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대한민국의 리더, 세계의 리더로 거듭나는 단국인
[동문] 대한민국의 리더, 세계의 리더로 거듭나는 단국인
  • 단대신문 취재팀
  • 승인 2008.12.09 12:03
  • 호수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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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발전의 구심점 세계 곳곳에 뻗은 15만 동문이 새로운 도전 새로운 창조의 원동력

그동안 단국대학은 대내·외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며 15만 명에 이르는 졸업생을 배출해냈다. 이들은 단국대학의 교시인 ‘진리·봉사’의 정신을 묵묵히 실천해 나가며 우리사회를 발전시키기 위해 오늘도 사회 곳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현재 단국대학 15만 동문들은 정관계, 법조계, 학계, 재계, 예술계 등 사회 전반에서 대한민국의 리더로 국제사회의 리더로 단국대학의 명예를 드높이고 있다. ‘민족애를 바탕으로 인류 사회에 공헌하는 전문인 양성’이라는 단국대학 교육목표에 걸맞게 사회 곳곳에서 공헌하고 있는 단국인, 곧 그들이 세계인이라는 자부심 속에서 단국인은 더욱 성장해가고 있는 중이다. <편집자 주>

정익우(법·79 졸) 법무법인 바른 “제 삶과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 준 단국대학입니다”
법무법인 바른의 정익우(법·79졸)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을 옹호하고 우리사회의 정의실현을 위해 앞장서는 자랑스러운 단국인이다. 70년대 말 한남동캠퍼스 시절, 단국대학은 제1법선재에서부터 제3법선재에 이르기까지 사법고시와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한 3개의 고시반을 운영했다.

또 후기대학이라는 점을 활용, 신입생들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해 전국의 인재를 유치했고, 특히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 뜻을 둔 일부 우수학생들에게는 고시반에 무료로 상주하며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줬다. 합격생 수가 적었던 시절에도 늘 전국 5위 이내의 합격생을 배출해 ‘사시단대’라 불렸던 당시, 정 동문은 우리대학의 명성을 잇는 한 축을 담당했고 지금은 단국대출신 사법고시 합격생들의 모임인 법선회의 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법학과 75학번인 정 동문은 입학과 동시에 제2법선재에 입주해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정 동문은 대학생활과 관련해 “4년 내내 지독하게 책만 봤습니다”라며 자신을 ‘삭막한 공부벌레’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학과 활동과 대학 행사는 꼬박꼬박 참여했다는 것이 정 동문의 설명이다. 정 동문은 졸업과 동시에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곧장 사법연수원에 들어갔고, 군법무관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이후 1984년 검사로 임관돼 부산지방검찰청으로 첫 출근을 했고 20여 년 동안 검사로 활동하다 2001년에 퇴직하고 변호사 개업을하였다. 정 동문은 검사시절 대만대학교에 유학한 인연을 바탕으로 중국에 사무실을 내고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을 위한 중국법률서비스를 시작하여 현재는 법무법인 바른의 중국팀장으로서 중국법률 연구모임인 한중법학회와 중국법제실무연구회의 부회장을 맡고 있으며 중국법률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정 동문은 “대학생활을 어떻게 하느냐가 전체 인생을 결정합니다”라며 대학 이후의 삶은 대학시절에 정해진 큰 틀에 따라 흐른다고 덧붙였다. 낭만적인 캠퍼스 생활은 못했지만, 사회의 낭만적인 엘리트로 사회에 봉사하며 살고 있는 그는 여전히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으며, 새롭게 그의 길을 개척해 내고 있다. 정 동문이 끝으로 후배들에게 전했다.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하면 누구나 해낼 수 있습니다”라고. <銀>

이종승(경영·78 졸) 한국일보 사장 “좀 더 넓은 세상을 보는 단국인이 되어 주십시오”

