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끊기지 않는 그곳] ④지대방
[발길 끊기지 않는 그곳] ④지대방
  • 김은희 기자
  • 승인 2008.10.14 17:43
  • 호수 1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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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인사동) 속에 고즈넉히 자리한 산사(山寺)의 정취
삶에 지친 그대여, 이곳에서 편히 쉬어라

이번 호에서는 전통의 거리 인사동에 위치한 전통찻집 ‘지대방’을 찾았다. 산사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휴식도 취하는 공간을 가리키는 ‘지대방’. 하동군에 있는 다원에서 직접 딴 녹차 잎으로 우려낸 전통차를 마시며 그곳의 향기에 빠져들었다. <편집자 주>

향기로운 전통차 한잔 마시며
현각(하버드 출신 미국인) 스님이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 집필로 유명한 곳

인사동 골목에 고즈넉히 자리한 '지대방'.
일본인, 중국인, 한국인 할 것 없이 한데 섞여 물 흐르듯 흘러가는 분주한 인사동 거리. 잔잔한 가야금 선율이 들리는,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정겨운 공간을 쫓아 발길을 움직이다보니 인사동 한 편에 ‘절의 큰방 머리에 있는 작은 방으로 이부자리, 옷 또는 지대 따위를 두는 곳’을 뜻하는 ‘지대방’이라는 예쁜 한글 이름을 가진 전통찻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많은 가게들 틈에서 요란스럽게 튀지도 않고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그곳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좁은 계단을 밟고 2층 위로 올라서자 흔히 콩다방, 별다방이라 불리우는 요즘 카페들 입구를 떡하고 버티는 흔하디 흔한 유리문이 아니라, 아주 먼 옛날 태어나지도 않았던 그 시절에 대한 설명할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정겨운 사립문이 나타났다. 문이 활짝 열린 찻집 안에서는 은은한 가야금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잔잔한 가게의 불빛이 문 밖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찻집 안으로 몸을 들이니 독특한 향기가 몸을 감쌌다. 전통 쌍화차의 향은 우리가 그동안 만난 가벼운 그것과는 달랐다. 깊고 진하고 그러면서도 부담스럽지 않고 은은했다.

가게 곳곳에 화가의 개성이 듬뿍 담긴, 소나무, 대나무 등의 그림을 담은 액자들이 걸려있었고, 지대방이라는 이름답게 불교적 색채가 강한 소품들이 이곳저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삐거덕거리는 짙은 고동색의 나무 마루를 밟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옮겨 무거운 느낌의 나무 탁자를 앞에 두고 흙색의 소파 위에 앉았다. 가게를 빙 둘러보다가 천장에 매달린 등불에 눈이 멈췄다. 불그스름한 전구불빛이 손으로 직접 만든 둥그런 한지 천장등을 은은하게 투과하는 데, 그것이 제법 멋스러웠다.

황토방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황토빛 가게 안에서 이곳을 다녀간 여러 사람들의 자취와 추억을 만날 수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생떼같은 친구놈과 같이라 조금 섭하지만 너무 좋군.’ 장난끼 가득한 투정 같은 ‘섭하다’는 말보다 ‘너무 좋다’는 말이 더 와 닿은 낙서 한 개가 “친구와 함께여 더 좋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우리우정변치말자’는 훈훈한 친구간 다짐의 낙서에서부터 ‘영희♡철수’와 같은 어린애 장난 같은 커플의 애정 가득한 낙서에 이르기까지 지대방 벽은 수많은 사람들이 남긴 다양한 추억들로 가득했다. 세월의 때를 간직한 찻집의 벽은 그렇게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1982년 2월 전통찻집 지대방이 이곳에 처음 문을 열었다. 올해로 27년째다. 지대방 이종국(48) 사장은 27년 전 우연히 전통차를 만났고, 순식간에 그 매력에 빠져 이곳에 전통찻집을 차리게 됐다고 한다. 지대방은 하버드 출신 미국인인 현각스님이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책을 집필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름이 ‘지대방’인 만큼 스님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

죽통 위에 돌아가며 손으로 쓴 독특한 메뉴판을 읽다보니 ‘지대방에서는 인스턴트 차를 취급하지 않으며 전국의 산과 들에서 채취하거나 수매하여, 정성으로 차를 만듭니다’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지대방의 녹차는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에 있는 지대방 다원에서 직접 기른 찻잎들로 우려낸 것이란다. 매화꽃잎차, 매실차, 모과차 등은 다원 근처 지리산 자락에서 채취해 만들었다.

