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무례(无禮)
⑩ 무례(无禮)
  •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 승인 2008.11.25 11:39
  • 호수 1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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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 예의생부족(禮儀生富足-살림이 넉넉해지면 예의도 지키게 된다)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요즘 들어 먹고 사는 형편이 힘들어지면서 마음의 여유도 없어지는 것 같은데요, ‘무례함’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현답]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관광객에게 미구에 서울을 다시 찾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하면 대부분이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다는 통계가 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길거리가 막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이 불친절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이유는 대도시니 그려러니 하지만 두 번째 이유는 달리 둘러댈 여지가 없다. 우리가 낯선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못하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닐 것이다. 전통적으로 끼리끼리 어울리는 공동체적 삶에만 익숙해서 낯선 외부인에게는 친절하게 다가가지 못한다는 말도 있고, 그간의 우리의 생활이 하도 궁색해서 남과 이웃 챙길 겨를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고, 또 마음속에서는 따뜻하기 그지없지만 그것을 밖으로 잘 표현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평가도 있는 것으로 안다.

어쨌거나, 내가 경험한 바로도 미국이나 일본 사람에 비해서 우리의 친절도는 좀 부실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내가 미국에서 유학생활하며 미국인에게서 겪은 친절에 비하면 현재 내가 외국인에게 대하는 친절성이 더 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하게 되는 것만 봐도 그렇다.

미국 TV 뉴스를 시청하다보면 화면이 고르지 못한 경우라든가 갑자기 소리가 안 들린다던가 뉴스진행자가 표현이나 발음을 잘못하는 수가 있는데 그때는 예외 없이 바로 사과한다. 전송에 문제가 있었다든지 자신들의 부주의나 착오가 있었다며 그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한다. 그것은 시청자에 대한 기본 예의일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 그 어느 방송사의 경우도 실수로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을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다.

아예 없었다는 듯이 지나가는 것이 다반사다. 언급한다 해도 사죄성 발언이기보다는 되려 바로잡거나 해명하는 정도다. 지켜보는 우리가 더 민망하다. 이해할 수 없는 불친절이자 무례다. TV 토크쇼을 보게 되면, 미국의 경우는 호스트가 게스트를 격려하고 광고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가령 David Letterman이 자기 쇼프로그램 Late Show에 Hillary Clinton를 초대했다면 그는 우선 그녀를 편안하게 해주려고 하고 그녀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거리를 묻되 그녀가 자신의 입장과 소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밝힐 수 있도록 돕는다. 말하자면 그 프로의 그 시간만은 정말 그녀의 시간과 기회가 되도록 배려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회진행자의 기본자세 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의 쇼는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손님을 불러놓고 곤혹스런 질문이나 하고 때로는 호통도 치고 나아가 무시하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실례도 그만한 실례가 없다. KBS에 “미녀들의 수다”라는 프로가 있다. 우리나라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젊고 어여쁜 외국여성들이 나와서 한국생활에 대한 다양한 견해 경험 에피소드 가십 등을 털어놓는 토크쇼다. 각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나름대로 비교하고 칭찬하고 비판하는 자리라 여간 교육적이고 흥미로운 시간이 아니다.

그들의 언어체험이며 문화적 충격이며 한국인과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까지 모두가 귀담아 들을만하다. 그들은 그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진지하고 성의를 다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문제는 우리 쪽 패널로 참여하는 몇 사람들의 행동이다. 우선 자세가 말장난이나 하는 듯하고 외국인을 좀 우습게 보는 듯하다. 미녀들의 얘기 중 한국/한국인의 비판이라도 나오면 불쾌한 표정이 역력하다.

또 어느 때는 여자패널들이 나와 더 시끄럽게 떠들어서 도대체 누가 초대된 손님인지 모를 지경이더라. 어디까지나 그 프로는 이국 미녀들의 수다가 아니던가. 참 지각없고 무례하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우리를 가리켜 東方禮義之國이라고 했다. 그것은 우리의 불친절이나 무례함이 타고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지금부터라도 우리는 좀 깨칠 필요가 있다:

만민은 평등하다, 나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남의 권리가 없듯이 나의 권리 또한 남의 권리에 앞서지 않는다, 그리고 무례를 당한 사람 못지않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도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종의 민간외교사절단이 될 수 있는 “미수다” 여성들의 마음속에 혹 싹트는 우리의 무례가 부메랑이 되어 머잖아 되돌아 올 수도 있음을 우리 모두 명심하자.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황필홍(문과대학)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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