“단국대학 젊은이라면 세상을 넓게 보고 세계 곳곳의 동년배들과 경쟁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묻는 질문에 이종승 한국일보 사장은 기자 출신답게 ‘폭넓은 시야’를 당부했다. 평소 후배기자들에게 “자신의 ‘틀’에 맞춰 취재하려 하지 말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취재원을 대하라”는 충고를 자주 한다며 “대학생들 역시 나무가 아닌 숲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78년 단국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우증권 조사업무 파트(지금의 연구소)를 거친 이 동문은 1988년 서울 경제신문 정치부 수습기자로 들어갔다. 첫 직장과는 달리 군대 같은 분위기의 신문사에서 기사 쓰기를 연습했다는 그는 “눈물이 날 정도로 혼난 적도 여러 번”이라고 회상했다. 1면부터 끝까지 밤 새워서 기사를 옮겨 쓰는 등의 노력을 한 끝에 94년에는 증권부 차장, 2003년에는 편집국 국장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특히 이 동문은 “전두환 시절에는 50억 원 가량의 정치자금 모금 관련 특종을 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며 경험담을 풀어냈다.

대학에서의 추억을 묻는 질문에는 “너무 오래 됐고, 한남동 시절의 이야기라 말해도 잘 모를 것”이라면서도 “그때 그 가게가 아직 있을지 모르겠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특히 후배들을 위한 특강 계획을 묻자 “혹시 기회가 닿는다면 꼭 찾겠다”고 말해 강한 애교심을 보이기도 했다. <範>

이효연(신문방송·01 졸) KBS 보도본부 사회팀 “단국대는 돌아가야할 고향, 기자생활 후 후배들을 가르치고 도울 것”

한국방송공사 KBS 보도본부 사회팀 이효연(신문방송·01졸) 사건담당기자는 사회 곳곳의 부조리를 조명하고 대한민국 속 다양한 소식을 전하고 있는, 사회중심에 서있는 단국인이다. 1996년 첨단과학대학 미생물학과에 입학해 신문방송학을 복수전공, 2001년 졸업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장 신뢰하는 방송 KBS의 뉴스를 만드는 기자로 살고 있습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한 그는 “대학시절, 전공이나 학번, 사회에서 바라보는 학벌에 국한되지 않고 열심히 살았습니다”라며 이야기를 풀어갔다. 이어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벌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자신감을 찾아간 과정이 내겐 중요하고 의미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단국대학에서의 생활이 곧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시기였음을 내비쳤다. 특히 그는 후배들을 찾은 특강 자리에서 “수도 없이 언론사 시험에서 낙방했었다”며 “하지만 언론사에 들어온 지금 보면 학벌에 따른 실력 차이란 크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겁 먹거나 포기하지 않고, 작은 것부터 도전했던 자신의 경험담도 들려줬다.

이 동문은 자신에게 단국대는 돌아가야할 고향이라했다. 현재는 사회 생활을 해야할 시기라 후배들에게 신경쓸 여력이 없지만 더 기자생활을 한 뒤에는 반드시 모교의 후배들을 챙길 거라며 다짐을 두었다. 또 이 동문은 “기자가 되고 싶은 후배가 있다면 열심히 가르치고 도울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끝으로 이 동문은 후배들에게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매진하십시오”라며 구체적 꿈을 가지고 실천해 나간다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銀>

백원인(화학공학·84 졸) 미라콤아이앤씨 대표 “단국의 울타리에서 열정을 갖고 자신에게 투자하십시오”

미라콤아이앤씨 백원인(화학공학·84졸) 대표이사는 국제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열정적인 동문이다. 백 동문은 ‘아남산업-현대전자(Hynix 반도체)’를 거쳐 30세에 미국 ‘Consilium USA사(현 Applied Materials)’의 한국 지사장과 아시아 퍼시픽 지사장으로 13년 동안 근무했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약 10년 전 IMF 시절, 기업용 소프트웨어 전문 벤처회사인 미라콤아이앤씨를 설립했다.

