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영혼] ④오가와 신스케, 공간에 귀속되는 응시의 방향
[공간의 영혼] ④오가와 신스케, 공간에 귀속되는 응시의 방향
  • 이원상(도시계획·부동산·05졸) 주택도시연구원
  • 승인 2008.10.14 17:01
  • 호수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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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와 공간 구성은 그만큼 명백하게 선을 그어야만 하는 비열한 균형감의 표현

오가와 신스케는 투쟁의 공간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라 여기며 현장속으로 뛰어들었다

▲올리비아 핫세: 아이러니하지만 공간에서 응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 반드시 적대적인 경계의 대상이 되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공간의 이분은 더욱 강력한 사랑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여기 두 무리의 싸움패가 있다. 그 두 무리는 각자의 영역을 고수하며 상대를 위협한다. 이 대치의 긴장된 공기를 마시는 두 패거리. 당신이 이 두 싸움패를 멀찌감치 떨어져서 바라보고 있다면 당신은 그저 그 공간에서 구경꾼일 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한 패거리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상대를 향하여 응시할 때 당신은 한쪽 패거리에 가담하게 된다. 그 공간은 당신을 편입시키며 당신으로 하여금 그 공간 안에 서 있는 것 자체로 당신을 규정한다. 공간은 그 곳에 선 주체와 함께 게토-영역을 만든다.

1966년 일본 정부는 신국제공항건설계획을 발표한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망을 뒤로 하고 아시아 곳곳의 전쟁 군수기지 역할을 하며 산업성장을 이룬다.(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한 시점부터 1964년 동경올림픽까지의 그 짧은 시간을 생각해보라.) 공간에 국가정책이 반영될 때 그 공간(공항건설 대상지인 산리즈카)은 더 이상 평화로운 은둔의 영지가 될 수 없다. 경제성장의 거대한 진전을 보이며 이에 발맞추어 추진되기 시작한 나리타공항 건설의 규모만 1951년 개항한 하네다공항의 10배에 가까운 규모이며 계획은 국가권력에 의해 강력하게 추진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땅은 불모지가 아니었으며 농민들의 터전이었다. 모든 공간의 문제는 이렇게 상충되는 이해관계에서 시작한다.

약 40여년간 지속된 산리즈카(三里塚) 투쟁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이 싸움은 공간 안에서 모든 주체들로 하여금 시선의 방향을 결정하도록 추동질 하였다. 건설 사업을 위한 정부의 측량이 시작된 1967년, 5000여명의 일본 기동대들이 공간을 점거하고 토착 농민들을 몰아내려는 계획이 추진되었으며 1971년 이욱코 산새들이 지저귀어야할 땅은 울부짖는 시공간으로 변한다. 농민의 편에서 같은 방향을 바라본 수천 명의 학생운동권 집단은 공간 속에서 힘의 균형을 잡아가는 하나의 무리였다. 1971년 투쟁 속에서 기동대 3명이 사망하였고 100여명이 부상당했다. 이에 3배에 달하는 반대쪽 진영의 부상하였으며 수 십명이 연행되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볼 수도 있었던 한 남자, 오가와 신스케. 그는 다큐멘타리스트였다. 오가와 신스케는 투쟁의 공간을 멀리서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투쟁을 관망하거나 심지어 객관화 시킨다는 것 자체가 비겁한 행동이라고 여겼다. 그는 농민들 틈 속으로 카메라를 들고 기어이 들어갔고 농민들이 분뇨를 들고 투쟁할 때 그 틈바구니 속에서 필름을 돌리며 농민의 영역에서 상대의 공간을 질시하며 응시하였다.

그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왜냐하면 공간을 선택한다는 것은 친구를 선택하는 것과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심지어 어머니와 형제를 만드는 과정과 같은 일이다. 왜냐하면 나와 같은 영토에서 사는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매를 맞는 것은 바로 나의 이웃이 매를 맞는 것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면부지의 사람이 나와 같은 고향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경계심을 풀고 금새 친밀감을 표현한다.

공간이라는 것은 이렇듯 사람을 기만할 때가 있다. 우리는 네델란드와 독일이 한국과 일본만큼이나 애증관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공간의 간극은 국경일 수도 있지만 분리된 좌석일 수도 있다. 축구리그의 각 팀별 서포터를 경기 운영자측에서는 결코 같은 공간에 밀어넣지 않는다. 그 철저한 분리와 공간구성은 그만큼 명백하게 선을 그어야만 한숨을 돌리게 하는 비열한 균형감의 표현이다.

▲1978년 나리타 공항 건설반대 투쟁 사진: 한 사람이 화염에 휩쌰여 있다.
공간은 만들어지고 귀속되며 공간 속의 주체들에게 싸움을 걸게 하도록 수동적인 행위자의 역할을 한다. 나리타공항의 계획된 두 개 국제선 활주로 중에서 한 개는 아직도 미완성인 채 남아 있다. 공간은 자기의 자리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가와 신스케와 같은 이들이 그 공간 속으로 걸어들어 가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기동대의 페퍼포그를 함께 마시며 눈물을 흘릴 때 우리가 친구라는 것이 입증되는 것이다. 공간에서 중간자적 입장은 설 곳이 없다. 오가와 신스케는 카메라를 들고 투쟁의 한 쪽에 선 사람들과 연대를 표시하며 투쟁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렇다면 당신의 견해는 무엇인가. 아니 현재 당신이 서 있는 곳은 어디인가.

이원상(도시계획·부동산·05졸)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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