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현답 ⑨
우문현답 ⑨
  •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 승인 2008.11.17 13:22
  • 호수 1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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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권(親權)

[우문]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 때로는 갈등과 논쟁을 낳기도 합니다. 특히 최근 조성민 씨의 친권 회복과 관련된 갈등이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는데요,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친권’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현답] 요사이 배우 최진실의 죽음으로 전 남편 조성민의 친권이 회복되는 것이 합당한 것이냐에 대한 토론열기가 뜨겁다. 물론 다분히 거액의 유산 탓이겠지만 친권을 둘러싸고 조성민과 유족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이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건에 뒤엉켜있는 감정적 요소들은 가능한 배제하고 지극히 합리적 결론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친권이라는 말 하나가 자칫 전 상황을 포괄하는 것으로 통용되고 있는데 우선 親權과 親權行事를 나누어 생각해보자. 친권이 “자식에 대해서 부모임”이라면 친권행사는 “부모로서의 자식에 대한 권리와 의무의 수행”이라고 풀어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자가 자연적이라면 후자는 인위적인 것이다. 말하자면, 상대적으로, 친권은 선천적으로 자연발생적인 것이고 친권행사는 후천적으로 사회가 작위적으로 도출해 낸 것이다. 그래서 전자는 불변해도 후자는 시간과 장소와 환경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여느 이혼과 마찬가지로 조성민이 최진실과 이혼한 경우 조성민은 두 아이들의 아버지다. 여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나아가 그들이 이혼할 때 조성민이 소위 친권포기각서를 쓴다 해도 그는 여전히 아이들의 生父 아버지다. 최진실과 함께 부부로서 정신과 육체의 성관계를 통해서 자식을 생산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엄연한 생물학적 事實로서 이를 거부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나 권위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일찍이 Bertrand Russell이 강조한 바 있듯이 사회규범이란 우리 구성원의 본래에 크게 반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즉 그렇다면 이혼 때 그가 정작 포기한 것은 아버지로서의 인위적 법률적 친권행사에 관한 권리여야 마땅하다. 입양의 경우도 입양되어간 댁의 부모를 養父母라고 부르고 본래 집의 부모를 親父母라고 한다. 친부모는 비록 친권이 있을 지라도 현실적으로 사회가 동의하여 인정하는 모든 친권행사권리는 잃어서 가지고 있지 않으며 양부모는 생물학적 친권은 없을지라도 법률적 친권행사의 권리와 의무는 죄다 오로지 하는 것이다.

이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가령 한국인 유길준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미국시민권을 갖게 되도 그의 태생적 모국은 한국이다. 또 그 미국사회에서도 유길준은 미국시민이면서도 굳이 Korean American 즉 한국계 미국인으로 통한다. 자연적 뿌리는 사실로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 본연의 실체에 보다 충실한 것이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 사람들의 광범한 상식의 추세다.

게다가, 최진실/조성민 문제로 다시 돌아와서, 이혼시 조성민이 친권행사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최진실에게, 최진실이 있어서, 친권행사를 포기 양도한 것이지 아무도 없는데 자식을 놔두고 도망간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친권행사권리를 받았던 당사자 최진실이 사망하고 없다면 이제는 국법은 주고 떠났던 조성민에게, 그가 원한다면 (원하지 않는다면 참 비정한 아버지리라!), 친권행사권리를 회복시켜주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고 보인다.

만약 다른 사람에게, 이 경우 삼촌이나 외할머니에게, 친권행사권리를 준다는 것은 본래부터 줄곧 친권자이자 한동안이나마 친권행사자였던 본 당사자를 외면하고 비당사자 타인에게 주는 매우 임의적인(arbitrary)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만일 최진실이 살아있는 경우 어느날 갑자기 거대한 유산이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상황에서 그때 친권행사를 포기했던 조성민이 돌연 나타나 자기도 아버지로서 권리가 있다고 나눠 갖자고 한다면 그것은 허용되어서는 안 될 가소로운 일일 테지만….

사족이나, 끝으로, 조성민은 두 자녀에게 돌아갈 재산을 투명하게 관리하게 하기 위해서 친권행사를 통해 신뢰할 수 있는 제3의 기관에 유산 전체를 맡길 용의가 있음을 밝히고 있는 마당이어서 돈에만 눈멀어서 머지않아 탕진하고 아이들은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으리라는 세간의 염려는 굳이 아니 하여도 될 것 같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조성민의 전후 행위가 하도 부도덕하고 불법적이어서 도저히 상식적 합리적 판단을 적용할 수가 없다면 그래서 예외적으로 판결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사법부가 법률과 양심에 따라 알아서 할 일이다.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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