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끊기지 않는 그 곳] ③ 클래식 전문 매장 ‘풍월당’
[발길 끊기지 않는 그 곳] ③ 클래식 전문 매장 ‘풍월당’
  • 김유진 기자
  • 승인 2008.10.07 21:59
  • 호수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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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 들어서면 편안해진다

▲'풍월당' 의 내부모습

이번 주 ‘발길 끊기지 않는 그 곳’은 클래식 전문 매장 ‘풍월당’입니다. 음악 이야기를 나누는 풍월당에서 가을과 음악과 추억을 만나봅니다. <편집자 주> 

일상의 피로가 씻기는 공간, 넉넉함이 찾아온다

 차가운 공기와 밝은 햇살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차분해지는 계절인 가을이 왔다. 이런 가을, 쌀쌀한 바람에서부터 마음을 달래줄 음악 한곡이 절실해진다. 흐트러지는 마음을 위로해줄 음악을 찾고 싶은 기분에 풍월당을 찾았다.

풍월당은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 길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왼편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에서 내리자 주황빛 벽과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에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가게에 들어서자 벽과 선반에 가득 진열된 음반들이 보였다. 분위기에 압도되어 약간 서먹하게 서있자 점원이 다가와 묻는다. “차 한 잔 드릴까요?”


풍월당은 클래식만 전문으로 다루는 매장으로 2003년 처음 문을 열었다. 현재 3만 여종의 음반들과 DVD (전 품목 클래식)이 구비되어있다. 풍월당의 주인인 박종호 대표는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국내에 클래식 전문 매장이 한 곳도 없다는 점이 안타까워 풍월당을 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단순한 음반을 팔기 위한 장소가 아닌 음악적 교류도 나눌 수 있는 문화공간을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풍월당(風月堂)’이란 이름도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긴 선조들의 낭만을 상징하는 ‘청풍명월(靑風明月)’에서 비롯된 것으로 휴식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름에 걸맞게 매장 곳곳에는 휴식공간이 눈이 띄였다. 편안해 보이는 분홍색 소파가 구석에 숨어있고 쇼윈도를 따라 일자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져있다. 가게 한 가운데의 큰 테이블 위엔 사탕과 음반잡지를 모아둔 파일이 놓여있다. 이정도면 음반 가게라기보다는 카페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구석구석을 가득채운 소품들도 새롭다. 비행기 모형이 벽 한쪽에 달려있고 벽에도 작은 액자들이 걸려있다. 음반 진열대 위에는 작은 모형들이 심심하지 않게 서있다. 테이블 위에는 풍월당을 소개하는 파일과 음반잡지를 스크랩해둔 파일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물건 하나하나에 손님을 위한 섬세함과 애정이 묻어났다. 이른 오전인데도 대여섯 명의 손님들이 가게를 채우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군복을 입은 청년, 학원가는 길에 잠시 들린 듯 보이는 학생까지. 모두 마음에 드는 앨범을 들고 살펴보고 있었다. 가게의 초창기 시절부터 왔다는 한 부부는 풍월당에 대해 “무엇보다도 여러 종류의 클래식 음반을 접할 수 있는 점이 좋다”며 “클래식을 좋아해 틈틈이 방문하는데 이곳에서 음반을 사기 위해 쓴 돈만해도 엄청나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부대친구들과 함께 찾았다는 조권행(22) 군은 “친구 따라 두 번째로 오는 건데 아늑한 분위기가 편안해서 좋다. 볼 수 있는 책도 많고 좋은 음반도 볼 수 있어 즐겁다”고 했다. 예순이 넘어보이는 노신사가 컴퓨터 바코드에 음반을 찍고 음반 정보를 읽는 광경도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가족단위 손님도 보였다. 부인과 아이 둘과 같이 왔다는 윤여욱(34) 씨는 “조용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다. 가족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곳이어서 좋다”고 설명했다.

어떤 손님들은 익숙한 발걸음으로 들어와 카운터에 앉은 최성은 실장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눈다. “저번에 추천해주신 음반이 참 좋았어요. 이번에도 좋은 음반 하나 추천해 주세요”. 이런 종류의 대화에서부터 음악가이야기, 악기이야기 등 아니면 사사로운 일상이야기까지. 이러다 보니 한사람과의 대화가 이십분 이상 계속될 때가 많다. 손님과 직원이기 보다는 가족 같은 느낌이다. “여기 실장님 사진도 찍어주세요!”라며 한 손님이 짖꿎은 목소리로 기자에게 소리친다. “아이~ 오늘은 예쁘게 안 꾸며서 안되는데…” 최 실장이 쑥스러운 듯 손사래를 친다.


          "풍월당은 음반을 사고팔기보다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곳입니다 "

▲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실내


풍월당의 음반을 자세히 보면 가격표가 없다. 대신 CD케이스 위에 한 번 더 정성스러운 포장이 되어있다. 팔기위한 상품이기 보단 예술품처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담겨있는 듯하다. 음반에 대한 정성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풍월당은 온라인 판매를 하지 않는다. 음반을 사는 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음반을 만지고 들으며 고르는 재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이런 방침들이 모여 풍월당을 특별하게 만든다.

카운터 뒤편에는 수많은 음반들이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을 붙인 채로 진열돼 있다. 무엇인지 묻자 최 실장이 대답한다. “아, 그건 사고 싶은 음반이 있는데 당장 여건이 안돼서 구매하지 못한 손님들이 음반을 키핑해 두는 곳이에요. 이렇게 이름을 붙여두고 구매하실 수 있는 상황이 되시면 찾아가시라고요.” 문득 저렇게 해도 되나 걱정이 됐다. 저렇게 했는데 안 사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게 단점이긴 해요. 남아있으면 다 재고가 되는 거니까, 그래서 보관 날짜를 정해 놓아요. 저기 맨 위 칸에 있는 것이 가장 오래된 건데 한 달 이상 지난 것들이에요.” 이어 최 실장은 직원들끼린 저 곳을 입원실이라고 부른다며 맨 위 칸은 중환자실 정도 될 거라고 농을 건넸다.

풍월당의 또 다른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풍월채. 풍월채는 풍월당을 이용하는 사람의 소리 놀이터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사실 풍월당에 들어갈 때 매장보다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항상 열려있으며 50석의 자리가 마련돼 손님들이 음악과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풍월당에서 이뤄지는 굵직한 행사들은 모두 풍월채에서 진행된다. 한 달에 6회 정도의 스크린 강의가 열리고 있으며 매주 토요일 오후 세시엔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무료 클래식 음악 영화를 상영한다. 올해 초 부터 시작된 김문경의 말러 전곡 해설회와 모차르트 전곡 오페라 해설회가 12월까지 진행되고 있다. 또 매 달 ‘풍월채 음악회’와 ‘풍월당 영상음악 감상회’가 열린다. 이런 계획들은 모두 음악을 팔기보다는 여러 사람에게 음악을 들려줄 장소를 만들기 위한 풍월지기들의 마음이 담겨있다.

취재를 마치고 그냥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최 실장에게 음반 추천을 요청했다. 플루트가 들어간 연주였으면 좋겠다고 하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음반 하나를 추천해 준다. 집에 돌아와 최 실장이 추천해 준 CD를 틀었다. 플루트와 기타의 음이 발랄하게 조화를 이룬다. 가게에서 느낀 편안함이 생각났다.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진다.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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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j9014@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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