2004년 당시의 현대그룹계열회사인 ‘현대정보기술’을 인수, 기업의 기술력을 강화했고 현재 ‘MS’, ‘SAP’, ‘Oracle’을 포함한 기업용 소프트웨어(MOS) 분야 세계 20위를 목표로 정진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기업의 핵심가치는 기업의 고객에 대한 사랑과 사회공헌에 대한 책임이다. 오늘날을 엄청난 변화의 시대라고 말하는 그는 이를 고수하며 우수한 기술력을 중심으로 해외시장에서도 윈백 신화를 펼쳐오고 있다. 백 동문은 지금 자신의 위치는 “끊임없이 정진하는 자세에서 비롯됐습니다”라고 설명한다.

1977년 우리대학 공과대학 화학공학과에 입학한 백 동문은 단국대는 “저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영어회화 동아리 활동은 그가 진로를 개척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단다. 한발 앞선 생각을 가지고, 어려운 일을 도맡았던 그는 학창생활부터 단국인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열심히 생활했다. 또 항상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과 실천력으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백 동문은 후배들에게 “열정을 가지고 자신에게 투자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이어 “남들이 하는 만큼이 아닌 나의 색깔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기 전문분야에 몰입하고 열정을 가지면 미래에 자산이 되어 돌아 올 것이다”라며 “후배 여러분의 시선과 목표를 국내로 한정하지 말고 글로벌 시장의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愛>

강병만(몽골학·01 졸)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 “단국인의 긍지를 가진 제게 단국대는 도전의 길이었으며, 인생의 또 다른 안식처”

몽골학과 강병만(01졸) 동문은 2005년 법무부 출입국 외국어 특별채용 1기로 임용돼 서울 출입국관리소를 거쳐 현재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 입국 1과에 근무하고 있는 단국인이다. 그는 내외국인 입국재심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주로 외국인, 특히 몽골인의 정밀입국심사 인터뷰를 담당하고 있다. 강 동문은 평소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좋아했고, 남들과는 좀 다른 시각을 가졌단다. 그래서 단국대학교 몽골학과에 입학하게 됐다.

“단국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기 위해 주변분들에게 단국대학교 몽골학과를 개인적으로도 홍보하고 있고, 이와 관련 국내 유일의 학과로 자긍심을 갖고 있습니다”라 말하던 그는 단국대학교 몽골학과를 ‘하나의 도전의 길’이었다고 표현했다. 그 길이 현 직업에까지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어학분야 특별채용으로 2005년, 강 동문은 몽골어과 동문 5명과 함께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에 임용됐다.

작년에 특별채용 3기로 단국대 몽골학과 9명이 추가로 임용돼 현재 총 14명의 단국대학 몽골학과 동문들이 전국 각사무소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다. “현재 총 몽골어분야 15명 중 14명이 단국대 몽골학과 출신자들이며, 이들은 모두 직장내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우수 인재들입니다”라는 것이 강 동문의 설명이다. 단국대학을 “제 인생에 있어 또다른 안식처와 같습니다”라 표현한 강 동문은 평소에도 가끔 학교 근처를 지나가게 되면 캠퍼스를 둘러보고 간다고 전했다.

학업과 캠퍼스생활을 알차게 보내려 노력했지만 어쩔수 없이 아쉬움이 자꾸 남는다던 그는 4년 내내 학과 집행부로 활동했고 선후배들과 같이 과동아리를 만들어 활동 하는 등을 학교 생활에 열성적이었다. 그러나 “전공학문과 연계된 활동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라며 아쉬워하는 그다.

강 동문은 자신과 같은 후회를 후배들은 하지 않길 바라며, 후배들에게 “KOICA등과 같이 해외봉사활동 등에 참여해 세계화시대에 중요한 경험을 쌓고, 미래에 대한 진로와 꿈을 키워가길 바랍니다”라고 전했다. 또 “후배 여러분들의 미래는 아직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니 꿈을 원대하게 품고 줄기차게 노력해나가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꺼라고 생각합니다”라며 덧붙였다. <銀>

 

단대신문 취재팀
단대신문 취재팀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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