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생활 속 과학] (51) 노벨 과학상의 꿈
[유레카! 생활 속 과학] (51) 노벨 과학상의 꿈
  •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 승인 2008.10.14 16:55
  • 호수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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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 전에 우리나라 고등 학생들의 수학, 과학 성취도 파악을 위한 국제비교연구를 수행한 적이 있다. 이 연구에는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평가받는 OECD 회원 국가 전체가 참여하여 그 의의를 더했는데, 우리나라 고등 학교 1학년 학생들은 과학에서 1위, 수학에서 2위를 차지했다. 1980년대에 이루어진 수학과 과학 영역의 국제비교연구에서도 우리나라는 늘 세계 최상위권에 들어 있었기에 그다지 새로운 뉴스도 아니었다. 이 연구를 수행하면서 관련 국제 회의에 수차례 참가했는데, 이 회의에는 과학 교육 분야의 세계적 학자들이 여럿 모였다. 이 저명 학자들은 당시 학위를 갓 받은 풋내기 연구원이었던 내게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이유는 하나, 내가 ‘과학 1위’를 차지한 대한민국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관심은 세계 최고의 성적을 올리는 한국의 과학 교육 내용과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 나라 학생들이 선택형 문제 풀이는 기가 막히게 잘한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다른 나라보다 한국의 과학 교육 과정에서 다루는 내용의 폭이 넓고 깊이가 깊어서’, ‘한국 부모의 지대한 교육열 때문에’ 등의 모범 답안으로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대충 마무리하던 참에, 예상 밖의 질문 하나가 들어왔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국 학생들의 과학에 대한 흥미나 관심은 참여국 중 꼴찌에 가깝네요. 왜 이런가요?” 당시 우리는 ‘과학 세계 1위’에 도취되어 교육인적자원부도 언론도 ‘과학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참여국 중 최하위권이라는 또 다른 사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 노벨 화학상, 노벨 생리학-의학상 수상자들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혹시나’ 한국의 과학자가 있나 기대했지만 이번에도 ‘역시나’로 된 것에 대해 다들 허탈해 하는 분위기다. 특히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했던 일본의 과학자들이 대거 노벨상을 수상함으로써 우리의 허탈감은 배가되었다. 역대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의 국적을 살펴보면 반 이상이 미국이고,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스위스, 러시아, 이탈리아, 네덜란드, 덴마크, 오스트리아 등의 유럽 국가가 뒤를 잇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과학 1위’를 차지할 때, 이들 국가의 학생들은 중하위권을 맴돌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들이 과학을 ‘억지로’ 공부하여 과학 문제 풀이의 귀재가 되어가고 있을 때, 이들 국가 학생들은 과학을 ‘재미있게’ 공부하여 노벨이 원한 대로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하는’ 과학자로 성장하고 있다. 물론 이들 국가 학생들이 다 천재적 과학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학교 과학 교육을 통해 과학 학습을 제대로 경험하여 과학의 가치를 인정하고, 가치 있는 활동을 하는 과학자의 서포터스로서 과학의 발전에 한 몫 하는 시민이 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아 우리도 노벨상 수상자 배출 국가로 살짝 발을 들여 놓았으나, 과학자였던 알프레드 노벨이 제정한 노벨상의 꽃은 역시 과학 부문이다. 노벨 과학상 배출을 위해 과학 연구에 대한 물적, 심적 관심과 지원이 가장 시급하고, 무엇보다도 ‘재미있게’, ‘하고 싶어서’ 연구하는 과학자가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겠다. 재미있게 연구하는 과학자와 그 서포터스를 하나라도 더 많이 양성하기 위해서는 초·중등 학교 과학 교육도 달라져야 할 텐데, 우리 과학 교육계의 고민이 하나 더 생겼다.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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