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현답] ⑤정직한 사회를 위하여 I
[우문현답] ⑤정직한 사회를 위하여 I
  •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 승인 2008.10.07 00:00
  • 호수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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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하면 손해보는 사회라던데… 지금 ‘정직’은 앓고 있다

[우문]
제 주변에 ‘순진하진 않되 순수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모토를 가진 꽤 괜찮은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 전 그 사람이 그런 좌우명을 갖고 있던 스스로를 책망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요, 타인을 쉽게 믿고 자신을 정직하게 보여주다 상처를 받은 것 같습니다. 정직해서 손해 보는 사회,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현답]
몇 해 전 어느 신문사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교통질서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였다. 놀랍게도 응답자의 약 80%가 질서를 충실히 지킬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빨간 불에도 그냥 지나가겠다는 것이다. 그 이유가 시사적이다. “내가 지킨다고 다른 사람도 지킬는지 확신할 수 없다. 나만 지키면 나만 손해 아닌가.” 서로 못 믿겠다는 말이다.

대학에 소위 컨닝구라는 시험부정행위 치팅cheating이 만연해 있다. 치팅에 관련하는 사연도 다양하고 동원되는 기술도 각양각색인데 한 때 치팅도 능력이라는 궤변詭辯이 유행할 정도였다. 학기말에 실시되는 강의평가에는 시험 중 삼삼오오 부정행위가 있었는데 교수가 파악하지 못했다고 자신에 끼칠 상대적 불이익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분반하여 시험감독을 철저히 해달라고 한다. 치팅은 부정한 행위임에 틀림이 없는데…

나는 우리 단국대학교에 오기 전에 모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짧게 한 적이 있다. 어느 때 중간시험에 전기공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기과목 시험 감독을 들어갔었다. 또 학교당국이 시험장에서 현재 학생들이 앉아있는 줄을 이리저리 바꾸라고 해서 이리저리 바꿨었다. 사연은 대강 이렇다. 전자는 자기 전공학생들을 상대로 자기 과목을 감독하면 교수학생이 서로 짜서 도울 수 있으니 그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요, 후자는 갑자기 자리를 변경시킴으로써 마련된 여러 가지 치팅 장치를 혼란시켜 무용화한다는 취지다. 당시 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막 돌아와 강단에 섰던 나로서는 대학의 무너진 상호신뢰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성적정정기간에 잘못된 성적은 바로 잡을 수 있다. 그런데 가령 A학점이어야 하는데 B학점으로 되어 있어서 A로 고치려 하는 경우 절차가 간단하지 않다. 변경에 대한 사유서를 써야하고 또, 무엇보다도, 변경을 뒷받침할 자료를 증거로(?) 제시하여야 한다. 말하자면 잘못 기재된 시험답안지라든지 잘못 계산한 성적점수표라든지 아니면 어떤 단순한 착오라도 증명해 보여야 한다. 생각해보면 뭔가 교수를 의심하는 것 같아 꺼림칙하다. 미국의 경우는 조그만 슬립slip에 “언제 누가 수강한 무슨 강좌에서 얻은 학점 B를 A로 고쳐주기 바란다” 정도가 전부다.

나만 의심받는 것이 아니라 나도 상대를 의심한다. 시험감독관 없이 시험 치르게 하고 싶은 욕망은 간절해도 나는 학생을 신뢰하지 못해 감히 시도하지 못한다. 할머니가 아파서 병원에 모시느라 지난 시간에 결석했다 해도 믿기 어렵다. 언니의 결혼식이 있어서 빠졌다고 해도 믿기 어렵다. 이미 와 있었는데 아까 출석 부를 때 잠깐 화장실에 있었다고 해도 역시 믿기 어렵다. 한남동 옛 캠퍼스 부근에 샌드위치점을 운영하는 미국인이 있는데 그의 불평이 불연 기억난다. “여기 파트타임 일하는 대학생들은 무책임해요. 아무 연락 없이 출근을 안 하거나 바로 당일 아침 연락해서 못 온다고 해요. 그리고 그 이유는 할머니가 아프시거나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한국은 왜 그렇게 할머니가 많이 아프고 많이 돌아가세요?”

대학에 언제부턴가 친구의 출석을 대신해주는 대출이 유행이다. 친구의 딱한 사정을 돕는다고 하고, 과거에 친구가 해준 것에 대한 답례라고 하고, 때로는 그냥 심심해서 하기도 한단다. 문제는 그게 뭐 대수냐는 것이다. 그러나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혹 지금 그 대출은 작은 것일지 몰라도 여기서 지속적으로 진화하면 장차 사회에 나가서는 보다 큰 금융 부정대출을 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의 부정한 출석 대출代出이 나중에 부정한 은행 대출貸出이 되는 것이다. “代出에서 貸出까지”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것들은 대학과 관련하여 저질러지는 부정직한 행위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대학을 소공화국이라 하지 않던가. 사회로 눈을 돌리면 정직은 도처에서 광범위하게 앓고 있다. 그것은 다음 주 속편 "정직한 사회를 위하여 II"에서 보자.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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