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우생학(優生學)
53 우생학(優生學)
  •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 승인 2008.11.11 14:37
  • 호수 12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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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사회적 통계를 보면 흑인들은 모든 면에서 열등 인종인 것처럼 보인다. 백인들은 여전히 미국의 주류 사회를 점령하고 있는 반면, 홈리스(homeless)의 대부분이 흑인이다. 이런 국가에서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훗날 미국의 역사에서 어쩌면 링컨의 노예 해방보다 더 의미 있는 사건으로 다룰 수도 있는 일이 내가 사는 시대에 일어난 것이다.

엄밀히 말해 오바마는 순수한(?) 흑인은 아니다. 백인과 흑인의 제1대 혼혈아를 말하는 ‘물라토(mulato)’에 해당된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흑인과의 피가 섞이면 흑인으로 취급되어 차별받는 미국 사회에서 오바마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인종 차별은 다분히 사회학적 현상이지만 한 때는 ‘과학적으로’ 정당화된 적도 있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활발하게 연구되었던 ‘우생학’이 그것이다. 우생학은 생물학적 유전에 통계학적 방법을 처음으로 적용한 영국의 과학자 갈튼(Galton)이 창시했다.

1869년 갈튼은 “유전적 천재”라는 책을 출판했고, 법률가, 정치인, 과학자, 예술인 등 당시 사회 저명 인사의 가계를 추적 조사한 결과가 이 책에 실렸다. 갈튼은 이들이 대부분 혈연 관계로 엮여 있고 유전은 신체적 특성뿐만 아니라 개인의 재능과 성격도 결정한다고 결론 냈다.

이를 근거로 그는 우수한 남녀 간의 선택적 결혼이 몇 세대만 이루어져도 뛰어난 능력의 인종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초기 우생학은 유전에 대한 생물학적 이론이 성립되지 못해 발전 속도가 느렸지만, 1900년 멘델 유전학의 재발견으로 급진전을 이뤘다.

이후 우생학은 30여 년 동안 생물학의 핵심 연구 분야가 되었고 거의 모든 생물 교과서에 포함된 필수 개념 중 하나였다. 우생학을 국가 사회 정책에 적극 도입한 대표적 국가는 미국과 독일이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미국에서 제정한 우생학을 근거로 한 정책으로 ‘간질 환자, 저능아, 정신박약자의 결혼을 금지시킨 결혼 규제법’, ‘범죄자와 정신병자의 생식 기능을 제거하는 단종법(斷種法)’, ‘앵글로 색슨 계열이 아닌 이민자들을 저지하기 위한 이민법’ 등이 있다.

독일의 우생학 운동은 잘 알려진 대로 나치의 대규모 인종 학살로 이어졌다. 1930년대 이후 ‘인종의 차이는 생물학적이 아닌 문화적 차이다’, ‘범죄, 매춘 등의 사회 문제는 가난이나 문맹과 같은 불리한 사회 여건이지 유전자의 문제는 아니다’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우생학은 퇴보하기 시작해 1950년대에 이르러 잠잠해졌다.

그러나, 현재에도 우생학적 주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들 연구에서는 대개 인종 간 능력을 비교하는데, 대부분이 흑인의 타고난 인지적 열등성을 지적한다. 또, 인간 게놈 프로젝트 결과 생물학적 결정론이 크게 지지받는 분위기 속에서 ‘21세기 판 우생학’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구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전 세계인들은 ‘인종 차별(discrimination)’이 아닌 ‘인종 간 차이(difference)’를 점차 인식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과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인 미국이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높이고자 즐겨 쓰는 문구 중 하나가 바로 “Diversity is power”다. 생각해 보면, 다문화 국가 미국에서조차 화제가 될 만큼 다양한 문화의 가정 배경에서 성장한 오바마야말로 미국 국민을 가장 잘 대표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신동희(과학교육) 교수

 dkddsd@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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