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영혼]
②쇼아(Shoah)의 공간 : 비열한 입방면체
[공간의 영혼]
②쇼아(Shoah)의 공간 : 비열한 입방면체
  • 이원상(도시계획·부동산·06 졸) 주택도시연구원
  • 승인 2008.09.30 17:24
  • 호수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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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야만의 공간은 과거로 묻혔을까
보스니아, 르완다, 이라크 등에서 재현되고 있다

▲에곤 쉴레(Egon Schiele)의 작품
내 고민의 화두 중 하나가 ‘Shoah’이다. 쇼아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가 유럽 전역에 있는 유대인과 특정부류의 사람들을 집단 학살한 것을 지칭한다. 2003년 아직 청춘의 이른 봄향기가 맴도는 한남동 캠퍼스 신관 강의실, ‘계획이론’(이동욱 교수) 강의시간에 교수님의 배려로 이 주제를 가지고 70여분 간 발표를 한 기억이 있다. Shoah를 난생처음 알고 충격을 받은 지 16년째가 되는 해이기도 했으며 난생처음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우유를 사기 위해 들어간 상점에서 제지를 받은 사건이 있었던 이듬해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여전히 나에게 흥미진진한 토픽을 제공한다.

나치독일은 유럽전역에서 600만명의 유대인을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과 같이 유사-단일민족으로 분류된 지역-공간에서 자행된 사건이 아니라 독일, 오스트리아 등 제국의 보호국에서부터 시작하여 이태리의 서유럽과 유고슬라비아와 루마니아 즉 발칸지역 그리고 헝가리 슬로바키아에 이르는 동유럽의 지평까지 폭넓은 대이동을 필두로 한 대단히 추상적이며 방대한 공간에서 자행되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추상적이며 방대한 공간이란 비균질적인 공간-유럽을 뜻한다. 이것은 인종학적 문제와 결부된 공간이면서, 동시에 사회학적 지층이 어지럽게 혼재되어 있는 공간이다.

관료화된 조직은 행정공문을 작성하고 승인절차를 꼼꼼히 지켜가면서 인종적 피의 문제를 공간상에서 시간의 수직 좌표를 그렸다. 최종해결의 대상이 누구이냐를 두고 인류학적 데이터를 이용해 연구하고 토론해 가면서 색출 작업을 벌인 것이다. 이 문제는 나치에게 정말 심각한 문제였다.

“쇼아는 독일 나치가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과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집단학살 한 것을 지칭한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작품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나는 네델란드인인데 내 아버지는 유대인이면서 폴란드 국적을 가진 사람이었고 나의 어머니는 헝가리인이면서 유대인이었다. 나의 아내는 독일인이나 어머니가 유대인이며 “Gipsy”이다. 그리고 나는 유치원생 아이가 하나 있다. 게쉬타포는 바르샤바에 있는 나와 나의 가족을 체포하여 죽음의 수용소로 보낼 것인가. 만약 나와 나의 가족과 같은 분류의 사람들을 국가정책을 통해 죽인다면 독일여론은 정권에 대하여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정책은 공간에서 실행되고 정책의 내용인 쇼아가 ‘공간’ 안으로 들어올 때 공간은 급진적으로 그 의미의 입방면체를 다각화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공간(Space)의 정치적, 사회적인 측면과 마주치게 된다. 이러한 익스트림한 공간은 과거란 시간 속에 묻혀 있을까. 그 야만의 시간은 공간상에서 여전히 재현되고 있다.

1942년 1월 독일 내무성, 법무성, 나치당 대표 비서실과 전시 경제를 위한 4개년 계획 담당청 등 고위급 관료들이 인류의 야만을 안건 상정한 날부터 시작하여 오늘 날까지도 이 화두는 여전히 공간 안에서 유효하다. 1990년대, 소니워크맨을 듣고, CNN 뉴스를 보고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으며 대학생활을 하는 보스니아의 대학생에게도 이 야만의 시공간이 펼쳐졌으고, 여전히 우리는 유럽 한복판에서 야수가 돌아다닌다는 사실을 절감해야 했다.

아우슈비츠 이후 인류는 시를 쓸 수 없다는 아도르노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다시 상기해야만 했다. 득이 될 것이 없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서방세계의 침묵 속에 베오그라드의 소녀들과 빅토리아호의 아름다운 풍광이 숨막힐 듯 다가오는 르완다의 소년들이 함께 죽어가는 이 지구-공간에서 우리는 오늘 아침 눈을 비비며 일어난 것이다. 55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통해 클로드린츠만은 그 모든 것이 설명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글은 쓰레기통에 들어가야 마땅하다.(이런)

이원상(도시계획·부동산·06 졸)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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