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공존공영
⑧ 공존공영
  • 황필홍 문과대 교수
  • 승인 2008.11.11 17:19
  • 호수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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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현답 이견·이종·이질을 아우를 수 있어야

 [우문] 공종공영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현답] 자유개인주의 사회는 개개인이 다름을 원천적인 것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서로 이질적인 것이 공존하기 쉽다. 그러나 집단공동체주의 사회에서는 구성원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상적이어서 이질적인 것은 같이 共存共榮하기 어렵다. 공동체주의자들이 “함께” “더불어” “서로서로” 따위에 더 익숙할 것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끼리끼리” 안에서 통하는 얘기지 “낯선” 만남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이치다. 나는 한글전용주의자와 영어공용주의자가 왜 우리사회에서 공생할 수 없는지 궁금하다.

나아가 한글, 영어뿐만이아니라 한자도 우리사회에서 우리말로 공존공영 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현실은 한글은 가고 영어만 활개 치는 세상이 된 것 같은 분위기다. 여관이라는 말은 지고 모텔이 떴다. 목욕탕이라는 단어도 이제는 거의 死語 수준이 되어간다. 사우나가 대신하고 있다. 한옥 대신 아파트가, 한복 대신 양복이 들어선 것은 아주 오래 된 일이다. 단군기원이던 檀紀도 서력기원인 西紀에 밀려서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다.

학교 주위에서는 카페나 커피숍이라고 하지 않고 다방이라 하거나, 캠퍼스라고 하지 않고 교정이라고 하면 의사가 거의 불통하지 않을까 염려스러울 지경이다. 곰곰이 생각해봐도 한글 대신 영어가 여관 대신 모텔이 목욕탕 대신 사우나가 한옥 대신 아파트가 한복 대신 양복이 단기 대신 서기가 다방대신 카페가 교정대신 캠퍼스가 일방으로 대체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간 그런 표현들에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은데….

그렇다보니 결국 별 생각 없이 Fancy로 그냥 좋아서 남 따라서 이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는지 하는 몹쓸 自歎에 이르게 된다. 아니면 거기에 분명 곡절이 있는 것인가. 몇 해 전 국회에서는 순 한글로 바꿔야 한다고 한자로 쓰여 있는 명패를 의원들이 집어던지는 소위 퍼포먼스를 해서 화제가 되었다. 요사이 몇 년 사이로 시내 주요 은행들은 다 영어로 이름을 바꿨다. 느닷없이 Hana Bank가 등장하고 KB국민은행과 SC제일은행이 생기더니 NH농협도 있더라. 또 모 대학에서는 앞으로는 대학 강의를 100% 영어로만 진행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왜 들 이러는가. 명패를 자기 취향 따라 한글도 한자도 쓰면 안 될까, 은행도 은행 따라서 한글이름도 한자이름도 영어이름도 쓰면 안 될까, 또 대학 강의는 강좌 성격과 취지에 비추어 한글강의도 중국어강의도 영어강의도 일어강의도 독어강의도 불어강의도 스페인어강의도 희랍어강의도 다양하게 이루어지면 정말로 안 되겠는가.

어느 기독교 개신교 목사가 불교를 믿는 사회는 가난하다고 했다. 불교가 邪敎라는 위인도 있었다. 육체의 건강보다는 정신의 건강과 행복을 강조하는 사람이 물질적 가난을 흉잡는다는 것이 못마땅하다. 나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성적으로 금욕도 지켜야하고 육식마저 금하는 고행에 버금가는 불교수도승의 길이 더 험난하고 더 존경스러워만 보인다. 우리가 이토록 이견과 다양성에 유난히도 인색한 이유는 뭘까. 우리의 뿌리 깊은 배타적 집단공동체주의의 체질 때문은 아닐까.

아니면 과거 우리의 굴곡의 역사를 들먹이는 게 싫어서 구태적인 것은 죄다 떨쳐버리고 싶어서 일까. 이웃 일본을 보면 일어에 여전히 한자도 병용한다. 물론 서기를 쓰지만 平成이라는 천황의 연호도 흔히들 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전통 옷 기모노도 동경에 가 봤더니 눈에 띠게 많이들 입더라. 나는 찌든 공동체주의가 가지는 악폐는, 의도했거나 의도하지 않았거나, 공동체 중심의 독단적 확신이 자초하는 폐쇄성, 비실리성, 비외교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異見을 가진 상대를 인정하고, 異種을 존중하는, 그리고 異質을 아우르는 그래서 함께 더불어 공존공영 하는 길을 모색하는 융통적 신공동체주의가 요청된다. 그 건설은 가능하다.

황필홍 문과대 교수
황필홍 문과대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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