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끊기지 않는 그 곳] ②40년 세월의 향기가 깃든 ‘나그네파전’
[발길 끊기지 않는 그 곳] ②40년 세월의 향기가 깃든 ‘나그네파전’
  • 김은희 기자
  • 승인 2008.09.30 09:54
  • 호수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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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전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치열한 논쟁과 사랑을 나눴죠”

이번 주는 회기역 근처의 파전골목을 찾았습니다. 값싸고, 푸짐하고, 맛있어 우리대학 재학생들도 꽤 찾아가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40년의 세월을 지켜온 ‘나그네파전’ 집이 있습니다. <편집자 주>

40년을 한결같이 지켜와 ‘두툼한 추억’을 만나는 곳이 되었다

#1. 경희대 파전골목에 들어서다
가랑비가 내린 후 하늘이 온통 가을로 물들었던 지난주, 쌀쌀한 날씨와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에 투박한 기름 냄새가 떠올라 경희대학교 파전골목을 찾았다. 회기역 사거리에서 기찻길 쪽으로 조금 걸어가자 파전집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여섯 개 늘어선 간판들 사이에서 ‘37년 전통의 원조 나그네파전’이라는 간판이 특히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파전골목이 형성되기도 전부터 있었다던 진정한 원조가게에서 우리는, 요즘 사람들이라면 전부 입에 달고 사는 ‘물가상승’이라는 그 흔한 경제용어도 잊고, 일교차가 큰 변덕스러운 가을 날씨에 더욱더 허전해진 옆구리도 잊은 채, 항아리 동동주를 한 사발씩 받아들었다.

#2. 원조, 어떤 일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
장충동 족발가게, 남산 돈가스가게의 경우 아직도 진정한 원조가게가 어딘지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이곳은 다르다. 파전골목에서 원조가게는 확연하게 드러난다. ‘나그네파전’은 검증된 원조가게인 것이다. 나그네파전 사장인 공경자(73세) 할머니가 33살의 나이에 아무것도 없던, 할머니 표현에 따르면 ‘휑하던’ 이곳에 파전의 꿈을 품고 자리를 잡았단다. 이내 카스테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두툼한 파전과 공 할머니의 훈훈한 인심에 대한 소문이 사람들의 입을 타고 번지면서 비슷한 가게들이 이웃하게 됐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골목이 형성됐다.

올해로 정확히 40년. 간판은 ‘37년 전통의 원조’라고 말하는데, 이보다 세월의 속도가 더욱 빨랐다. 오랜 시간동안 이곳에서 장사를 하며 공경자 할머니가 쌓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세월의 무게에서 느껴지듯 쉽게 짐작할 수 있거나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나그네파전 본관 한 쪽에서 파전을 먹고 있던 김영하(40세, 동대문구) 씨는 이곳에 대해 “학창시절 동기들과 술 한 잔을 나누고, 배고픔과 치열한 논쟁과 그리고 사랑을 나누던 곳이죠”라고 설명했다. 그에게서는 나그네파전과 함께한 세월의 냄새가 묻어났다. 나그네파전은 경희대학교 앞에서 뿐 아니라 고려대학교, 한양대학교 앞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할머니의 형제들이 운영하고 있단다.

“파전의 온기만큼이나 모여드는 사람들의 얼굴에 훈훈함이 묻어 있었다”

#3. 그곳에는 사람들의 다양한 얼굴이 있었다
오후 6시, 좁은 거리가 대학생과 직장인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전통답게 이곳은 거리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단란한 가족들과 나이 지긋하게 드신 할아버지들, 모임을 갖는 중년의 아저씨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른 오후부터 자리를 잡고 앉아 두런두런 세월이야기를 나누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들도, 김치찌개를 가운데 두고 동그랗게 둘러앉아 저녁을 해결하던 가족들의 모습에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곳의 매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끔 해주었다. 2인용 식탁을 마주보고 앉아있는 이제 막 만난 듯한 한 커플은 보는 사람조차 민망할 정도로 말없이 열심히 파전만 헤치고 있었다. 새치름한 양파초절임을 남자 앞으로 옮기던, 술기운에서인지 사랑의 힘 때문인지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던 여자의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나그네파전은 본관과 별관 2개 건물로 이뤄졌다. 비가 와서 그런지 본관과 별관 모두가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낮은 천장과 좁은 가게가 그 어느 날 느꼈던 것 같은 아늑한 느낌을 떠오르게 했다. 천장 위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70년대 영화 배경 속에서나 나올 법한 반짝이는 전구와 이곳저곳에 쳐져있던 대나무 발에서 젊은 학생들은 태어나기도 전인 40년 전의 풍류를 느꼈다. 서로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옆 사람과 따닥따닥 앉아 부대끼며 경쟁적으로 파전을 뜯고 있노라면 사회적 지위고 체면이고 모두 잊게 되는 것만 같았다. 그 경쟁에 한참 몰두하고 있던 김정은(29세, 성북구) 씨는 “소문으로만 듣던 나그네파전의 맛을 오늘에서야 처음 보았다”며 “그동안 한번 가봐야지 말만 하고 선뜻 못 왔던 것이 후회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나그네파전의 명성은 계속될 듯 싶다.

#4. 명성은 얻는 것이요, 인격은 주는 것이다
해물파전 6000원, 항아리동동주 4000원. 요즘 같은 때 사람 셋이서 만 원 한 장으로 만족감을 얻기란 쉽지 않다. 흔하게 얻을 수 없는 기쁨이 이곳에서는 후덕하고 두툼한 파전으로부터 전해졌다. 고추튀김 7000원, 골뱅이 7000원, 김치찌개 6000원 등. 이곳의 ‘착한’ 가격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먹고 나서 계산을 하는 기자에게 “너무 바빠서 맛있는 것도 못 챙겨줬네, 미안해” 하시던 할머니의 후덕한 미소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알싸한 맛이 일품이었던 큼직한 깍두기를 먹으며 시골에 계시는 그리운 외할머니를 떠올렸다. 그 언젠가를 떠올리게 하며, 추억이 있고, 세월이 있고, 무엇보다도 파전이 있는 곳. 차가워진 바람에 몸이 움츠려드는 요즘, 따스한 인심과 완벽한 파전, 만 원의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나그네파전’은 어떨까.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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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morikam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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