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었던 군대 시절의 추억이 있어 일상의 행복을 느끼게 된다
힘들었던 군대 시절의 추억이 있어 일상의 행복을 느끼게 된다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8.11.11 19:46
  • 호수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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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 끊을 수 없는 남자들만의 숨결이 느껴지는 ‘그 곳’, 예비군 훈련장

대학을 다니는 대한민국 국적의 남자들에게 ‘발 길 끊기지 않는 그 곳’이라기 보다는 ‘발 길 끊을 수 없는 그 곳’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명소(?)가 있다. 1년에 한 번은 꼭 가야 하는 예비군 훈련장이 그 곳이다. 우리대학 학생의 절반이 찾을 수밖에 없는 곳, 172연대 3대대 예비군 훈련장을 <단대신문>이 찾았다. <편집자 주>

#1. 어떤 그리움
5년을 입었던 군복인데 여전히 어색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과는 다른 ‘중사’라는 어색한 계급장이 달려 있는 군복에, 어색함을 더욱 강조해 주는 ‘취재용 디지털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예비군 훈련장으로 향한다. 죽전캠퍼스 단국인의 30%가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발길 끊기지 않는’ 172연대 3대대로 말이다. 감각은 공간의 추억을 부른다. 특유의 약품 냄새 나는 군복에 아직도 부자연스런 전투화를 신고 있으니 ‘군대’라는 공간에서 울고 웃었던 추억이 떠올랐다. 부모님·친구들과 이별하던 입영 순간의 아쉬움, 첫 편지의 두근거림, 바로 옆 침낭에서 숨죽여 흐느끼던 후임병의 울음들이 하나 둘씩 떠올랐다.

#2. Nobody
위병소에 도착하며 생각난 예비군의 철칙 하나. 절대 튀면 안 된다. ‘군중 속의 Nobody’가 되기 위한 예비군들의 노력이 엿보이는 입소 현장이 추억에 빠져 있던 나를 현실로 불러왔다. ‘그래그래, 일단 군복 상의가 바지 밖으로 나와 있어야 한다. 혹시라도 단정한 모습을 한다면, 군중 속의 안락함을 즐기기 힘든 거다.’ 모두가 공유하고 있을 ‘어떤 그리움들’은 이렇듯 ‘적당히 흐트러져야 한다’는 현실의 분위기 앞에 일단 접어두게 되었다.

▲ This is '예비군'.
“아무리 풀어진 ‘예비군’이라고 해도 자기가 속한 대학의 소속감만 있다면 아무렇게나 행동하지 못하게 됩니다.” 입소식 현장을 바라보던 이관호 예비군 훈련 과장이 대학마다 다른 훈련 분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 대학의 예비군들을 훈련시키며 느끼는 것은, 모교에 대한 자부심이 높을수록 훈련장의 분위기도 좋아진다는 것이죠.” 사격술 예비 훈련 조교인 김우현 병장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대학마다 훈련장에서 보여주는 ‘특성’이 있고, 이런 특성들 때문에 조교들끼리도 좋아하는 대학과 싫어하는 대학이 나뉜다는 것.

이들에게 예비군 개개인은 ‘대학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 대학은 ‘어떤 대학’으로 기억될까? 봉사활동을 온 것도 아니고, 학교의 이름을 건 경쟁을 하기 위해 온 것도 아닌, 즉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이 없는 장소의 단국대학은 어떤 모습일까.

#3. 눈 먼 자들의 도시
갑자기 예비군 훈련장이 ‘눈 먼 자들의 도시’라는 기분이 들었다. ‘누구도 나를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과연 나는 얼마나 도덕적일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지는 소설의 가정과 비슷한 상황이다. 살면서 단 하루 만나는 사람들, ‘나’라는 개인에 대한 기억보다는 ‘단국대’라는 학교 이름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오늘 입소자들은 얼마나 좋은(또는 나쁜) 인상을 남기게 될까?

