤도가 타원형이어서 태양을 15°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케플러가 화성 관측 결과를 바탕으로 제1법칙인 “타원 궤도의 법칙”을 발표한 것이 1609년이었다. 비록 케플러처럼 수학적 추론을 통해 지구의 공전 궤도를 타원이라고 밝히지는 못했지만, 일상의 경험으로 날짜를 조절하여 24절기를 정한 동양의 지혜는 케플러보다 거의 2,000년이나 앞섰다.

천체의 위치와 운동을 나타내기 위해 관측자를 중심으로 반지름이 충분히 큰 구면을 가상하여 이를 천구(天球)라고 한다. 천구 상에서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와 천구의 적도는 23.5° 기울어져 있는데, 황도와 천구 적도의 교점이 북에서 남으로 지나는 날이 추분이다. 양력 8월 7일의 입추(立秋), 8월 23일의 처서(處暑), 9월 7일의 백로(白露) 모두 24절기 중 가을에 해당하지만, 이들은 모두 농사 과정에서의 가을이다. 우리가 기온 변화를 느끼는 진정한 가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추분에서 시작한다고 본다. 추분 전까지는 여전히 태양의 남중 고도가 여름에 가깝고, 낮의 길이도 밤보다 길기 때문에 계절적으로 가을을 느끼기가 어렵다. 24절기가 유래된 중국 화북 지방은 오늘날 베이징이 위치한 중국 북부 지역이므로 이보다 위도가 낮은 한반도에서의 계절 변화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는 견해도 있다.

서양 과학에서는 춘분(vernal equinox)과 추분(autumnal equinox), 하지(summer solstice)와 동지(winter solstice) 등 계절의 변화와 관련한 4개 기준점 용어만 있는 반면, 동양에서는 24개로 세분했다는 점이 놀랍다. 24절기의 명칭도 입춘(立春), 대서(大暑), 한로(寒露), 소설(小雪), 대한(大寒) 등 예외 없이 ‘날씨’와 관련된다. 일상에서는 음력을 사용하면서도 농경에서는 태양의 움직임을 고려했던 동양의 ‘융통성’과 ‘감(感)’에 찬사를 보낸다.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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