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영혼 ⑦
공간의 영혼 ⑦
  • 이원상(도시계획·부동산·05졸) 동문
  • 승인 2008.11.17 20:00
  • 호수 12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Music Space-심상과 사회적 파장의 물결

공산당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Brat'ya Karamazovy), 이방인(異邦人)은 더 이상 젊은이들의 감성을 대변하지 않는다. 이 시대 젊은이의 감수성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젊은이들의 필수품 MP3 플레이어의 저장 폴더 리스트에 나타나 있다. 우리는 이 젊은 감수성의 리스트를 통해서 심상의 공간과 조우할 수 있다. 때로 그 공간은 사회적인 색채를 갖기도 한다.

장면 하나 : 1960년대 후반, 일본. 연인의 자살과 그 초라한 장례식을 몰래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대학 2학년 와타나베의 심정은 괴롭기 그지없다. “그렇지만 나로선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그건 정말 너무 쓸쓸한 장례식이었죠. 사람은 그렇게 죽는 게 아녜요.” 와타나베의 친구인 중년여성 레이코는 와타나베와 죽은 연인을 위해 기타 연주를 시작한다. 이제 그들만의 특별한 장례식의 첫 곡이 시작된 것이다.

헨리 맨시니의 ‘디어 하트’를 시작으로 쉰 한 곡 째인 바흐의 ‘푸가’까지. 레이코는 ‘이젠 쓸쓸한 장례식 같은 건 깨끗이 잊어버려’하고 말한다. 와타나베는 고개를 끄덕인다.(Norwegian Wood, 무라카미 하루키) 이번 원고를 준비하면서 내 청춘의 음악들을 줄기차게 들어보았다. 확실히 청춘의 음악에는 짙은 심상의 공간과 함께 사회적 시공간의 이중 파장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짙은 심상의 공간이란 우리 기억 속에 깊이 자리 잡은 특정한 시간, 특정한 공간을 지칭한다. 그 곳의 정서는 노스텔지어이며 그 감성은 센티멘털리즘이다.

▲ A Polaroid of Kurt: 커트 코베인은 1990년대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다. 고교 그룹사운드의 오프닝 곡이 명반 Nevermind의 Come as you are일 정도였다. '건즈 앤 로지즈'같은 디럭스 비즈니스를 하는 그룹과는 차별화된 말 그대로 얼터너티브였다.
# 짙은 심상의 공간 : 장례식이 있기 2년 전쯤 와타나베는 그의 연인과 함께 ‘너무 넓어서 아무리 걸어도 끝이 없는’ 동경의 거리를 정처 없이 마냥 걸었다. 고개를 오르고 냇물을 건너고, 선로를 넘으며 그 동경의 곳곳을 말없이 걸어갔다. 이것은 그들의 연애방식이었고 그들이 동일하게 간직한 슬픈 사연의 내밀한 기념의식이기도 했다. 그러니까 동경의 작은 레코드점과 신사모를 쓴 교통신호등, 학교명을 알려주는 표지판과 명물이 된 키치적 공간 좌표들, 그리고 소소한 생활의 풍경이 그들에게는 그대로 기억 속에 새겨져 20세의 심상이 되고 심상은 그대로 물리적 공간 안에서 각인된다.

# 사회적 시공간 : 이 작품의 배경은 1952년의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동시에 체결된 안보조약과 학생반대운동의 거대한 사회적 흐름 속에 태동한 전학공투회의(全學共鬪會議)의 혁명적 투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당시의 청춘들은 바로 그와 같은 시대적 상황을 떠올리며 이 대목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공간은 그 자체로서 탈주하는 성장통의 제의(祭儀)적 제단이 된다. 이 공간으로 우리를 호명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음악이 가지고 있는 시공성이다. 음악은 우리를 특정한 시간과 장소로 호명하고 그곳에서의 대화와 찰나적 순간을 영원히 가슴에 새기도록 만든다.

음악의 사회적 공간에 대한 타격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흑인인 지미 핸드릭스(James Hendrix)가 1967년 6월에 개최된 몬터러이 팝페스티발(Monterey International Pop Festival)에서 두 명의 백인과 함께 연주하는 파격(당시에는 인종차별적 사회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음)을 연출하며 자신의 기타에 기름을 붓고 불태웠을 때 그것은 시대에 대한 확실한 얼터너티브였다. 우리나라의 사회학자 그룹이 신세대론을 집필하게끔 한 동력 중 하나가 바로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앨범(1992)이었다.

▲ 생드니 외곽(Paris, Je T'Aime의 한 에피소드, 2006)-Natalie Portman: "네 노래와 네 희망을 들어줬지. 너의 갈망도. 난 네 음악을 들었고, 넌 내 음악을 들었어. 그러던 어느 날, 넌 내게 키스를 했어. 시간이 흘렀고, 빠르게 지나갔지."
서태지와 아이들이 몸소 청소년 팝 음악과 문화 트랜드 지형의 지축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밥 딜런의 음악과 사회적 반향은 한국의 70년대 포크그룹과 청춘의 자화상, 그리고 독재정권의 암담한 시대적 상황과 맥을 같이 한다. 음악이 특별히 개인과 사회적 공간과 조우하는 것은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특정한 기억과 추억을 넘어서는 측면이 있다.

그것은 음악 자체의 힘이기도 하며 음악의 배경을 뒷받침하는 공간적 상황의 반영 때문이다. 대양의 심연이 제아무리 까마득하다 하여도 연애감정을 처음 가진 중학생 여린 마음의 심연과는 비교할 수 없는 법이다. 까까머리 학창시절 삼성 마이마이 카세트플레이어의 리스트는 나를 그 시절, 그 장소로 데리고 간다. 거기엔 어떤 날카로움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