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진심] ⑦『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그는 누구인가?』
[진실과 진심] ⑦『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그는 누구인가?』
  • 박준범, 이동욱 기자
  • 승인 2008.10.14 17:19
  • 호수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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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지루함을 기다려 담아낸 사진들

얼마 전 "매그넘코리아“라는 사진전에 가서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평일임에도 사진기를 둘러맨 연인부터, 방학 맞은 어린이, 중년층들까지 사진을 보는 눈이 진지해 보였다. 매그넘코리아는 세계적인 사진가 그룹 매그넘이 외국인 작가로서 본 한국의 이미지를 각자 나름의 시선으로 펼친 전시회이다.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이 매그넘 사진가 그룹의 한 명으로,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에 일상의 모습을 그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사진가이다. 그렇기에 가장 완벽한 사진, 그것을 찍기 위해 브레송은 기다림이라는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을 계속한다. 셔터를 누르는 동작은 1초면 가능하지만, 그 사진을 구성하는 넓은 공간을 채워 넣기 위해 현실의 일상적인 모습을 예측하고 분석하며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도 길었을 것이다. 그렇게 얻어진 결과물은 웅장하고 대단하고 거창하거나 엽기적인 것이 아닌, 너무나 일상적인 사람들의 살아있는 모습이기에 더욱 더 크게 다가온다.

그의 독특한 양념으로 덧칠해진 사진에 등장한 사람들은 대부분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드는 활동적인 모습으로 구성적인 한 프레임의 요소가 되어있다. 대표적 사진 중 하나인 <셍-라자르 역 뒤, 파리,1932>는 네모난 프레임 안에 직선을 이루는 정적인 배경, 고요함을 깨버리듯 점프하며 움직이는 사람, 그의 동작이 거울처럼 반사되는 물웅덩이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지로서 점이 이어져 선이 되고, 면이 되어 도형을 구성하는 것처럼, 이 사진의 피사체와 배경은 큰 형태로 운동성을 지닌 도형으로 변하여 구성적인 균형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실제 사진 속 물웅덩이로 점프하는 신사가 어떻게 될 것인지 다음 장면에 대해 궁금증을 낳게 한다.

그의 사진이 단지 현실을 전달하는 데 높은 힘을 가진 사진에 머물러 있지 않고, 예술적인 작품으로 평가를 받는 이유는 이런 통제하기 어려운 피사체들과 배경을 그의 생각과 시선으로 구성해 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레송의 사진은 어렵지 않다. 찍고자 하는 대상에 대한 애정과 기다림이면 누구든지 그의 작품처럼 일상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 수 있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에서도 마음속으로 담고 싶었던 것이나, 간직하고 싶은 행복한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겨둔다면 새로운 즐거움으로 다가 올 수 있다. 어떠한 피사체든지 지금 당신의 시선을 사로잡는, 이미지로서 간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브레송처럼 바로 사진기로 찍을 것을 권한다. 폰카, 똑딱이든 그 어느 도구에 개의치 말고.

이동욱 기자 lusche@dankook.ac.kr

일상적 낯익음이 주는 ‘좋은 사진’

“이 사진 어때?”
“글쎄, 잘 모르겠는데?”
“사진부장님이 찍어온 거래. 이번 신문 1면에 쓰일 사진.”
“아...... . 그러고 보니까, 좋네.”

신문사에서 종종 나누는 대화다. 귀가 얇은 성격 탓에, 거기에 사진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없는 탓에 ‘좋은 사진’에 대한 감각이란 거의 없는 편이다. 단지, ‘사진부장이 찍어온 사진은 좋은 사진’이라는 막연한 기준이 있을 뿐이다.

그래도 ‘별로인 사진’에 대한 감각은 있다. 마치 수습기자들의 기사가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 집어내듯, 딱 봤을 때 ‘별로다’라는 느낌이 드는 사진이 있다. 한 편의 글이나 사진을 만들어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지의 느낌. 별 고민 없이 쓴 글, 별 발품 들이지 않고 찍은 사진은 보는 순간 ‘별로다’라는 느낌이 온다. 작가의 고민과 독자의 고민은 반비례하기 때문에, 작가의 고민이 많아지면 그만큼 독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쉽게 작품에 접근할 수 있다.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 - 그는 누구인가?』를 펴면 문득 안정감이 느껴진다. 작가는 분명 독자들이 익숙해할만한 ‘일상’을 찾기 위해 수많은 발품을 팔았을 것이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표정이 굳어지곤 하는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다양한 표정을 잡아내기 위해 한 자리에서 한 시간 이상은 꼼짝도 못한 채 서 있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 일상적 장면 한 컷을 위해서 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샤론의 희생자 장례식, 파리 1962’라는 제목의 사진을 보면 굳이 제목을 보지 않고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만 보더라도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감정인지를 잡아낼 수 있을 것 같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고 입술을 일그러트리는 모습에서 절절한 슬픔이 느껴진다. 그 정도면 ‘장례식’이라는 제목을 붙여주지 않아도 사진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다. 나 역시 한번쯤은 누군가의 장례식에서 비슷한 표정을 지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한장 한장 넘길수록 익숙함과 안정감에 편안해지는 책. ‘내 이야기’들이 있어 공감 가능한 ‘좋은 사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박준범 기자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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