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맛대로 보라 ⑩ 연극 <사기꾼들>(부제: 新 살아보고 결혼하자)
네 맛대로 보라 ⑩ 연극 <사기꾼들>(부제: 新 살아보고 결혼하자)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8.11.17 08:59
  • 호수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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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향적인 ‘도로’의 논리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길’의 논리 깨달아

이번 주 ‘네 맛대로 보라’는 연극 <사기꾼들>에 대한 기자의 리뷰입니다. 이상은의 ‘언젠가는’의 노랫말을 생각나게 하는 <사기꾼들>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편집자 주>

나이가 들수록 사용하는 ‘가면’이 많아진다. 접하는 사람의 종류와 집단이 다양해지면서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또는 ‘여기서는 이런 모습으로’라는 식의 계산이 생긴다. 가면의 개수가 많은 것이 마치 ‘어른’인 양, 어느 자리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임기응변의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능수능란한 셈법이 늘어난다.

이렇게 사용할 줄 아는 가면이 늘어나면서 과거 맹목적이었던 만남(또는 사랑)들을 후회하게 된다. ‘조금만 덜 좋아했으면, 조금만 적당히 마음 줬으면 내가 이렇게 상처 받을 일도 없었을 텐데…’라는 후회.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노랫말을 이해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시기였던 것 같다.

▲ <사기꾼들>의 가족들
연극 <사기꾼들>의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위선’은 진심에서 점점 멀어지는 길 위에 서 있는 대학생(특히 고학년)들이 공감할 만하다. 가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쾌락이라는 특별한 목적(?)을 얻기 위해 외도를 하는 두 쌍의 부부(김대문과 고순자, 강호동과 주은혜)는 각각 ‘착한 척, 있는 척’이라는 가면을 쓴다.

한편 이들이 ‘거짓말 병’에 걸린 기성세대를 대표한다면, 결혼을 전제로 동거를 하고 있는 종태와 세리의 캐릭터는 가면의 개수를 늘려가고 있는 20대 대학생의 모습을 반영한다. ‘결혼이 아니라면 왜 사랑을 해야 하나?’라는 세리의 고민도, ‘결혼은 사랑의 죽음이며 황량한 사막’이라며 현재만을 즐기려는 종태의 생각도 목적 지향적이다.

신영복 교수의 ‘강의’라는 책을 보면 ‘도로의 논리, 길의 논리’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도로, 특히 잘 뻗은 고속도로를 따라 차를 몰아가면 목적지까지 빠르고 효율적으로 도착할 수 있다. 반면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따라가면 시간 안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힘도 더 든다. ‘목적’만 놓고 보면 도로가 훨씬 유익하다. 하지만 오솔길은 도로를 달리며 놓치게 되는 풍경, 그런 풍경이 주는 생각, 생각이 부르는 추억 등을 제공한다. 빠르게 도착하는 효율성(목적)만을 추구하다가 놓치게 되는 소중한 ‘과정’들이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호동, 목사, 세리, 종태, 순자, 대문
가벼운 만남, 쉽게 친해지고 적당히 선을 긋기 위해 가면을 쓰는 만남은 지극히 목적 지향적이다. 집에서는 호통을 치고 가부장적이면서 외도를 하는 동안에는 ‘착한 가면’을 이용하는 김대문, 이런 김대문과 바람이 나는 ‘성녀’ 주은혜의 위선적 종교 생활은 만남의 소중한 과정은 무시한 채 특별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풍자한다. “내 마누라는 성녀야. 너랑은 차원이 다르다고!”라며 소리치는, 그러면서도 고순자와 은밀한 만남을 갖는 강호동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맹목’이라는 부정적 단어가 갑자기 친근하게 와 닿는 연극. 특별한 목적에는 관심이 없고 단순히 ‘어떤 것(그 자체)’에 눈이 멀어 맹목적인 만남을 가졌던 과거를 떠올리게 된다. ‘기성세대의 모습을 닮아가는 길에 있는 종태와 세리가 결혼이라는 사랑의 목적을 잊고 사랑 그 자체를 사랑 할 수는 없을까’라는 네 맛대로의 생각을 하며 결론을 기다리게 된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연극을 보고 나오며 이상은의 ‘언젠가는’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맹목적이었기에 사랑이 보이지 않았던 시절의 사랑이, 지금 뒤돌아보니 순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그 때는 사랑을 얻기 위해 ‘가면’을 쓰지는 않았으니까.

 

▲ 대문의 가족
※공연 개요
-홈페이지 http://club.cyworld.com/okyw
-공 연 명 ∥ 사기꾼들 CHEATERS (부제: 新 살아보고 결혼하자)
-공연기간 ∥ 2008.9.16~openrun
-공연시간 ∥ (평일) 8시/ (토요일) 4시,7시
-(일요일, 공휴일) 3시, 6시 / (월요일) 공연 없음
-12월 24일(수) 4시, 7시, 10시(3회 공연)
-12월 31일(수) 7시, 10시(2회 공연)
-2009년 설연휴 1월 24일(토) 4시, 7시 / 25일(일) 공연 없음
-1월 26일(월), 27일(화) 3시, 6시(2회 공연)
-공연장소 ∥ 대학로 연극사랑 솔나무 극장
-티켓가격 ∥ 전석 20,000원
-관람연령 ∥ 15세 이상
-러닝타임 ∥ 110분
-원작/연출∥ 마이클 제이콥스 / 박병모
-스 탭 ∥ 무대디자인 김종선, 조명디자인 박문섭, 조명․음향오퍼 차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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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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