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도착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인포위큰’이 시작됐다. 이는 CICD에 관심 있는 친구들과 새로 등록한 친구들을 위해 학교에서 매달 마련하는 1박 2일짜리 행사다. 신입생인 나 역시 인포위큰에 참여하게 됐다. 덕분에 이태리, 프랑스 등지에서 온 친구들을 덤으로 사귈 수 있었다.
아시아 친구들은 거리상 영국 학교에서 열리는 인포위큰에 참여하기 힘들다. 따라서 나처럼 이미 등록한 후 학교에 와서 인포미팅에 참여하는 식이다. 이 기간을 통해 학교에 대해 좀 더 깊은 정보를 얻은 후,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개인미팅 후 학교를 떠날 수 있다. 철저하면서도 개방적인 시스템에 나는 짧고 굵게 감탄했다.
커피 타임, 이 때 미처 인사를 나누지 못한 키가 크고 금발인 남자아이가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가 건넨 첫 인사는 “헬로, 코리안”. 서양 친구들은 일본인과 한국인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편인데, 그는 내가 한국인처럼 생겼기에 코리안이라고 부른 것뿐이라며 멋쩍게 웃었다. 루마니아에서 왔다는 이 친구 이름은 ‘세르반’. 우연은 재밌게도 인연을 만든다. 이를 계기로 나는 그와 인포위큰 내내 붙어 다녔다.
딱딱하게만 진행되는 것 같던 미팅도 저녁이 되니 유연해졌다. 식사 후, 모든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다이닝홀에 모였다. 선생님 한 분이 기타를 들었고 우린 나눠준 종이를 받아 들고 지나간 가요를 불렀다. 모두 열심히 따라 부르는데 세르반은 종이에 담뱃잎을 넣어 말고 있었다. 왜 같이 부르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는 “그냥”이라고 했다. 나는 그가 이 따뜻한 분위기를 멋쩍어하고 있음을 느껴 살짝 웃고 말았다.
지난밤, 세르반은 내게 학교에 남을지 어쩔지 모르겠다며 불길한 신호를 보냈었다. 설마설마 했는데 그는 미팅 후 내게 떠나기로 결정했다며 미안하다고 했다. 지난 밤 서로의 가족사진을 보여줄 만큼 친해졌는데, 그런 그가 떠난다니 아쉬운 게 당연했다. “keep in touch!”를 수없이 외친 그는 포옹과 함께 메일주소가 적힌 종이를 쥐어주고 떠났다. 아쉬운 맘을 달랠 겨를도 없이 찾아온 개인면담 시간, 선생님이 물었다. 학교에 남고 싶은지 떠나고 싶은지.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잠시 당황했지만, 곧 평정을 되찾고 “남고 싶다”고 답했다. 나는 이곳이 맘에 들었다. 좋은 친구들과 내 가능성을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들이 있기에. 중요한 서류에 도장을 찍고 나온 듯 시원섭섭한 기분. 미팅이 끝나고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이날따라 유독 햇빛이 강했다. 그 사이로 잠시 세르반 얼굴이 겹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