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다니는 대한민국 국적의 남자들에게 ‘발 길 끊기지 않는 그 곳’이라기 보다는 ‘발 길 끊을 수 없는 그 곳’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명소(?)가 있다. 1년에 한 번은 꼭 가야 하는 예비군 훈련장이 그 곳이다. 우리대학 학생의 절반이 찾을 수밖에 없는 곳, 172연대 3대대 예비군 훈련장을 <단대신문>이 찾았다. <편집자 주>
#1. 어떤 그리움
5년을 입었던 군복인데 여전히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과는 다른 ‘중사’라는 어색한 계급장이 달려 있는 군복에, 어색함을 더욱 강조해 주는 ‘취재용 디지털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예비군 훈련장으로 향한다. 죽전캠퍼스 단국인의 30%가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발길 끊기지 않는’ 172연대 3대대로 말이다. 감각은 공간의 추억을 부른다. 특유의 약품 냄새 나는 군복에 아직도 부자연스런 전투화를 신고 있으니 ‘군대’라는 공간에서 울고 웃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부모님·친구들과 이별하던 입영 순간의 아쉬움, 첫 편지의 두근거림, 바로 옆 침낭에서 숨죽여 흐느끼던 후임병의 울음들이 하나 둘씩 떠올랐다.
#2. Nobody
위병소에 도착하며 생각난 예비군의 철칙 하나. 절대 튀면 안 된다. ‘군중 속의 Nobody’가 되기 위한 예비군들의 노력이 엿보이는 입소 현장이 추억에 빠져 있던 나를 현실로 불러왔다. ‘그래그래, 일단 군복 상의가 바지 밖으로 나와 있어야 한다. 혹시라도 단정한 모습을 한다면, 군중 속의 안락함을 즐기기 힘든 거다.’ 모두가 공유하고 있을 ‘어떤 그리움들’은 이렇듯 ‘적당히 흐트러져야 한다’는 현실의 분위기 앞에 일단 접어두게 되었다.
이들에게 예비군 개개인은 ‘대학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 대학은 ‘어떤 대학’으로 기억될까? 봉사활동을 온 것도 아니고, 학교의 이름을 건 경쟁을 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닌, 즉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이 없는 장소의 단국대학은 어떤 모습일까.
#3. 눈 먼 자들의 도시
갑자기 예비군 훈련장이 ‘눈 먼 자들의 도시’라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도 나를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과연 나는 얼마나 도덕적일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는 소설의 가정과 비슷한 상황이다. 살면서 단 하루 만나는 사람들, ‘나’라는 개인에 대한 기억보다는 ‘단국대’라는 학교 이름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오늘 입소자들은 얼마나 좋은(또는 나쁜) 인상을 남기게 될까?
#4. 개구리의 올챙이 시절 회상
웃음이 다시 추억을 불러왔다. 이번엔 입소식 후 구급법 및 화생방 시범식 교육을 받기 위해 야외로 나간 예비군들이 조교에게 농을 쳤다. “조교야, 나도 예비군 조교 출신인데, 하기 싫은 거 다 알어∼” “우아, 조교 얼굴 빨개지네∼” 농담을 들은 조교의 얼굴이 빨개졌다. 혹시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을까. 교육이 끝난 후 분대장 조교에게 넌지시 물었다.
‘사격과 기동훈련’ 교장. 평소 훈련 같으면 가장 많은 운동량 때문에 예비군들의 ‘꾀병’이 속출하는 곳이지만, 이 날만은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약진 앞으로!”라는 분대장의 명령하달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재학생들이 즉석에서 연출하는 ‘실제 전장 상황(?)’이 펼쳐지면서 훈련장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단국대학을 발길 끊지 않고 계속 와줬으면 하는 손님으로 생각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5. 세잎 클로버
“가수 강원래의 소망은 똥 한번 시원하게 누어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들이 정말 평범하게 겪는 ‘일상’이 어떤 사람에게는 ‘소망’이 되기도 하는 거죠.” 퇴소식을 마치고 무기 반납을 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던 예비군들에게 하상원 대대장이 한 말이다. 네잎 클로버(행운)를 찾으려다 오히려 세잎 클로버(행복)를 놓치듯, 너무 거창한 행운만을 쫓다보면 일상의 행복을 간과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루 내내 조교들과 공유했던 군생활의 추억들이 생각났다. 강원래의 소박한 소망처럼, 지금 군대에 있는 동생(조교)들도 아주 소박한 소망이 있을 것이다.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울거나 웃고 싶은 소망, 늦잠자고 싶은 소망, 10시 넘어서 TV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싶은 소망 등등. 참 별 것 아닌 일상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리고 똑같은 경험을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지금의 일상’이 행운이라 생각하고 예비군 훈련장을 뒤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