우전은 봄에 가장 먼저 나온 어린 녹차 잎을 뜻한다. 3월 초에 우전과 매화꽃을 채취하고, 3월 중순에 쑥차를 만들 어린 쑥을 채취한다. 우전이 24절기 중 봄의 마지막 절기인 곡우 전에 딴 것이라면 그다음으로 채취하는 세작은 곡우에서부터 입하 때까지 채취하는 것으로 우전보다 조금 큰 녹차 잎을 가리킨다. 5월 초 이후 세작보다 더 큰 잎인 중작을 채취하고 6월 쯤 매실을 딴다. 중작 딸 때쯤에는 녹차를 발효한 황차를 만들고 이때 감잎, 생강나무잎, 산뽕잎을 채취한다고 한다.

가을에는 쑥꽃이 피는데 이게 차로 만들면 맛과 향이 좋고 건강에도 좋단다. 쑥꽃이 필 때쯤이면 국화꽃도 예쁘게 핀다. 이때 국화꽃잎차를 만들기 위해 국화꽃도 채취한다. 10월 하순이나 11월 초에는 노르스름하고 탐스러운 모과가 열리는데 이것을 따서 얇게 저며 꿀에 재워두면 맛있는 모과차가 된다. 중간중간에 감이나 유자와 같은, 과일이나 약초를 따놓기도 한다. 지대방의 전통차들은 모두 이렇게 자연과 계절의 흐름 속에서 정성껏 만들어진다.

황차는 부드럽고 목 넘김이 특히 좋다. 맛이 구수하고 발효가 된 까닭에 향에도 깊이가 있다. 쑥차는 향이 특히 좋으며 달짝지근했던 황차와 달리 독특한 맛이 난다. 매화꽃잎을 뜨거운 물에 올리니 봉오리가 터지면서 조그만 매화꽃이 소담스럽게 핀다. 찻잔 위에 세네 개 띄었을 뿐인데 맑고 풍부한 매화향이 금세 향긋하게 와 닿는다.

쌍화차 향기를 따라 가보니 1년 전 지대방에 처음 온 이후 자주 이곳을 찾는다는 지대방 단골 이여진(40)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이여진 씨는 “인사동 찻집은 거의 다 가봤는데 이 집이 제일 좋다”며 지대방은 누구를 데려와도 자신 있는 곳이라 소개하고 이어 “약속 장소를 고르라고 하면 당연히 이리로 온다”고 말했다. 또 “녹차 중에서는 세작을 좋아하고 피곤할 때는 쌍화차를 마시는데 맛이 진하고 진짜 약이 되는 것 같은 차”라며 기자에게 추천해주었다. 가장 좋아하는 음료에 대해 묻자 “솔잎주를 좋아하는데 지대방 솔잎주는 직접 지리산 자락에서 채취한 자연솔로 담가, 좋은 약술을 마시는 느낌을 준다”고 설명했다.

지대방에서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다보면 어느덧 자연에 와있는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몸에 좋은 전통차답게 빈속에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으며 그 기운이 온 몸으로 퍼지고 향이 코끝에 걸리면 스트레스는 어느덧 날아가고 심신이 편안해진다. 매화꽃잎차를 다 마시고 아쉬운 마음으로 지대방을 나섰다. 입 안을 맴도는 달달한 차 맛이 발걸음을 자꾸만 뒤로 잡아당긴다.

김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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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morikam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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