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맛대로 보라 ⑤ 연극 안 내놔? 못 내놔!(CAN'T PAY WON'T PAY)
네 맛대로 보라 ⑤ 연극 안 내놔? 못 내놔!(CAN'T PAY WON'T PAY)
  • 김유진 기자
  • 승인 2008.09.30 17:21
  • 호수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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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과 정치의 속성에 신음하는 서민, 해학과 풍자는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연극 '안내놔? 못내놔!'의 포스터
서민들의 힘든 삶을 무겁지 않게 다룬 다리오 포의 '안 내놔? 못 내놔!'는 소극장에서 공연되었지만 결코 '작은 연극'이 아니었다. <편집자주>

‘우유 값이 인상됐다.’, ‘노동자들이 파업했다.’, ‘경제는 어려워지는데 물가는 계속 오른다.’ 최근 뉴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다. 동시에 먼 옛날부터 계속되던 뉴스다. 아마 어려운 경제와 그 경제를 살리지 못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은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 할것 없이 이어져오는 문제일 것이다. 서민들의 삶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여유로운 적이 없었고 배고픔에 허덕였으며 목숨을 이어가는 날들의 모음으로 대변됐다.

 
1997년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우연한 죽음’이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탈리아 극작가 다리오 포(Dario Fo)의 희곡을 바탕으로 만든 연극 ‘안 내놔? 못 내놔!’는 이런 서민들의 삶을 무겁지 않게 담았다. 이야기는 70년대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진행된다. 불황이 계속되는 어느 날 터무니없는 식료품 값에 분노한 주부들이 시위를 벌이다가 마트에서 음식들을 훔치게 된다. 경찰들이 사건과 관련해 시내의 모든 집을 가택 수사를 하고 이에 주부들은 그 훔친 음식들을 들키지 않으려 옷 속에 음식을 숨겨 임신한 것처럼 꾸민다. 이처럼 연극은 흥미로운 내용으로 전개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연극은 경관의 죽음, 장의사의 등장, 여자들의 거짓말 등이 얽히고 얽히면서 점점 더 복잡해진다. 그럼에도 연극을 보는 동안 이야기의 전개가 머릿속에 쉽게 그려지는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일 것이다. 90분 내내 관객들의 웃음은 멈추지 않았다. 인물들의 뚜렷한 캐릭터와 그들의 허를 찌르는 유머들은 ‘개그콘서트’나 ‘웃찾사’를 능가할 만큼 유쾌했다.


그렇지만 마냥 웃고 있을 수 만은 없었다. 주부들의 발랄한 거짓말 소동 속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연극은 아무 생각 없이 권력자들의 말에 복종하기만 하는 경찰들을 풍자하고 임금을 주지 않아 파업을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씁쓸하게 비춘다. 임신을 위장한 부인을 병원으로 보낼 때 ‘서민들은 병원을 가려면 6개월 전부터 예약해야 한다’는 말은 노동자들의 열악한 의료상황을 보여주기도 한다.


연극은 자기 배 채우기에 바쁜 위정자들을 주된 비판상대로 삼으면서도 단순히 정책만 비판하지는 않는다. 국민의식자각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중간 중간 여러 인물들의 대사에서 나오는 “정부의 말뿐인 백지공약을 반대하려면 스스로 개혁해야한다. 국민이 개혁을 바란다면 국민이 직접해야한다!”라는 말은 그 옛날의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현재의 대한민국에서도 되새겨야 할 말로 들린다. 예나 지금이나 형태가 변했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최근 그 의미가 변질되긴 했지만 본래 코미디의 사전적 의미는 ‘웃음을 중심으로 인간과 사회의 문제점을 경쾌하고 흥미 있게 다루는 것’이라고 한다. 이 연극 속에는 익살맞은 배우들의 연기와 그리고 그 뒤에 사회에 대한 비판이 담겨있었다. 이런 것이 진정한 코미디일 것이다. 유쾌한 이야기 속에서 예나 지금이나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모습을 보니 학창시절 한국문학을 공부할 때 배웠던 ‘웃음으로 눈물닦기’가 기억났다.


소극장의 무대는 객석과 경계가 구별가지 않을 정도로 가까웠다. 연기자들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렸고 그들의 땀방울이 삼십 센티도 안 되는 거리에서 보였다. 덕분에 관객들은 연극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무대로 스며들 수 있었다. ‘안 내놔? 못 내놔!’는 작은 극장에서 막을 올렸지만 결코 ‘작은 연극’은 아니었다.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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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j9014@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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