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묵처방] 익명 제거가 능사는 아니다
[백묵처방] 익명 제거가 능사는 아니다
  • 이호용(법대) 교수
  • 승인 2008.10.14 03:14
  • 호수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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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실 자살 사건으로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거졌습니다. 악성댓글을 막기 위해 인터넷 실명제를 도입하자는 의견과, 실명제 도입이 악성댓글 차단의 효과보다는 자유로운 의견 개진의 장을 축소시키는 단점만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인터넷 실명제에 대한 단국인의 의견은 어떤지, 단대신문이 여러분의 의견을 듣습니다. <편집자 주>

요즘 인터넷에서는 모 탤런트의 자살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 실명제(본인확인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악성 댓글을 막기 위해서는 인터넷실명제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실명제의 도입이 악성댓글을 차단하는 효과보다는 자유로운 의견 개진의 장을 축소시키고 국가에 의한 국민통제만이 강화될 것이라는 반대의견이 그것이다.

사이버테러라고 일컬어지는 악플 문제의 심각성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인터넷 실명제에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익명의 언어폭력과 명예훼손으로부터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는 등 사이버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하고, 비록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가 우려되지만 제한적 본인확인제를 실시한다고 하여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고만은 볼 수 없고, 법령 강화, 기술 개발 등 개인정보 보호 장치 등 대안 마련을 통해 보완점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인터넷실명제를 찬성하는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새로운 법제도를 설정함에 있어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수단으로서 작용하는 법제도는 그 목적을 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을 택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어떤 법익을 보호하기 위해 함부로 다른 법익을 침해하여서는 아니 되고, 부득이한 경우라도 신중한 법익의 형량을 통하여 설정 여부를 결정해야 하며,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더욱 아니 된다.

이 논란의 핵심은 온라인 활동에서의 ‘익명성 보장’의 여부이다. 그런데 온라인 활동에서의 ‘익명성’은 온라인프라이버시보호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가상공간이라는 특수성이 갖는 당연한 성질이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익명 표현이 자유를 판례(Buckley v. American Constitutional Law Foundation., 525 U.S. 182(1999))로서 인정하고 있고, 독일 멀티미디어법(TDDSG)에서는 “서비스제공자는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합리적인 범위내에서 이용자가 익명 또는 가명으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하여 인터넷에서 이용자의 익명성 보호를 서비스제공자의 목표로 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익명표현의 자유가 헌법 제18조의 표현의 자유에 포함되는 것인지에 관한 법리가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못하다. 또 헌법 제18조는 통신의 비밀을 보장하고 있지만, 이 조항에 의해 인터넷 이용자의 익명권이 보장되는지도 불분명하다. 온라인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익명화기술과 암호기술이 개발되고 널리 적용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오히려 익명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 물론, 익명표현의 자유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익명으로 명예훼손을 하거나, 저작권을 침해하거나, 불법정보인 음란물이나 아동포르노를 배포하는 권리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법원들은 “익명은 한번 상실되면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익명표현의 활동이 다른 사람의 명예와 감정, 권리를 침해한다고 해도 그것을 통제하는 방법이 익명을 제거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인터넷 악성 댓글이나 인격을 파괴하는 문제는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자율적인 정화기능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우선 인터넷에 접근하는 기술교육 보다 인터넷윤리교육을 먼저 시켜야 하고, 인터넷포털사업자의 책임도 강화해야 한다. 또 민사법적 책임 법리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온라인 활동이 활발해지면 타인으로부터의 “개인의 감정적 평온에 대한 침해(torts on emotional peace of an individual)”가 종종 발생하는데, 이것을 명예훼손이나 프라이버시 침해와는 구분되는 독립된 보호 법익으로 체계화하는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한편, 신문기사에 따르면 인터넷실명제에 더하여 사이버모욕죄를 신설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문제가 있다. 인터넷상에서의 악의적 허위 정보의 유포는 현행법으로도 얼마든지 처벌이 가능하다. 중복입법은 오히려 국민들의 법준수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또 모욕죄는 최근 비범죄화이론(Decriminalisation)에 따라 폐지하는 것이 세계적인 경향에 있다는 점도 고려하여야 한다.

이호용(법대) 교수
이호용(법대)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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