▲ 입소식 현장.
“충성! 신고합니다. 병장 안상필 외 582명은…” 입소식 풍경은 여전히 ‘웅성웅성 우왕좌왕’이다. 평균 훈련인원인 450명보다 100명 이상 많은 583명이 입소한 이날의 예비군들이 제대로 통제되기는 힘들었다. 마침 “예비군들 훈련 중에 혹시라도 아프거나 몸 상태가 좋지 않으면 언제든 저를 찾아 오십시요”라며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통제 간부에게 훈련생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여러분, 박수 치지 말고 그냥 통제만 잘 따라주세요”라고 받아치는 교관. 환호와 박수, 그리고 웃음으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이 느껴졌다.

#4. 개구리의 올챙이 시절 회상
웃음이 다시 추억을 불러왔다. 이번엔 입소식 후 구급법 및 화생방 시범식 교육을 받기 위해 야외로 나간 예비군들이 조교에게 농을 쳤다. “조교야, 나도 예비군 조교 출신인데, 하기 싫은 거 다 알어∼” “우아, 조교 얼굴 빨개지네∼” 농담을 들은 조교의 얼굴이 빨개졌다. 혹시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을까. 교육이 끝난 후 분대장 조교에게 넌지시 물었다.

▲ 사격술 예비훈련(P.R.I.)을 받고 있는 예비군들.
“이건 오히려 고마운 겁니다. 사실 저렇게라도 웃음을 주시면서 교육 분위기 띄워 주시는 분들이 가장 고마운 분들입니다”라며 그동안 만났던 예비군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휴식 시간이나 교장 이동 중에 말 걸어주는 훈련생들, 그 중에서도 ‘힘든 거 다 안다’며 공감해 주는 사람들, 특히 장래 진로상담까지 해 주던 형 같은 예비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웃는다. 개구리와 올챙이가 공유하는 추억이 ‘아무나(Nobody)'가 될 수 있는 장소에서 ‘좋은사람’, ‘좋은 대학’으로 기억되는 끈이 되고 있었다.
▲ 사격과 기동 훈련 교장에서.
엄한 분위기의 사격장에서도 조교와 예비군간의 추억 공유가 이어졌다. 사격을 하던 신현석(언론영상·4) 군의 방탄헬멧이 흔들려서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자 조교가 뒤에서 헬멧을 잡아 고정시켜 준 것. 사격 중 고맙고 미안한 마음에 “조교, 잡아주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했더니 조교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선배님, 저한테는 (선배님의 사격 결과보다) 탄피가 더 중요합니다.” 야간 사격 중 탄피 하나 잃어버려서 고참들 눈치 보며 사격장을 뒤졌던 기억이, 사격훈련 끝나고 내무반에 들어와 혼났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웃지 못 할 공감대를 형성했다.

▲ "분대, 약진 앞으로!"
‘사격과 기동훈련’ 교장. 평소 훈련 같으면 가장 많은 운동량 때문에 예비군들의 ‘꾀병’이 속출하는 곳이지만, 이 날만은 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약진 앞으로!”라는 분대장의 명령하달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재학생들이 즉석에서 연출하는 ‘실제 전장 상황(?)’이 펼쳐지면서 훈련장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정도면 단국대학을 발길 끊지 않고 계속 와줬으면 하는 손님으로 생각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5. 세잎 클로버
“가수 강원래의 소망은 똥 한번 시원하게 누어 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남들이 정말 평범하게 겪는 ‘일상’이 어떤 사람에게는 ‘소망’이 되기도 하는 거죠.” 퇴소식을 마치고 무기 반납을 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던 예비군들에게 하상원 대대장이 한 말이다. 네잎 클로버(행운)를 찾으려다 오히려 세잎 클로버(행복)를 놓치듯, 너무 거창한 행운만을 쫓다보면 일상의 행복을 간과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루 내내 조교들과 공유했던 군생활의 추억들이 생각났다. 강원래의 소박한 소망처럼, 지금 군대에 있는 동생(조교)들도 아주 소박한 소망이 있을 것이다.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울거나 웃고 싶은 소망, 늦잠자고 싶은 소망, 10시 넘어서 TV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싶은 소망 등등. 참 별 것 아닌 일상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그리고 똑같은 경험을 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지금의 일상’이 행운이라 생각하고 예비군 훈련장을 뒤로 한다.

박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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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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