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위한 전제조건’…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위한 전제조건’…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8.12.02 20:01
  • 호수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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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된 일본의 반성 표현 중 가슴에 와 닿는 진지한 제스처가 있었는가?”

‘진리’를 밝히는 ‘이성’의 힘 『한국과 일본의 역사인식』 출판기념 심포지엄 지난 주 수요일(26일) 오후 5시,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 룸은 공로명 동서대학 석좌교수(전 외무부 장관), 와다 하루키 도쿄대학 명예교수, 윤명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조사관 등 한일 양국의 존경과 지지를 받는 지식인들로 자리가 가득 찼다. 이 자리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감정이 아닌 이성적 접근을 통해 양 국가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해 만든 『한국과 일본의 역사인식』 출판 기념 심포지엄으로, 집필에 참여했던 학자들의 주제발표와 만찬으로 구성됐다. 한일 연구자 12명이 집필한 이 저서는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풀간되었다. 이날 주제발표에는 국내유수대학의 언론사가 초청을 받았다. 공로명 전 장관과 와다 하루키 명예교수의 발제 내용을 요약해 <단대신문>의 지면을 통해 전한다. <편집자주>

▲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
저에게 주어진 화두는 ‘새로운 한일 관계 정립을 위한 전제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새로운 이야기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옛날이야기로 시작을 하고 싶습니다. 조선시대 문신 신숙주 선생은 임종을 앞두고 성종이 유언을 묻자 “일본과의 친화를 잃지 말아 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이밖에도 왕명에 의해 집필한 『해동제국기』를 통해 일본과의 외교에 대한 규범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신숙주 선생께서 일본과의 관계를 강조하신 이유, 그리고 성종이 왕명으로 『해동제국기』를 집필하게 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지금의 ‘안보’개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는 왜구의 침범이 잦아 남원과 공주, 심지어는 한강 하류까지 피해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인 여건은 변함이 없습니다.

중국은 세계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으며 북방에는 풍부한 자원과 군사력을 자랑하는 러시아, 그리고 동쪽에는 강대국 일본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이라는 나라와의 ‘실질적’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이 독도 문제나 역사교과서 문제로 우리의 국민감정을 건드리기는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풍성한 국가가 된 것에 대해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있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 경제지표가 보여주는 일본과의 무역 수지만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2∼3년 전부터 일었던 한류 붐의 여파 덕분에 작년 말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220만 명에 달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CSIS의 하와이 Pacific Forum의 대표 Ralph A. Cossa 박사는 ‘실질적 동맹’(virtual alliance)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한·미·일의 ‘실질적 동맹’이 3국 안보이익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위한 전제조건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지난 20여 년간 일본은 ‘반성’이라는 표현을 지속적으로 해 왔습니다.

전두환 정권 때 “과거 한 시기에 불행한 역사가 있었던 것을 진심으로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일왕의 사과가 있었습니다. 노태우 정권 때 역시 두 차례에 걸친 반성이 있었으며, 결정적으로 김대중 정권 때는 오부치 총리가 사과의 표현을 ‘말’이 아닌 ‘글’로 문서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이런 반복된 ‘사과’로 일본인들은 이제 한국의 사죄 요구에 ‘짜증’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스스로 ‘사죄에 대해서는 할 건 다 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전에 일본의 ‘사과’에 대해 독일 외무성의 카이저 국제문제 연구소 소장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독일은 1970년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총리가 유태인 묘지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는 이처럼 전 세계에 독일 국민의 진지한 역사 반성의 메시지를 전했는데, 왜 일본은 이와 같은 제스처가 없느냐”라고 말이죠. 가슴에 와 닿는 진지한 제스처 방법이라고 하면, 와다 하루키 선생께서 말씀하신 일왕의 국빈 방한을 들 수 있겠죠.

하지만 그 방문이 어설프거나 급하게 이루어져서는 안 될 겁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일 양국 정부의 ‘정지(整地) 작업’이 필요합니다. 개인 보상 문제, 위안부 문제 등 식민 통치 시절을 겪으며 지금까지도 원한을 품고 계실 분들의 ‘이해’를 구할 수 있어야 일왕의 방한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이 새로운 한일 관계 정립을 위한 전제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박준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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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sari@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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