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생활 속 과학] (50)과학자의 자살
[유레카! 생활 속 과학] (50)과학자의 자살
  •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 승인 2008.10.07 00:16
  • 호수 12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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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최진실의 죽음으로 나는 마치 20년 지기 친구를 잃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예쁘고 얌전하고 연약한 이미지의 여배우들만이 톱스타가 될 수 있었던 1980년대 말, 귀엽고 발랄하고 당찬 이미지로 치고 오른 최진실에게 참신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도 여전히 ‘공주’ 같은 주인공을 고집하는 또래 여배우들과 달리, 최진실은 생활의 냄새가 배인 편안하고 따뜻한 아줌마로 일찌감치 변신했다. 그러나, 자살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지난 20년 동안 그의 겉모습과 실제 모습이 참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누구보다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가 필요한 과학자들 중에도 자살한 사람이 여럿이다. 복사(radiation)를 설명하는 법칙 중 하나인 ‘스테판-볼쯔만 법칙’으로 잘 알려진 루드비히 볼쯔만은 63세가 되던 1906년, 오스트리아의 한 휴양지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볼쯔만이 활동하던 19세기 중반 당시, 돌턴의 원자설이 나온 지 거의 100년이 되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존재를 믿지 않는 과학자들은 여전히 많았다. 이후 원자론자들이 일정 부피에 들어 있는 기체 원자의 수를 정밀하게 계산해 내고, 브라운 운동을 분자 운동 이론으로 해석해 내는 등의 연구 성과를 내자 원자론을 반대하는 과학자들의 목소리는 작아졌다.

원자론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만든 일등 공신 중 한 사람이 통계 물리학의 창시자인 볼쯔만이었고, 이를 극렬하게 반대했던 핵심 인물이 물리학자인 에른스트 마흐였다. 그리 사교적이지 않던 볼쯔만은 평생에 걸쳐 마흐와의 논쟁에 너무 많은 정력을 소비하게 되고, 그로 인해 신경 쇠약과 우울증으로 시달리다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938년, 미국의 유명 화학 회사인 듀퐁은 인공 섬유인 나일론의 발명을 발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석탄과 공기와 물로 만든 섬유’,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질긴 기적의 실’로 나일론을 극찬하는 분위기 속에서 당시 나일론의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나일론 섬유 개발의 주역은 듀퐁사(社) 소속 과학자였던 월러스 캐러더스였다. 그러나, 그는 나일론 발명의 특허 신청을 한 후 3주가 지난 1937년 4월, 작은 호텔방에서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1세에 불과했다.

자살을 선택한 캐러더스는 나일론 발명자로서의 물질적 영화(榮華)를 전혀 누리지 못했다. 그의 업적이 충분히 노벨상 수상감이라는 후대의 평판으로 비추어 볼 때 명예까지도 스스로 포기한 셈이 되었다. 캐러더스의 자살에도 우울증이 있었고, 상사와의 갈등으로 증세가 더 심각해진 상태였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체 소속 과학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마련인 ‘개인적 호기심’과 ‘회사의 요구’ 사이에서 캐러더스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요인이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과학자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볼쯔만의 상대편에 있던 학자들, 캐러더스에게 주어진 회사의 요구, 최진실에 대한 악성 댓글은 모두 우울증에 걸린 상태인 이들이 우울한 기분을 넘어 극단적 선택으로 이르게 한 주변 상황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인생 굽이마다 시련을 견뎌 내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생각할 때, 자살한 사람들의 선택을 옹호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최진실의 자살은 여자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누나로서의 인생을 떠오르게 해 가슴이 자꾸 찡해진다.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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